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독학의 실경산수 “진짜는 스스로 깨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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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16 0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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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화가 박대성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였던 앙드레 말로가 어느 매체에 기고해 ‘어떻게 무식쟁이에게 노벨상을 줄 수 있냐’고 비난했대요. 그러자 헤세가 ‘히말라야의 바람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했다죠. 말로가 그대로 주저 앉았대요. ‘지식 몇 개 가진 네가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내공을 아느냐’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가고 과외받으며 학사에 석·박사 학위까지 따려는 요즘 시대의 기준에서 보면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63)의 학업 과정은 독특하다. 특히 학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미술계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히말라야의 바람’ 같은 야생의 배움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오다가 이리 처박히고 저리 처박히고, 중간에 번갯불 같은 어른을 만나기도 하며 살아온 독학의 길”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럼에도 학맥과 인맥 없인 발을 들여놓기도 어려웠던 1970년대에 국전에서 8번 수상하고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차지하는 등 한국 동양화단에 이변을 일으켰다. 겸재와 변관식, 이상범에 이어 실경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중학교까지만 다녔다. 제도권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특별히 사사한 스승도 없다. “한국전쟁 때 왼쪽 손을 잃었습니다. 다섯 살 때였어요. 밖에 나가면 ○○○이라고 놀려대니까 학교 가는 게 지옥 같았어요. 고등학교는 제 의지로 가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있던 병풍에 사군자, 글씨 등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따라 그리기 시작했어요.” 주변에선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그것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였다. “가족이 관심을 갖고 애를 들여다봐야 해요. 학원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면 각자 특징이 있어요. 소질을 발견하는 것이 교육의 첫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그쪽으로 몰리는 건 옳은 교육이 아니죠.”

어린 시절 시작한 그의 독학 방법은 ‘따라 그리기’였다. 묵화부터 동양화 화본집, 마오쩌둥 서첩, 추사 서첩 등을 보고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렸다. “주입식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연구를 해야 돼요. 접근방법을 연구하면 50년 걸릴 걸 1시간에 깨우칠 수도 있지요.” 필법 중에 준봉과 편봉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은 붓을 잡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이렇게 배우면 ‘준봉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부분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봉과 편봉으로 그려진 작품을 보고 스스로 연구한 끝에 작가가 깨우친 바는 이렇다. “붓은 만개의 털로 돼 있다. 만개의 털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준봉이다. 반만 부리면 편봉이다.”

요즘 대학에서 종종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 같은 방법을 쓴다. 서예를 배울 때 보통은 간단한 획부터 긋는 연습을 하지만 그는 글씨를 주고 그대로 베껴 쓰도록 시킨다. 그러면 나중에는 그림도 뛰어나게 그려낸다고 한다. 주어진 작품처럼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기 때문이다. “꼭지점을 향해 가는데 도움을 받아 가는 삶이 있고, 홀로 가는 삶이 있습니다.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남의 도움을 거절해야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진짜는 내가 꺼내야지, 남이 꺼내지 못하지요. 제 생각입니다. 남이 닦아주는 것은 진실하지 못합니다. 허구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학은 의미가 있죠.” 그는 지금도 날마다 2시간 이상 마오쩌둥 서첩과 추사의 예서를 보고 붓글씨 연습을 한다. 붓글씨에 모든 원리가 담겨 있어 그림의 근본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20년을 넘게 해오고 있다.

스승을 직접 찾아나서 나선 것은 그의 또다른 독학 방법이었다. 서예가 석도륜 선생, 동양화가 이당 김은호 선생 등 배우고 싶은 스승이 있으면 직접 찾아갔다. “독학이 좋은 스승을 더 많이 만납니다. 한 대학에는 고수가 한두 명밖에 없지만 독학은 모든 고수한테 배울 수 있잖아요. 독학이라지만 결국 최고의 선생님만 골라 만난 셈입니다.” 요즘 같으면 불가능할 일이지만 그때는 예술하겠다는 젊은이를 내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일정 경지에 오르고, 나이도 예순을 넘긴 지금 박 화백에게 독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까. “자격증을 받으면 그 지점에서 독학을 시작해야 힙니다. 정해진 공식을 넘어서야 진정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 만족에 젖지 않도록 스스로 고행의 길을 만들 수 있는 자가 승리하는 자입니다.” 예전엔 세상에 대해 물음표가 많았지만 지금은 오직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독학의 길에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박대성 화백은 불편하게 사는 것을 자초한다. 육체가 편하면 정신이 쇠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편리한 현대 문명과도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넣어놓고 찾아쓰는 디지털 형식은 사람의 혼을 빼버린다”고 말한다. 불편하게 사는 그만의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그가 ‘불편당’에 사는 이유
■ 불편당(不便堂)
경주 남산 아래 그의 살림집과 작업실이 있다. 살림집으로 쓰는 한옥엔 ‘불편당’이란 당호가 붙어 있다. 천장이 낮아 들어갈 땐 허리를 굽히고, 화장실도 떨어져 있어 번거롭게 오가야 하지만 육체를 불편하게 해 정신을 깨우려고 그가 즐기고 있는 불편이다.

■ 채식과 소식
그는 2년 전 육식을 끊었다. 채식을 하며 얻은 맑은 정신으로 인도를 해방시킨 간디의 일대기를 읽고 감동받은 후부터다. 가족들은 영양부족을 걱정했지만 그는 육류를 먹지 않고 나서 오히려 몸이 더 가뿐하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육식을 안할 뿐 아니라 식사량도 엄격히 조절한다. 살이 쪄 몸이 둔해지고 정신도 따라 둔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자가 경주를 찾았을 때도 그는 막걸리 두 잔과 국만 먹고 밥은 손도 대지 않았다.

■ 휴대전화 없이 전화만
박 화백은 휴대전화가 없다. 그와 연락하려면 집 전화번호로 걸어야 한다. 저쪽 방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고 건너와 받는 것인지 벨이 울린 지 한참 만에 받기 일쑤다. 걸자마자 받는 휴대전화식 통화방식은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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