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前 메이저리거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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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24 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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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짜리 소년 마이클 브랭카는 엄마 로빈으로부터 ‘한 손이 없는 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로빈은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를 아들에게 해 줬고, 마찬가지로 한 손이 없던 브랭카는 의사가 권한 축구 대신 야구를 택했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야구.

열 살짜리 소년 빌리 인세라는 유아용 책에서 그의 이야기를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책을 놓지 않았고, 그는 지금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인 블레이즈 베난치오는 라디오도, 책도 아닌 인터넷에서 그의 이야기를 접했다. 인터넷 동영상에서 발견한 그 투수는 오른손 손목 아래가 없으면서도 능숙하게 글러브를 옮겨 가며 야구를 하고 있었다. 오른팔로 글러브를 낀 그는 왼손으로 공을 던졌고 공이 날아오자 재빨리 왼손에 글러브를 끼웠다. 공을 잡은 뒤 다시 글러브를 오른팔로 옮겼고 재빨리 공을 떨어뜨려 왼손에 쥐더니 번개처럼 1루에 공을 던져 타자 주자를 잡아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래서 베난치오는 지금까지 5~6번이나 실패했던 ‘특수 글러브’를 포기했다. 까짓 한 손이 없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연습하면 되니까. 베난치오도 ‘한 손이 없던 그’처럼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베난치오와 그가 다른 점은 그는 오른손이 없었고, 베난치오는 왼손이 없다는 점뿐이다. 20년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오른손이 없는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조막손 투수’라 불렸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 올림픽에서 뛴 것이 아니라, 올림픽에서 뛰었다. 게다가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였다. 씩씩하게 공을 던졌고,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비록 당시엔 야구가 시범종목이긴 했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조막손 투수’. 그의 이름은 짐 애보트(41)였다.

애보트는 67년 미시간주의 사우스필드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오른쪽 손목 아래, 즉 손이 없었다. 마치 뭉쳐진 것처럼 손가락이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한 손이 없다는 게 그의 삶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애보트는 플린트 센트럴 고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를 대표하는 투수였을 뿐 아니라 미식축구 쿼터백이기도 했다. 애보트는 고교 미식축구팀을 주 대항 대회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애보트는 ‘특수 글러브’를 사용하지 않았다. 베난치오가 인터넷 동영상에서 확인했듯, 손 없는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끼고 야구했다. 글러브를 왼손, 오른손으로 능숙하게 옮기며 정확하게 수비와 송구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 수없이 벽에 공을 던져가며 연습한 결과였다. 애보트가 미국 국가대표 선수였던 시절, 쿠바는 고의적으로 애보트에게 번트를 시도했지만 애보트의 능숙한 수비를 이겨낼 수 없었다. 쿠바의 작전은 실패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애보트는 결국 메이저리거가 됐다. 고교 졸업 당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36라운드로 지명됐지만 계약하지 않은 애보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전체 1라운드(8번째)로 지명됐다. 그리고 입단 첫 해에 애보트는 마이너리그를 단 1경기도 뛰지 않은 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됐다. 애보트는 그저 그런 투수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손가락 없는 오른손에 주목하고 있을 때 애보트는 공을 던지는 왼손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애보트는 해냈다. 투수 짐 애보트 최고의 장면은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93년 9월4일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선발 마운드에 선 짐 애보트는 4-0 승리를 이끌어내는 동안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한 손이 없는 ‘조막손 투수’의 믿어지지 않는 노히트 노런 경기였다.

세계는 그제서야 그의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통산 87승 108패. 방어율 4.25. 888개의 삼진. 그리고 내셔널리그로 옮긴 뒤 한 손으로 터뜨린 2개의 안타. 그중 1개는 역대 최강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로부터 뽑아낸 것이었다.
99년 6월2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떠난 애보트는 여전히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쿨드삭에서 아내 다나와 두 딸 매들레인, 애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애보트는 전국을 돌며 장애인들에게 힘과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강연을 하고 있다. 단지 장애인을 위한 강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열정적 강사인 애보트는 푸르덴셜, 액손 등 미국 내 유명 대기업의 전속 강사로 활약하며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주었다.

당시와 다름없이 한 달에 20통 이상의 편지를 받는 애보트는 일일이 손수 답장을 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하는 베난치오도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애보트를 만난 뒤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았다. 그 답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 친구 블레이즈에게. 야구를 하게 됐다니, 정말 기쁘구나. 아마 굉장히 재밌고 멋진 경기를 할 수 있을거야. 물론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기 때문에 때때로 힘든 상황에 부딪힐 수 있겠지. 그러나 나를 믿어봐. 조금만 열심히 연습하면 (한 손으로 야구를 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어. 항상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거란다.’

애보트는 은퇴한 지 9년 만에 새로운 투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애보트는 9월부터 미국 노동부 산하 장애인 고용정책실에서 추진하는 새로운 캠페인의 대변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장애인들의 고용 증대를 위한 이번 캠페인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능력 있는 개인들의 증명(Proving Individuals with Talent Can Help)’. 약자로 쓰면 ‘투구‘를 뜻하는 PITCH다. 애보트와는 운명적인 만남.

애보트의 새로운 투구는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장애는 자신이 스스로 증명했던 것처럼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일 뿐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애보트는 이 캠페인을 위해 라디오 연설과 공익광고, 어린이 야구 대회 등 갖가지 행사에 참석하며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자신의 몸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애보트는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함으로써 얼마나 더 많이 사업에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애보트의 새로운 투구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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