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시사저널 시즌2가 아니다, 시사IN 시즌1이다” ㆍ기자들과 나눈 ‘시사IN 1년’그 숨가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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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23 09: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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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년쯤 된 영아들은 손바닥과 무릎을 이용해 바닥을 기거나 가구 등 버팀목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거나 원하는 것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는 있지만 걸음마를 시작하기에는 아직은 좀 버겁다. 지난 11일로 한 돌 생일을 맞은 시사IN은 평균적인 발달 단계를 넘은 발육이 좋은 아이같다. 신정아 단독인터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관련 양심 선언, 김경준씨의 옥중 메모 등 특종을 연이어 터뜨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왔다. 2006년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는 기사가 인쇄과정에서 무단 삭제되면서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와 파업, 그리고 새 매체 창간까지 그야말로 숨가쁜 1년이었다.
시사IN 기자들은 “창간과 1년이 기적과 같다”고 했다. 지지자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준 성원으로 매체를 시작했지만 적은 인원과 광고 수입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 등은 체감되는 한계다. 게다가 요즘 언론 환경은 시사저널 파업 때와 다를 바 없이 냉혹하다는 것이 시사IN 기자들의 평이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꼭 성공해야겠다”고 했다. 연대와 투쟁으로 만들어진 매체가 바로 시사IN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시즌 2가 아니라 시사인 시즌 1’을 만들어 가고 있는 백승기 사진팀장, 주진우·차형석 기자와 신입 천관율 기자를 지난 8일 만나 ‘시사IN의 1년과 그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눈물의 파업에서 창간까지
창간을 앞두고 시사IN 기자 전원 회의가 열렸다. 창간호에 어떤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룰 것인에 대한 논의가 열렸다. ‘삼성’으로 인해 시사저널에서 뛰쳐나와 매체를 만들었으니 삼성에 대해 당연히 써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반대 의견이 나왔다. 삼성을 죽이려고 만들어진 매체도 아닌데 뉴스가 없는 상황에서 복수혈전처럼 삼성을 다룰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였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선택은 ‘독립언론’이라는 것을 강조하자는 것이었다. 백 팀장은 “결론은 쓸 것은 쓰고 말할 것은 말하는 매체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며 “정치, 종교, 경제 권력 어디에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창간호 표지엔 ‘머독의 돈, 언론엔 독?’이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사진이 실렸다.
파업과 창간을 외부에서 바라봤던 신입 천 기자는 “시사저널이 삼성과 싸우고 있다는 본질에 시민들의 공감대가 커졌고, 경제권력에 대한 싸움으로 전선이 넘어갔다는 것을 독자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응원을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기자도 파업과 창간의 의미를 “경제 권력에 대한 도전과 독립”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까칠한’ 주제를 다룬 출발에서부터 기자들은 고난을 각오한 모양이었다. “창간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차 기자는 “파업 이후 사표를 내고 새 매체를 창간하기까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성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며 “창간을 못하면 ‘기자단’이 아니라 ‘사기단’이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백 팀장은 한 아주머니의 꼬깃꼬깃한 2만원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용인에서 올라왔다던 한 아주머니가 양손 가득 맥주와 콜라 등을 들고 파업 천막으로 찾아와 “당신들을 믿는다”면서 쥐여주고 갔다고 한다. 매체 창간까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갑갑함과 무거움이 백 팀장의 가슴을 짓눌렀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가지 못한 휴가를 올 추석에는 처음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시사저널 시즌2’가 아니라 ‘시사IN 시즌1’을 만든다는 것
“수습을 갓 뗀, 탯줄 방금 떼고 나온 핏덩이들이 거리로 나가자는데 선배들이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은 아이디어가 나온 지 4시간 만에 텐트를 만들어줬어요.”
촛불 정국에서 운영했던 거리편집국 얘기다. 거리편집국은 수습기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천관율 기자는 “경쾌하고 밝게 촛불시위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으로 촛불시위 취재와 기사를 마감한 바로 그 주말에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 이미 기사는 나갔기 때문에 급변하는 분위기를 전해주기 어려웠다”며 “주간지가 호흡을 놓치는 게 마음에 걸려 매일매일 기사를 쓰자는,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천 기자와 입사동기들은 이 아이디어를 편집회의에 과감하게 제출했고 선배들의 노하우가 보태져 거리에 텐트를 치고 촛불시위를 생중계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주간지로선 새로운 시도에 대해 “미친 짓 아니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파업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거리편집국을 운영했다. 거리편집국 텐트엔 ‘힘내라’는 시민들의 성원이 답지했고, 간식은 주체를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이 모여들었다. 촛불팀장인 주 기자는 “마이너 매체지만 우리에게 갖는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고, 처음에 거리편집국을 반대했던 차 기자도 “ ‘시사IN’하면 ‘거리편집국’ 할 정도가 됐는데 처음에 반대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적은 인원이 ‘별동대’처럼 움직이는 시사IN은 메이저 언론사들이 하지 못한 특종도 많이 했다. 창간호부터 대부분의 언론이 접촉을 시도했던 학력위조 파문의 당사자인 신정아씨와 인터뷰를 했고, 지금까지 신씨를 인터뷰한 유일한 매체로 남아있다. 삼성에 대한 양심선언을 결심한 김용철 변호사가 찾아간 매체도 시사IN이었고, 지난해 대선 당시 김경준씨가 검찰청 조사실에서 자신의 장모에게 써준 메모와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의 인터뷰를 성사한 것도 시사IN이었다. 덕분에 소송은 일상이 됐고 일각에선 ‘폭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중 ‘몸값’(제기된 소송금액)이 최고라는 주 기자는 “소송에 걸리면 위축되고 기분이 나쁘다. 그런 비판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자라면 어느 매체에 있더라도 누구나 썼을 이슈이고, 남들이 안쓰는 문제라면 ‘우리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볍고 독립언론으로서 자유로운 시사IN이 언론, 종교, 재벌과 기업,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 문제 등 다른 언론이 피하는 이슈를 피해가지 않겠다는 것”이 시사IN의 각오다. 주 기자는 “몇 개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며 지켜봐달라고 했다.
물론 기자들은 자신들을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백 팀장은 “시사저널이 쌓아온 ○○○ 노하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새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역시 어렵다”며 “처음보단 많이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차 기자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탄생한 만큼 우리에게 거는 기대도 크고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시사저널 시즌2가 아니라 시사IN 시즌1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이 상대적으로 ‘기계적인 중립’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투쟁과 연대 끝에 만들어진 매체인 시사IN은 물리적 중간에 머물 수는 없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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