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최상의 소설 독법은 행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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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10.07 16: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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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소설집 ‘위험한 독서’ 펴낸 김경욱
소설가는 글을 쓰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꼼꼼한 취재를 거쳐 치밀하게 글을 쓰는 유형과 상상력에 바탕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유형이다.
최근 다섯번째 소설집 ‘위험한 독서’(문학동네)를 펴낸 김경욱씨(37)는 스스로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전자는 자기 삶의 경험이 충족되어야 글을 쓸 수 있겠죠. 저는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이 더 맞아요. 그래서 등단 15년 동안 9권의 책을 꾸준하게 낼 수 있었다고 봐요.”

실제 그는 ‘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등의 단편집과 ‘아크로폴리스’ ‘황금사과’ ‘천년의 왕국’ 등 채 2년이 안되는 주기로 책을 펴냈다. 문학평론가 서영채씨는 소설집 말미에 실린 평론에서 그를 가리켜 ‘소설기계의 탄생’이라고 썼다. 1971년생으로 93년에 등단한 작가가 이념이 사라지고 난 이후 방황하던 포스트 386세대의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이제는 자아가 아닌 외부에 시선을 돌리는 이야기꾼으로 진화했다는 의미였다.

‘프로’ 이야기꾼으로 거듭난 작가는 그러나 신화를 믿지 않는 시대에 서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작가와 독자는 어떤 지위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증거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 곳곳에서 발견된다. 표제작 ‘위험한 독서’는 독서치료사인 화자와 상담자인 그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한 사람의 독서 이력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믿는 인물이다. 소설에는 다자이 오사무, 가브리엘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 미시마 유키오 등 내로라하는 근현대작가들의 작품이 끊임없이 인용된다. 더불어 작품의 전기적 비평에 대한 비판과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등 근대 이후 소설의 독법을 줄거리에 녹여내고 있다.

‘천년여왕’은 창작 행위에 대해 검토한다. 주인공은 처음 쓴 단편이 신춘문예 심사평에 오르자 글을 쓰겠다며 귀농을 결심한다. 새로운 작품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독자는 아내다. 그런데 아내는 그가 탈고한 작품을 내밀 때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의 이름을 대며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는 자신을 일러 “공부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했다. “저는 취재도 여행도 다니지 않아요. 취재한 내용이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로지 책읽기와 상상하기를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이 실제와 달라도 관계없습니다. 읽는 이들이 그럴 듯하다고 느끼면 그뿐입니다.”

그래서일까. 소설집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뒤섞인 작품이 꽤 실려있다. 테러위협을 당하는 맥도날드 지점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일상으로부터 피해 달콤한 휴식을 꿈꾸는 홈쇼핑 고객관리부 팀장의 이야기를 다룬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반지하 월세방을 탈출하기 위해 대리모로 자원한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등이 그렇다. 이들 작품은 지금 여기의 생생한 현실에 바탕하고 있지만, 열린 결말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행간을 읽어내는 것, “독자가 자기의 느낌과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상의 소설독법이다.

“작가도, 독자도 나이테가 쌓이면서 달라지는 세계와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저도 그런 소설을 써야겠지요.” 책읽기는 아마도 글쓰기와 더불어 평생의 일상이 될 것이라는 그는 “더 꼼꼼히 깊이, 넓게 읽으려 한다”며 최근에는 역사와 철학,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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