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 승소땐 떡볶이 파티 “우린 저소득 전문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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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16 09: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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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민주노총 법률원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근 대영빌딩 9층에 있는 민주노총법률원은 학기초 대학 동아리방처럼 늘 북적인다. 높다랗게 쌓인 서류더미 사이로 미로처럼 길이 나 있고 그 양편에 변호사·노무사들의 자리가 진지처럼 숨어 있다. 흔히 상상하는, 말끔하게 정돈된 변호사 사무실과는 거리가 멀다. 법률사무소 특유의 권위나 엄숙함도 찾기 힘들다. 호칭부터 그렇다. 권두섭 변호사는 ‘권투(two)’로, 여연심 변호사는 ‘여밴’으로 불린다. 변호사 5명, 노무사 8명, 송무를 담당하는 차장 4명은 위아래 없는 동료 사이다. 박혜영 차장은 “변호사든 차장이든 일의 성격이 다를 뿐 경중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송무담당자가 변호사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일반 로펌과는 다른 풍경이다.

민주노총법률원은 2002년 1월 민주노총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부설기관이지만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사건 수임료와 노조에 대한 자문료가 수익원이다. 경제적 형편이 곤란한 노동자들이 의뢰인이다보니 수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민주노총 소속 12개 노조와 자문계약을 맺고 있다.

변호사는 대표적인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들에겐 이런 통념이 무색하다. 이곳 1년차 변호사의 월 급여는 일반 로펌 소속 변호사의 절반 수준. 연차가 올라갈수록 급여차는 더 벌어진다. 승소에 따른 성과급도 없다. 대신 “떡볶이를 사주거나 함께 놀러가거나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월급은 제때 나온단다.

일은 무척 고되다. 현재 민주노총법률원이 맡고 있는 사건은 총 360건. 변호사 1인당 많게는 50~60건씩 사건이 할당된다. 야근은 기본이고 철야도 밥먹듯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 10시쯤 퇴근하지만 그런 날은 거의 없다.

여연심 변호사(30)는 평일 닷새 중 나흘을 야근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나와 일한다. 송영섭 변호사(34)는 “이틀 연속 밤을 새는 경우는 흔하고 일이 많을 때는 사나흘씩 집에 못 들어가는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기기 전에 퇴근하면 조퇴”라거나 “새벽 1시에 퇴근하면서 ‘먼저 퇴근해서 죄송해요’라고 한다”는 말이 농반진반으로 오간다. 게다가 노동자 관련 사건이라는 게 시간을 정해놓고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밤과 낮, 새벽을 가리지 않고 걸려 온다.

이들은 이런 ‘열악한’ 처지를 모르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법률원을 선택하는 순간 ‘돈’과 ‘출세’라는 세속적 기준과는 거기를 두기로 작심했을 터. 송영섭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 있다보면 어떤 법조인이 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는데, 그 때 자신이 왜 법조인이 되려고 했는지 되짚다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세상에 대해 품었던 문제의식이 오롯이 남아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법률원에는 학창시절 공동체 문화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송영섭 변호사는 탈춤반 출신이다. 그는 지금도 틈나는 대로 장구를 치러 다닌다. 여연심 변호사는 서초동 꽃마을에서 빈민 아이들에게 3년간 공부를 가르쳤다. 박경수 노무사(33)는 학생회에서 노·학연대 활동을 했다. 윤훈 노무사(29)는 풍물패 출신이고, 김혜선 노무사(27)는 율동패와 학생회 활동을 병행했다. 막내인 박혜영 차장(26)은 학생회장 출신이다.

예전에 비해 덜하기는 해도 사법시험 패스는 여전히 ‘가문의 영광’으로 인식된다. 사시 패스자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마련이다. 그런 ‘기대주’가 어느 날 “민주노총법률원에서 일하겠다”고 선언할 때 집안의 반응이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상당한 갈등이 있을 법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대개 집에는 ‘숨기기’ 때문이다.

송영섭 변호사는 “부모님 모르게 일을 하다 2년 정도 지나 만류하기 힘들게 될 때쯤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며 “‘기왕 선택한 일이니 잘해보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여연심 변호사는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는데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줄 알게 되셨다”며 “썩 좋아하지는 않으신다”고 말했다. 윤훈 노무사는 “부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아직 모르신다. 결혼식날 들킬 뻔했는데 잘 넘겼다”고 말했다. 윤 노무사는 “경향신문 인터뷰 때문에 들통나겠네”라는 박혜영 차장의 말에 “우리 부모님은 농민신문만 보신다”며 웃었다.

민주노총법률원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송영섭 변호사는 5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다. 내 신념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론을 할 수 있다. 돈은 돈대로 벌고 나머지 시간에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가 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여연심 변호사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필요한 만큼 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사건 수임은 거절한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런 것이 기쁨을 준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의 일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개별 소송사건에 치여 정책에 대한 법률검토나 입법화 작업을 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

특히 며칠씩 계속된 야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문득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아주는 것은 두텁게 쌓인 동료들과의 인간적 신뢰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고민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분기마다 MT도 가고, 생일날 모두에게 1만원씩 걷어 선물을 한다는 이곳은 회사보다 동아리에 가깝다.

얼마 전 사법연수원생 몇 명이 이곳으로 수습을 나온 적이 있다. 처음 방문해서는 “대학 총학생회실에 온 것 같다”며 당혹스러워하던 그들이 나중에는 “여기보다 민주적인 변호사 사무실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돌아갔다. 그 중 한 명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이곳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여연심 변호사는 “이곳 사람들과 생활하다보니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우리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노동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많이 버는 편이다. 서초동에서 다른 변호사들과 일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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