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향기] 원로·중견 - 젊은 작가 ‘畵通’하다 가나아트센터 개관 25주년 ‘통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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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11 08: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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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58)이 타이어로 조각을 만드는 젊은 작가 지용호씨(30)에게 날카롭게 묻는다. “그런데, 타이어만 가지고 작업할 거 아니죠? 그것만 갖고 작업하면 머리 나쁜 사람 같지.” 지씨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힘 있고 원시적인 콘셉트를 강조하려 한다”고 답한다. 임 화백은 이어 자신의 예술관을 후배 작가에게 전한다. “이 시대는 좋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박수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상품을 만들고 거기 머물게 하는 자본주의적 함정을 갖고 있지. 그걸 어떻게 작가들이 치고 나갈 것인가. 나는 그런 점에서 반항적이고 아웃사이더가 돼야 한다는 것을 선언할 수밖에 없어.”

작가 대 작가로 서로의 작품 세계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회화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지만 모처럼 터져나온 미술 작가들의 말 잔치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의미있는 전시다. 가나아트센터의 개관 25주년 기념전 ‘더 브릿지’에 속하는 네 개의 전시 중 ‘통섭’전이 바로 그렇다. 전속 작가 등 가나아트센터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활동하는 작가군 중에서 원로·중견 작가와 젊은 작가를 1 대 1로 묶은 일명 ‘커플전’이다.

‘권순철+정명조’ ‘박항률+유영운’ ‘박대성+안성하’ ‘최종태+이동재’ ‘사석원+원성원’ ‘배병우+뮌’ 등 12팀 총 24명이 참여한다. 작품에 비슷한 점이 있어 묶인 팀도 있고, 한 작가가 상대 작가를 지명하기도 했다. 지난 7~8월 서로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을 보고, 한 사람의 작업실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는 시간 제한 없이 이어졌다. 4일부터 21일까지 이 전시가 열리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 전시실에는 팀별로 별도의 방이 마련된다. 작가당 3점 안팎, 팀당 6점 정도의 작품이 걸린다. 상대 작가와의 공통점을 찾아 새로 만든 작품 등 대부분 2008년 신작들로 구성됐다. 팀으로 묶인 작가끼리 나눈 대화록이 파일로 묶여 같이 놓인다.

전시를 기획한 김지연 큐레이터는 “미술계도 개인주의화하면서 뜻을 같이 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작가들의 모임을 찾기 쉽지 않게 됐다”면서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하는 풍토가 사라져버린 이 때 중견·원로 작가와 젊은 작가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서 뿌듯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원로·중견작가들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젊은 작가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우려, 디지털·물질만능 세대에 대한 비판 의견을 많이 내놓았다. 실경산수화의 맥을 잇는 작가로 꼽히는 한국 화가 박대성씨(63)는 지적했다. “디지털이 잘못하면 나 자신을 잊어버리게 한다. 넣어놓고 찾아쓰는 형식이라 사람 혼을 빼버려. 육체는 불편해져야 해. 정신은 육체의 편안함에 비례해서 쇠퇴하는 것 같아. 요새는 어쩐지 순수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 같다. 전세상이 디자인 쪽으로 바뀌는 것 같아. 효과가 덜 나더라도 희생하면서 편안하고 안전한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현실은 그 싸움인 것 같다.” 반면 젊은 작가들은 거대한 이론이나 목표보다 개인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복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그려온 정명조 작가(38)는 “저는 작업하는 것이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예술에 대한 거창한 생각이 없어요. 역사에 남는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특별히 하지 않아요”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선배 작가에게 말했다.

작가들의 대화는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제한 없이 이루어졌지만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이라는 것이 있을까’와 ‘화랑과 작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질문은 갤러리 측에 의해 공통적으로 주어졌다. 좋은 작품에 대한 원로 조각가 최종태씨(76)의 답은 이랬다.

“추사 글씨는 감격은 있는데 눈물은 안 났다고. 그런데 눈물은 궁체에서 나더라. 정성 들여서 한자 한자 잘 썼어. 너무 절실하게. 어떻게 그렸든간에 그림에는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그림의 밑바닥이 아닐까. 누군가가 ‘의미가 예술을 지배할 때 예술은 쇠퇴한다. 예술이 의미를 배제하면 공허해진다’고 했어. 그 말에 아주 공감을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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