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쉴새없이 몰아치던 그 손 지금은 고기굽고 있지만 난 영원한 권투인입니다”前 챔피언 ‘작은악마’ 유명우 성공한 사업가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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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09 0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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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작은 악마’라고 불렸다. 곱상한 외모만 보면 그에게서 복서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링에서는 달랐다. 들소처럼 몰아붙였고, 특유의 몰아치기가 터져 나오면 상대는 그대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15라운드 시절, 누가 봐도 이미 이긴 경기. 그러나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두고도 악마스러운 펀치는 계속됐다. 결국 KO승을 따냈다. 경기가 끝나면 다시 그 귀여운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서 ‘귀여운 악마’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 프로복싱 사상 유일무이한 36연승의 주인공.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긴 뒤 바로 다음 경기에서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 온 것도 그가 유일했다. 한때 유행했던 썰렁한 농담처럼, 그러나 그때 그 시절 가끔 복싱 중계 때 인용되기도 했던, 그 이름도 유명한 유명우(44)다.

전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그는 이제 ‘유명우의 신토오리’를 운영하는 음식점 사장님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영원한 권투인”이라고 하는 유명우를 지난달 29일 그가 경영하는 경기도 수원의 음식점에서 만났다. 이제 막 권투 경기 주최를 위해 중국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북한 선수와 우리 선수들의 복싱 경기를 중국에서 열기 위한 일이라고 했다. 권투인다웠다.

사실, 제일 궁금했던 건 그 손이었다.
1991년 12월이었다. 그는 일본의 이오카를 상대로 18차 방어전을 벌였다. 자신의 목표인 ‘20차 방어 뒤 무패 챔피언으로 은퇴’를 향한 두 걸음 앞이었다. 적지 일본에서 싸웠는데 그는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판들은 아오카의 손을 들었다. 항의가 이어지자 본부석에서 판정이 바뀌었다고 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이겼냐 졌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호텔로 돌아갔을 때 “번복은 없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그렇게 졌다.
유명우는 “판정에 아쉬움은 없다”며 웃었다. 그는 “그때 체력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이기다 보니 나태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편파 판정이라고 해도 진 것은 진 거다. 그는 “적지에서 경기를 했다면 그런 얘기가 안 나오도록 확실하게 이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5개월을 방황하고 나서야 다시 글러브를 낄 수 있었다.
오리고기집 사장님이 된 유명우는 이제 손수 오리고기를 굽기시작했다. 집게를 쥐고 능숙하게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는 그 손이 바로 1초에 6번씩 쏘아댔다는 그 무시무시한 주먹이다. 말을 이었다. 1년이 지나고 이오카와의 재대결이 이뤄졌다. 1992년 11월. 이오카의 2차 방어전이 끝난 뒤에야 리턴 매치가 성사됐다. 체력 때문에 졌다고 생각한 유명우는 매일 관악산을 뛰어오르며 복수전을 준비했다.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유명우는 말했다. “이오카, 그동안 지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리턴매치는 명승부로 남았다. 유명우는 처음으로 눈두덩이 터졌다. 대신 이오카의 얼굴도 엉망진창이 됐다. 판정승이었지만 편파 판정이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승리. 그때 각오를 물으니 유명우의 얼굴도 조금 변했다. “솔직히 말해서, 링에서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링 위에서 보였던 그 ‘악마’ 얼굴이 언뜻 스쳤다. 이후 1차 방어전을 더 치른 뒤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그러고 나서 수원에서 형제들이 하던 예식장 사업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챔피언의 사회 진출은 쉽지 않았다. 유명우도 “솔직히 복싱이 제일 편하고 쉬웠다”고 했다. “복싱은 나랑 싸우고, 상대랑만 싸우면 되니까. 죽어라 하고 훈련하고, 열심히 뛰면 되니까.”

하지만 사업이나 사회생활은 달랐다. 상대가 한 명이 아니었다.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고, 일하는 종업원들을 일일이 챙겨야 했다. “17차 방어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았고, 꽤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업은 또 달랐다”고 털어놓았다. 뚝심으로 버텼다. 원래 체력은, 경기 후반에도 몰아치기가 가능했던 체력은 자신있었다. 형제들과 함께 하던 예식업에서 독립해 24시간 설렁탕집을 차린 게 8년 전이었다. 5년 정도 운영했고, 꽤 성공한 축에 속했다. 그때 광우병 파동이 터졌다. 그래서 업종을 바꿨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유명우의 신토오리’. “막상 바꾸고 나니까 이번에는 조류독감이 괴롭히더라”며 웃는다. 하지만 이미 식당에는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마침 이용철 KBS 야구 해설위원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명우형!”이라고 인사를 했다. 안 그래도 스포츠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흔한 ‘사인’ 한장 벽에 붙어 있지 않다.

이유를 물으니 “복싱도 얼굴로 하면 안되듯 장사도 얼굴로 하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다. “17차 방어 정도 했으면 얼굴 좀 알려졌는데 결국 18차 방어전을 앞두고 패하지 않았나. 음식 장사는 더 심하다. 우리 아버지라도 한 번 와서 맛없으면 다시는 안 온다. 음식 장사는 얼굴이 아니라 맛으로 하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웃으며 “맛있다. 정말 맛있다”라며 안쪽 자리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유명우를 알 수 있는 것은 건물 밖 상호, 그리고 입구에 달랑 붙어 있는 챔피언 사진 한 장뿐이다.
사실, 한국 스포츠는 지난 겨울 비극을 겪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이호성은 사업에 실패했고, 결국 처참한 살인극을 저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로선수 출신의 사회 부적응이 문제가 됐다. 유명우도 이에 공감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다. 한국 스포츠는 지나치게 성적에만 매달렸다. 어차피 결과를 내는 것은 성인이 된 뒤인데, 어릴 때부터 성적에 내몰린다. 그러다 다치거나 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된다. 그걸 누가 책임질 건가.” 그러면서 “나도 사실은 공부 잘 못했다. 복싱 경기 주선하려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영어가 참 문제가 된다. 요즘 애들은 영악하니까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설렁탕집을 할 때는 하루 매출 1000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지금은 본인이 운영 중인 오리고기 프랜차이즈 업체의 전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그는 사장님 유명우보다 권투인 유명우로 남기를 원한다. “평생 복싱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오리고기를 헤집는 그 부드러운 손 사이사이,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굳은 살이 보였다.

지금 집중하는 일은 프로복싱 경기를 주선하는 프로모터. “종합격투기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로복싱도 좋은 선수들을 데려다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면 충분히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중국을 열심히 오가고 있다. 프로복싱의 남북 대결.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곧 계약서가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작은 악마’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직전이다.

다음 경기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명우 범진 체육관 소속의 슈퍼라이트급 동양챔피언 김정범의 세계타이틀매치다. 이를 위해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복싱평의회(WBC) 총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유명우는 “가서 비즈니스를 좀 해야 한다”고 했다. 성공한 사장님의 복싱 비즈니스에 한국 복싱의 미래가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오리고기의 좋은 점을 물었다. “오리고기는 몸에 좋다. 무엇보다 조류독감 걸린 고기는 절대 식탁에 올라올 수 없다. 털이 안 빠진다”고 했다. 사장님다운 말씀.

복싱의 장점을 묻자 그는 “다이어트에 확실하다. 민첩성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복싱을 배우고 나면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눈이 반짝였다. 다시 ‘작은 악마’의 눈.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유명우는 권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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