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그 여자 그 남자, 천과 바늘 들고 ‘혁명’ 나서다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17 08:59:27
  • 조회: 262
ㆍ대안생리대 운동피자매연대

‘생리’는 금기어다. 남성들은 생리를 잘 모른다. 여성들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처리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안다. 적어도 2008년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다. 여기, 길거리에서 알록달록한 천으로 생리대를 만들고 “일회용 생리대 말고, 우리 손으로 생리대를 만들어요!”라고 외치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대안생리대 운동단체 ‘피자매연대’(www.bloodsisters.or.kr)다.
“우리는 ‘생리대’로 국가와 싸우는 겁니다. 꿈이 크죠?”
얼핏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들이 손에 든 건 칼도 펜도 아닌 천 조각과 바늘이다. “서로 미적 감각이 안 맞아 죽겠다”며 펼친 보자기 안에 호피 무늬, 곰돌이 무늬, 꽃 무늬 등 다양한 면생리대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대체 생리대로 무슨 혁명을 한다는 걸까.
지난달 26일 서울 망원동에 자리잡은 피자매연대 사무실에서 ‘면생리대 바느질 삼매경’에 빠진 남자 조약골(별칭)과 면생리대를 세탁한 핏물로 옥상 채소를 가꾼다는 김디온(별칭)을 만났다. 현재 피자매연대 상근 활동가는 이들 둘이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몸에도, 지구 환경에도 좋지 않아요. 한국의 어머니들이 옛날부터 사용해오던 천생리대의 지혜를 이용해 우리의 몸에 맞는 면생리대를 직접 바느질해 만들어 쓰자는 겁니다.”

‘대안생리대’는 말 그대로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이다. 천을 이용해 만들고, 세탁해 사용하는 ‘친환경·친여성’ 생리대다. 피자매연대는 대안 생리용품들을 알리고, 만들고, 판매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달거리대 만들기 워크숍’도 연다. 바느질법, 재료 구하는 법, 세탁하는 법 등을 공유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서 쓰고 버리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대안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는 생활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인식을 나눈다.

“기업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해온 여성의 생리문화를 획일화시킨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요. 또 바느질을 하면 자신의 몸에 대해, 그리고 여성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도 갖게 되지요.”
피자매연대 홈페이지에는 종종 ‘사용 후기’가 올라온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대안생리대 사용 이후 생리통과 불쾌한 냄새가 말끔히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바느질로 대안생리대를 만들면서 어느새 귀찮았던 생리를 기다리게 됐다”고 고백한다.

첫 활동은 2003년 ‘월경 페스티벌’에서 시작됐다. 월경 페스티벌은 금기시된 여성의 생리를 열린 공간에 내놓자는 취지로 매년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의 후원을 받다보니 일회용 생리대의 반여성적·반환경적 속성들을 간과하는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탐폰’(질 안쪽에 넣어 착용하는 일회용 생리용품)이 여성에게 자유를 준다는 식의 홍보 활동이 공공연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가 조그만 부스를 차렸어요.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몸에 반한다,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선전을 했어요. 대안 월경용품을 사용하자고요. 그 자리에서 직접 면생리대를 만드는 시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어요.”
처음에는 모두가 피자매연대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김디온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바느질이냐 했죠, 처음엔. 또다시 여성을 틀에 가둔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만들어 써보니까 좋더라고요(웃음). 면생리대를 만들고, 사용하고, 삶고, 빨고, 그 물을 옥상에서 기르는 채소에 주고 다시 그 채소를 먹고. 그 과정을 사진 찍어 올리고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많은 게 변했어요. 소박하지만 자기 몸을 바꾸는 게 가장 힘들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김디온)

모두가 쉬쉬하는 생리대를 대놓고 드러내면서 편견에 시달리진 않았을까. 조약골은 “의외로 편견은 자기 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면 스르르 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놀란 마음과 편견을 대놓고 드러내기보다 자연스럽게 동화되더라는 것이다.
“면생리대를 발송할 때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부쳐요. 그럼 ‘내용물이 뭐냐’고 물어보죠. ‘면생리대’라고 말하기가 스스로도 어색했어요. 듣는 사람도 어색하고. 그런 분위기였죠. 2005년쯤부터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면생리대라는 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스스로도 자연스러워졌고.”(조약골)

‘달거리대 만들기’ 워크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미 완경을 한 중년 여성부터 아직 초경을 시작하지 않은 초등학생,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오는 남성들까지. 긴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조약골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이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리로 인해 겪는 차별의 많은 부분은 여성들이 월경을 할 때 어떤 경험을 하는가에 대해 남자들이 전혀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딸을 둔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초경을 맞는 딸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사연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어떤 남자분은 여자친구에게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은데 재료 좀 구해달라고도 했고요. 워크숍을 통해 처음으로 여자친구와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게 됐고 전혀 몰랐던 여성들의 일상적 경험과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국 사회에선 해주지 않아요. 만약 관리자 입장에서 부하직원이 생리휴가를 쓰고 싶다거나 했을 때 인식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나겠죠.”(조약골)
벌써 5년. ‘기업 후원을 받을 만한 넉살’도 없어 “달마다 어찌 살까”를 고민해야 하는 팍팍한 삶이지만 이들이 얘기하는 ‘일상의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늬들 주장이 현실적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을 만들어 왔어요. 2003년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고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쟤네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왜 안없어지나 하는 상태에 대해 자부심도 느끼고요. 그게 우리 삶의 희망이에요.”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