• [꿈/이야기] 쪽방·화장실… 산파만 8번, 가슴 아픈 일 너무나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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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17 09: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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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최고 여성 소방공무원’ 에 뽑힌서울관악 이희분 소방장
우리나라에도 화재진압 현장에 출동하는 여성 소방관들이 있지만 사실 소방관들의 임무는 불을 끄는 것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출산을 맞게 된 임신부나 가스에 중독된 노약자, 추운 날 거리에 쓰러져 있는 취객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에 치여 죽은 개나 고양이의 시체를 수습하는가 하면 위험에 직면한 동물들을 구출하기도 한다.

지난 1일 서울 소방학교에서 열린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주최 제2회 ‘여성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여성소방공무원으로 뽑힌 서울관악소방서 신림119안전센터 소속 이희분 소방장도 바로 그 같은 일에 헌신해온 소방관이다. 이 소방장을 그의 근무지에서 만나 13년 소방관 생활에 얽힌 애환을 들어보았다. ‘여성 소방의 날’은 최초로 여성 소방공무원이 임용된 1970년 10월1일을 기념해 지난해 제정됐으며 여성소방공무원은 현재 전국적으로 1537명(전체 5327명의 5%)이 현장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이희분은 “올해의 최고여성소방공무원으로 뽑혀 참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그동안 행자부장 관상을 비롯해 약사회 등 민간부문에서 우수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주는 상 등을 받았지만 이번의 상이 더욱 의미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다른 동료 여성소방공무원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서 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겸손해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인명 구조활동 등을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희분이 올해의 최고여성소방공무원로 뽑힌 것은 현장에서 임신부의 출산을 8회나 돕는 등 13년 동안 뛰어난 구급출동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가 95년 소방관에 임용된 뒤 5년 동안 일한 첫 근무지인 영등포소방서는 어떻게 보면 구급출동 활동을 펴기에는 ‘매우 양호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관내인 영등포역 주변 등에는 대규모 집창촌이 있었고, 저소득층이 사는 쪽방과 달동네 판잣집 등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99년 어느날 영등포 소방서에는 “집 주변에서 고양이 같기도 하고 아기 같기도 한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이희분은 아기를 기를 형편이 못되는 20대 초반의 산모가 여관방에서 혼자 출산한 뒤 아기를 2층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히 아기는 신생아 특유의 탄력있는 뼈대 때문에 큰 상처가 없었으며, 이희분은 아직 태반이 나오지 않은 산모에게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그는 “영등포역 주변의 여성노숙자들이 아기를 낳은 뒤 버리고 도망하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고 말했다.

이희분은 119구급차 안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돕기도 했다. 관악소방서로 근무지를 옮긴 이듬해인 2001년 2월 어느날 새벽 그는 신림 9동 고지대 달동네 반지하방으로 출동했다. 산모의 가족들은 세번째 출산이라 순산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산모는 밤새 7시간 이상 진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구급차가 신림4거리를 지날 무렵 갑자기 산모가 “곧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소리쳤고, 상황을 알아차린 이희분은 구급차를 급히 세운 뒤 분만을 도왔다. 산모와 아기는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희분이 온 몸에 양수를 뒤집어 쓴 것을 보고 놀란 간호사들은 “구급차에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차 안에 모든 장비가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실제로 119구급차에는 신생아의 기도(氣道)에 끼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흡인기, 탯줄을 자르는 소독된 탯줄가위, 탯줄을 자른 뒤 묶는 탯줄 클립, 산모용·아기용 기저귀, 아기를 덮는 방수포 등 모든 분만장비가 갖춰져 있다고 한다. 이희분은 “우리 119구급차는 ‘달리는 산부인과병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분만과 관련해 119구급차를 찾는 이들은 영세민이나 노숙자만은 아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계층들도 갑자기 찾아온 진통 때문에 119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사람살이의 극과 극을 두 눈으로 목도할 때마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이희분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모두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인데 한쪽은 너무나 고달프게 사는 것 같아 착잡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가스 중독과 관련한 일화도 적지 않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2002년 겨울 이희분은 반지하주택 화장실에서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할머니의 딸에게 “할머니가 갈아 입을 옷을 갖다 달라”고 부탁한 뒤 한참이 지났는데 오지 않아 방안을 들여다보니 딸도 쓰려져 있었다. 그 순간 이희분 자신도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면서 풀썩 쓰러졌다. 애써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외풍을 막기 위해 보일러 창문 주위를 모조리 테이프로 밀폐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보일러 자체에서 유독 가스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테이프를 떼고 딸을 깨운 이희분은 할머니를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목숨을 구했다.

이희분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을 위해서도 출동을 한다. 얼마전 “시동을 걸려는 데 차 밑에서 고양이 소리 같은 것이 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갔다. 보닛을 열어보니 실제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겁에 질린 채 울고 있었다. 이희분은 “그 어린 생명은 동물협회로 보냈다”면서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생명의 존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물뿐만 아니다. 차에 치여 죽어 있는 개나 고양이,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메추리 등도 신고를 받으면 즉각 출동해서 처리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희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정말로 경우 없는 취객’들이다.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가보면 십중 팔구 취객인데 ‘몸이 괜찮으냐’고 물으면 댓바람에 심한 욕설부터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폭력를 행사하기도 했다. 이희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노골적으로 지분거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도움을 받은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가끔씩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할 때 그는 새삼 소방공무원으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영등포 소방서 근무 시절 그는 여의도 어느 기업에서 중역이 과로로 쓰려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응급처치를 했다. 이희분은 “얼마 뒤 직원들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소방서로 찾아왔을 때 참으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희분이 소방공무원 직무 수행에 결코 외롭지 않은 것은 평생의 반려인 남편(임동섭 소방장)이 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강서소방서 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은 그와 동갑이자 95년 소방관 특채 1기 동기생이기도 하다. 간호대학을 나온 뒤 중학교 보건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 아산중앙병원 간호사로 합격한 그는 방송통신대학을 같이 다니던 소방관의 소개로 소방관 임용시험에 응시하게 됐다. 특전사 출신의 남편 또한 군 복무를 마치고 응시했던 터였다.

두 사람은 첫 근무지로 영등포소방서에 함께 발령이 나면서 부부의 인연을 가꿀 수 있게 됐다. 이들은 평소 서로의 일하는 모습에 막연한 호감을 느껴오던 중이었는데 어느날 남편은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의했고, 이희분은 순간적으로 ‘본격적인 작업’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97년 2월 이희분은 ‘평생 잘 해주겠다’는 달콤하고도 진정성 어린 청혼을 수락했고, 마침내 꽃피는 5월 두 사람은 당시 박노태 소방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소방서의 모든 직원들은 ‘개서(開署) 이래 최대 경사’라며 축하해줬고, 결혼식 당일에는 전날 철야근무한 비번직원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등 소방서 전체가 뒤집어졌다고 한다.

이희분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다. 13년 동안 전념해온 구급출동업무에서 벗어나 화재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해보는 것과, 여섯살·네살·세살의 세 딸과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소방관 계급체계는 맨 아래의 소방사에서 소방교→소방장→소방위→소방경→소방령→소방정→소방감→소방정감을 거쳐 맨 위의 소방총감에 이르기까지 모두 10단계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이희분에게 “이왕 소방관 일을 시작했으니 여성 최초의 소방총감이 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고, 그는 “공무원인 이상 진급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도울 수 있는 소방관 일이 참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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