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와인과 음식 마리아주는 서양관념, 얽매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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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30 08: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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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시아 최초 와인 마스터 지니 조 리
10년간 시음 노트 40권. 입을 거쳐 목젖에 넘기지 못하고 하수구로 흘려 버린 수천 잔의 와인들. 날마다 코와 입을 벼리고 감각을 곧추세웠다. 빙빙 잔을 돌리면 칠레 안데스의 산바람, 프랑스 외진 쥐랑송 마을의 햇살, 남아프리카를 휘도는 해무(海霧)와 농부들 땀까지 콧속에서 춤을 췄다. 바코드를 읽듯 와인 속의 감성까지 탐독해 내는 여자. “좋아서 시작했다”지만 와인세계 정수리에 올라서는 일은 이토록 뜨겁게 자신을 정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홍콩에서 활동 중이니 현지 언론에서 반향이 컸을 것 같아요.
“논문이 통과하기 전인 올 봄부터 신문들이 전면을 할애하며 다뤄줬어요. 공식적인 보도가 나가자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독자들의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모두 ‘네가 아시아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어요.”

-7살때 이민 갔는데 한국말이 매우 유창합니다.
“어릴 적에 배운 언어는 잘 잊지 않기도 하지만, 꾸준히 공부 했어요. 여름 방학이면 틈틈이 서울에 들어와 한국어 캠프를 다녔어요. 네 딸도 매주 토요일이면 홍콩에 있는 ‘한국어 교실’에 가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더 잘합니다. 한국음식도 즐겨서 김치까지 직접 담가 먹습니다.”

-(그래도 술인데) 네 딸을 키우면서 와인 전문가 역할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훗날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게 지론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12살, 10살, 7살(쌍둥이) 네 딸을 소신대로 모유를 먹였어요.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기를 즐깁니다. 깡통이나 팩에 든 음식은 사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으면 아이들에게도 와인을 따라줍니다. 다만 ‘와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만 마시라’고 해요. 그러면 코를 킁킁대며 경쟁적으로 ‘엄마 흉내내기’를 합니다. ‘오렌지, 블랙커런트, 시나몬, 초콜릿….’ 어떤 때는 물잔을 잡고도 빙빙 돌려요. 와인전문가 엄마를 둔 죄이지요, 하하.”

-하버드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뚱맞게 와인을 업(業)으로 삼았어요.
“유년시절 식탁에는 늘 아버지가 반주로 드시던 캘리포니아 저그와인(Jugwine·1.5ℓ이상의 값싼 대용량 와인)이 놓여 있었어요. 와인은 생활 속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1988년 1년6개월간 영국 옥스퍼드대 연수가 결정적으로 운명을 바꿔놨어요. 당시 와인의 매력에 빠져 8개월은 공부하고 3개월은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산지들을 여행했습니다. 결혼 후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장점을 살려 음식과 와인 관련 글을 쓰는 잡지기자를 했어요. 그 무렵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데 남편이 조언을 했습니다. ‘지니, 와인이 흥미롭잖아.’ 1997년부터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 기고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11년 됐네요.”

-남편은 강력한 후원자인데 와인에 얽힌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있을 것 같아요.
“시부모님이 1953년에 이주, 남편은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선지 남편은 한국말이 서툴러요. 눈치채셨겠지만 우리를 이어준 끈은 와인입니다. 대학 졸업 직후 와인스쿨에 다녔어요. 로버트 파커와 함께 일하는 케빈 즈랄리(Kevin Zraly)가 당시 9·11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110층에서 와인강좌를 했어요. 10주코스 100명 정원이었는데, 워낙 강의가 재밌어서 석달 전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아시아인은 딱 2명 끼어 있더군요. 알고보니 둘 다 한국인이었어요, 물론 남편과 저였습니다. 하루는 와인 강좌가 끝나고 허드슨 강가를 산책하는데 ‘잠깐 기다리라’고 해요. 집에 달려가서 샴페인과 잔을 들고 나왔더군요. 그 때 강변에서 잔을 부딪히던 돔페리뇽 맛은 잊지 못합니다.”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홈페이지를 보니 지니를 한 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더군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99년 여름, 뉴욕에 머물고 있는데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하버드 클럽’에서 잰시스 로빈슨의 와인 책 ‘옥스퍼드 컴패니언’(Oxford Companion) 런칭행사를 하는데 와인을 좋아하니 꼭 참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00명쯤 모였나봐요. 행사가 끝난 후 저녁모임에는 단 4명만 남게 됐어요.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 후로 자주 전화통화를 했지요. 제가 영국에 가면 로빈슨은 늘 아들방을 비워놓고 ‘지니 방이야’ 했어요. 만나면 와인가의 온갖 잡소문에 대해 킬킬대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날인가는 로빈슨이 그러더군요. ‘지니, 넌 와인만 보면 눈빛이 밝아져. MW 도전해 볼 생각 없어?’ 그 때는 아이가 어려 힘들었고, 둘째를 키우고 난 2001년에야 로빈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 아기들 기저귀를 안바꿔도 되니 MW에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지요. 로빈슨이 영국에서 스폰서 사인을 보내왔어요. 등록을 마치고 MW 세미나가 다가왔는데 몸에 이상을 느꼈어요. 병원에 가니 임신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쌍둥이였지요. 입덧이 심해서 남편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우기고 참석했어요. 훅 올라오는 와인 냄새가 어찌나 역겹던지, 맛도 못 느끼겠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어요. 그래도 ‘와인 공부하는 사람이 왜 임신해서 왔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말도 못꺼냈어요. 그래서 과정을 잠시 보류 했고 2003년 재개하여 8년만에 타이틀을 딴 셈이에요. 며칠전 IMW로 부터 소식을 듣고 남편과 어머니 다음으로 통화한 사람이 로빈슨입니다. 그만큼 로빈슨은 제 와인스승이자 언니 같은 존재입니다.”

-일본의 경우 다사키 신야 등 세계 소믈리에 콘테스트에서 1등한 신화적 인물이 있고, 와인 인재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MW가 한 명쯤 나올 법한데 힘든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일본 남성 한 명이 유예기간을 포함해 11번 도전했는데 탈락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여성도 2명이 도전 중이에요. 언어의 취약점을 배제하지 못해요. 결국 논문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많아요. 논문은 누구나 알고 있는 ‘와인 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와인과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을 원하지요. 그러니 영어나 불어에 능통해야 다른 사람이 뭘 생각하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관점은 어떤가를 유추할 수 있지요. 그런 면에서 와인 생산국도 아닐뿐더러 다양한 와인을 접해보지 않은 동양인들이 불리해요. 전 불어, 영어, 중국어 3개 국어를 합니다.”

-올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을 보면 스페인과 프랑스 론쪽의 약진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주요 매체에서 상위에 오르고 나면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아요. 새롭게 주목하는 지역이나 와인이 있을 것 같아요.
“레드 와인이 건강에 이롭다는 보도들이 레드 와인의 소비를 부추겨 상대적으로 화이트 와인들이 소외를 받았어요. 그러나 전 프랑스 알자스나 루아르쪽 화이트 와인들의 가치에 주목합니다. 아울러 포도밭의 역사가 있고 잠재력이 엿보이는 아르헨티나를 눈여겨 보고 있어요.(미리 사둬야겠군요, 웃음)”

-홍콩은 지난 2월부터 와인주세가 없어지고 아시아 와인 허브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한국 애호가들도 홍콩으로 와인 구매여행을 떠난다고 하는데,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중국인들이 고급 와인을 많이 사가요. 홍콩에서 왓슨스 와인 셀러(Watson’s Wine Cellar)가 가장 큽니다. 13개의 숍이 있고, 슈퍼 200곳에 와인을 넣고 있지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한 중국 갑부가 숍에 찾아와 ‘보이는 와인을 다 사겠다’고 하더랍니다. ‘그건 곤란하다’고 했더니 ‘그럼 가게를 통째로 사겠다’고 하더래요. 잘 달래서 좋은 와인 몇 박스 들려보냈다고 합니다. 한국은 와인값이 비싸서 고급와인 2병만 사가면 비행기값이 빠지니 그럴 만 하겠군요.”

-개인 셀러 속이 궁금해요. 올드빈티지도 많을 것 같은데.
“애호가가 와인 욕심이 없다면 거짓이겠죠? 1945년산 샤토 라피드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를 비롯하여 47년, 49년산 등 올드빈티지에서 최근 빈티지까지 약 4000여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영국, 뉴욕, 홍콩 등에 분산 보관되어 있어요.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마셔야죠. 다음주는 제 생일파티가 있습니다. 지인 20여명을 초대할 것인데 61년산, 66년산 등 60년대 빈티지로 파티를 할 거예요. 불행히도 제가 태어난 68년도는 빈티지가 좋지 않아 뺐습니다.”

인터뷰 내내 자기관리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솨솨” 아우성치는 샴페인의 낮은 목소리와 잔으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와인 병 주둥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와인 인생의 정점이자 인생 불혹.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서두르지 말자”고 했다. 와인은 관상의 대상인데 업(業)이 된 서두름 때문에 자칫 누려야할 즐거움을 놓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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