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울보 연습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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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03 10: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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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공주 됐네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단독 캐스팅 윤공주
1년 전 그의 부모는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을 보고 난 후 혀를 찼다. “우리 공주랑 너무 안 어울린다”고 말했다. 안 어울린다고 말했지만 실은 금지옥엽 막내 딸이 그렇게 험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지난해 김선영과 더블 캐스팅으로 알 돈자 역을 연기한 윤공주(27)는 지난 12일 LG아트센터에서 시작된 ‘맨 오브 라만차’ 재공연에서 단독 캐스팅으로 52회 전공연에 도전한다. 부담은 크지만 신났다.

알 돈자는 여주인공 격이다. 하지만 부르는 노래가 한 소절도 아름답지 않다. 가슴 저미고 때론 포악스럽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알 돈자는 허름한 여관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간간이 몸을 팔고, 처참히 노새끌이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기까지 한다. 들불이 이는 벌판에서 바람을 기다리는 억새풀 같다고 할까. 더 이상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는 여인이다.
“하지만 알 돈자는 돈키호테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져요. 돈키호테는 늙고 힘 없는 노인이었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죠. 그만이 유일하게 ‘고결한 여인, 둘시네아’로 부르며 진정으로 사랑해줘요. 알 돈자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돈키호테의 메시지를 이어받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극중극 형식으로 극작가 세르반테스가 지하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돈키호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전개된다. 돈키호테 역은 류정한과 정성화가 맡았다.

“정성화씨는 작품에 대해 열심히 분석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이에요.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류정한씨는 눈빛 연기가 정말 강렬해요. 사실 이미지보다 재미있는 분이세요. 이 작품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다시 하고 싶었는데 1년 만에 기회가 왔어요. 작년에 무모한 줄 알면서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아쉬움이 컸죠.”

이번 공연을 하면서 연출가 데이비스 스완은 ‘윤공주가 알 돈자스럽다’고 평가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2003년 데뷔했다. 알 돈자는 그동안 연기해온 ‘그리스’의 샌디, ‘겨울나그네’의 주연, ‘컨펜션’의 태연, ‘율숙업’의 나탈리 등 청순하면서도 밝은 성격의 인물들과는 딴판이다. 그는 마지막회 공연까지 어떻게든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 작품을 하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연기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고 있어요. 기회가 닿는 대로 연극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는 갈수록 욕심이 작아진다고 했다. 예전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연습하며 우는 게 특기였다. 선배들이 ‘우는 연습벌레’라고 놀리곤 했다. 이제는 무대에서 더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을 뿐 어디까지 올라서야겠다는 욕심은 없다.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싶고 언젠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에 결혼한 뮤지컬 배우 양소민 선배 집에 놀러갔는데 부러웠다고 살짝 털어놨다.

어린 마음에 돈 잘 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만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는 고양 일산이 개발되기 전이어서 시골 같았다.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는 친구들이 ‘네가 무슨 공주냐’라고 놀리든 말든 개구리 잡이를 즐기며 밝았다.

“배우가 이런저런 아픈 경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웃으면 보조개가 쏙 들어가고 눈빛이 반짝이는 윤공주. 9월23일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선 그를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 무더위를 견디고 한뼘 또 자라난 풀들처럼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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