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말만 하면 쓴소리라고 하니…그래도 비판은 지식인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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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12 09:20:55
  • 조회: 388
▶美 프린스턴大 연구활동 떠나는 정운찬 前 서울대총장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아닐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문에 ‘정운찬 장관이 촛불시위 현장에 가다’ 등의 기사가 나는가 하면 모 정당으로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미국수입 쇠고기 5적’에 선정되는 등 난데없는 뭇매를 맞았다. 기자들까지 현직 장관보다 그의 이름이 귀에 익숙할 만큼 그는 지난 몇년간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서울대 총장 시절엔 서울대 폐지론까지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원들에게 대학자율화와 3불정책 반대 등을 고수해 주목받았고, 황우석 박사 사건 때는 황 박사 지지자들의 협박도 이겨냈다. 또 2007년 4월 출마 포기선언을 하기 전까지 그는 유력한 대통령 예비후보였다. 특기가 ‘물망에 오르는 것’이고 취미가 ‘고사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여러 정권에서 총리, 인수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교육부총리, 선대위원장, 야당 대표, 비례대표 1번 등에 거명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 실시한 한 조사에서도 ‘차기 대권주자 20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대통령 예비후보로 밤낮없이 기자들이 따라다니고, 30평이 넘는 넓은 사무실에 전용승용차와 비서팀들의 보좌를 받던 화려한 총장 시절과 달리 6.8평의 좁은 연구실에서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평교수로 돌아온 정운찬 전 총장의 표정은 오히려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이달부터 모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러 떠나는 정운찬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30년 전인 1978년, 서른 한 살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을 땐 학생으로 오해를 받았을 만큼 풋풋했던 신참교수는 이젠 머리가 희끗한 원로 교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눈빛만은 청년처럼 반짝였다.

▶건설적 비판은 지식인의 임무다
-최근엔 이름이 비슷한 정운천 전 장관 때문에 오해도 받았지만 그동안 달리 오해를 받아 억울한 점은 없으십니까.
“이름이 잘못 나오거나 생년월일이 잘못 알려진 것 등 ‘착오’는 많죠. 그거야 실수로 웃어 넘길 수 있는데 제 정체성이 오해받을 때가 제일 답답합니다. 전 항상 학자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올바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해왔고 제 교육관이나 삶의 철학에도 일관성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한국은행, 전경련 측에서도 한국경제에 대해 언급한 논객 중 가장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답니다. 전 항상 같은 주장을 하는데도 당시 시류나 정부의 색깔에 따라 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더군요. YS때는 좌파취급을 받았고 노무현 정부때는 극보수로 찍혔죠. 황우석 교수 사건 때도 그렇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책임지는 총장으로서 황 교수의 논문에서 왜곡·과장한 점이 증명되었기에 서울대 교수로서 교육윤리에 어긋나니 규정상 사퇴를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CIA가 셰튼 박사와 제게 100만달러를 주면서 황 교수를 그만두게 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나돌아 한동안 곤혹스러웠습니다.”

-일부에선 ‘정운찬 총장을 키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란 평가를 할 만큼 참여정부에 각을 세웠는데요. 3불정책이나 대학자율론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요.
“대통령에게 항거하거나 제 개인적 주장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의 총장으로서, 또 나라를 걱정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한 것인데 언론의 관심이 컸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육성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정부는 평등을 강조했지만 획일적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과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겁니다. 고교평준화가 되었지만 이미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무한경쟁에 들어갔는데 평등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무엇보다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맡기고 정부는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우리 세대의 경우 중·고·대학교 과정마다 실력을 평가받고 재도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대학 입시 하나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게 오히려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평등만 강조하다보니 진짜 평·등, 즉 아파트 평수와 성적 등수만 따지는 세상 아닙니까.”

-언젠가부터 강의나 학회 등에서 말씀하시면 ‘정부에 일침’ ‘쓴소리’ 등으로 표현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겐 덕담을 주로 하시면서 정부나 재벌들에게 쓴소리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전 항상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그걸 알리려고 할 뿐인데 언젠가부터 말만 하면 ‘쓴소리’라고 해서 옳은 말을 하기가 꺼려질 정도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지성인이나 지식인이 건설적 비판을 너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3·1운동의 제34인으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가 중학생인 제게 ‘한국인들은 너무 건설적 비판을 하지 않는다, 옳은 일은 소신을 갖고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고 가르치셔서 교육받은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고교때도 한·일회담에 반대했고 대학생 때도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각종 데모에 참여했으며 80년 봄에도 교수 서명에 동참했고 86년엔 개헌 서명을 주도했죠. 나이 들어 사사건건 말이 많다고 욕먹을까봐 자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식인이라면 정부나 재벌이 잘한 일에 만세불러 줄 필요는 없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거나 안되는 일은 지적을 해주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보다 교수가 더 보람 있다
-얼마전 케이블TV에 출연해서 인생을 맛으로 비유한다면 가장 단맛은 미국 유학 중 부인에게 500여통의 연애편지를 쓸 때였고 가장 쓴맛은 대통령 불출마 선언 후라고 말씀하셨던데요.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황우석 박사 사건 때보다 정치가 괴롭고 상처를 받으셨나 봅니다.
“황 교수 사건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해결되는 일이라 별로 고통스럽진 않았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고 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기회주의자, 우유부단한 선비형이라 정치판에 안어울린다, 비단길 깔아주면 꽃가마 타고 가려고만 한다는 등의 얘기까지 쏟아졌고요. 황당한 유언비어는 또 얼마나 많던지요. 한 지인이 ‘감춰준 애가 있다던데 딸이오, 아들이오?’라고 묻기에 ‘글쎄요, 저도 모르니 아마 중성인가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제 일거수일투족이 오르내리는 것은 참겠는데 제 가족에 관련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거론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더군요. 출마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 불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확실한 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는데 제가 정치할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은 또 매우 실망을 해서 그 후유증이 참 컸습니다.”

-벌써 다음 서울시장이나 차기 대선후보로 거명하는 이들도 많던데 정말 다시는 정치를 안하실 건가요.
“언제나처럼 ‘절대로’란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국내 정치풍토에 환멸을 느껴 정치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땐 정치력, 정치자금, 정당 등 모든 것의 부족함을 느껴 포기했습니다. 또 만나지도 않고 만났다고 하거나, 수시로 말을 바꾸는 등의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제겐 맞지 않는 세계로 느껴졌거든요. 아직은 평소 제 소신과 철학을 지키며 정치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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