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굽 이 굽 이 장항선 열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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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9.02 09: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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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을 타봤다. 옛날 장항선은 아니었다. 허름한 열차에서 완행열차의 추억을 떠올리려 했는데 장항선도 많이 변했다. 종착역도 장항역이 아니라 서대전이나 익산까지도 들어간다. 그래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역사도 보였고, 차창 밖으로 정겨운 농촌마을의 풍경도 펼쳐졌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 현재 구간구간마다 굽은 기찻길을 펴고 새로운 역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장항선은 용산에서 출발한다. 새마을호는 좌석이 있었지만 무궁화호 입석표를 끊었다. 이왕이면 느리고, 허름한 게 장항선이란 이름과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장항선은 적당히 낡은 그 옛날 무궁화호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깨끗했다. 카페열차에는 동전을 넣는 컴퓨터와 오락기도 있었다. 그 옆에는 노래방, 자동안마의자도 놓여 있다. “세상 변한지 모르고 옛날 열차를 떠올리다니….” 속도가 느린 것만 빼면 오히려 KTX보다 낫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영등포역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올라탔다. 얼굴을 마주보게 의자를 젖혀놓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불쾌하진 않았다. 어차피 완행열차란 시골장터 같은 분위기가 있어야 제맛이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도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장항선은 출근열차로 많이 이용된다. 열차는 금세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근시간을 넘긴 터라 정장 차림의 직장인은 없고 노인과 대학생, 아이들만 보였다. 카페칸도 북새통이 됐고, 대학생들은 열차 계단을 차지했다. ‘씩씩한 아줌마’는 화장실 통로에 몸을 구겨넣었다.

열차는 활기찼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 녀석이 자꾸 오라는데 이제 죽을 나이가 다 돼서 어딜가? 뼈는 여기서 묻어야지.”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인들은 대학생들이 밀려와 좌석표를 들이밀자 슬그머니 일어섰다. 고향에 바람 쐬러 가는 죽마고우라고 했다. 가끔 장항선을 탄단다. 대학생들은 대천해수욕장에 간다고 했다. “방은 일단 가서 잡으려고요. 방 없으면 바닷가에서 날밤 새워도 돼요.” 씩씩했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커플도 보였다. 남학생은 ‘난닝구’에 바지가 거의 흘러내릴 것 같았다. 고교생들은 이 바지를 ‘똥싼 바지’라고 불렀다. 여학생은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광대뼈도 분칠을 많이 해서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갰다.

거기서부터 옛날 풍경이 나왔다. 열차가 마을을 끼고 돌았다. 철로 바로 옆에 다 쓰러진 함석집, 양철지붕집이 보였다. 옛날엔 기찻길옆 오두막집도 많았는데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지고, 철도도 도시 중심부에서 옮겨지고 있다. 대천역.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대부분 내리자 열차는 다시 한가해졌다. 대천역은 새로 지어 마치 서울의 지하철역처럼 보였다. 하지만 서천역은 옛모습이 그대로다. 철로변 쉼터의 창틀은 낡았고, 의자도 허름했다. 잘 지어진 대천역사보다 오히려 이런 낡은 서천역이 더 정겨웠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2’에서 추억의 완행열차에 대해 이렇게 썼다. ‘당시의 기차들은 속도 때문에 풍경을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또 작은 도시와 큰 도시를 차별하지도 않았다.’ ‘옆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코를 골며 잠들기도 하고, 서로 몸이 부대끼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긴 의자에 옆으로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있었던 서민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차여행이 좋았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속도의 시대. 느린 것은 배척당하고 만다.

장항선은 서천 부근부터 꽤 구불구불했다. 철로 직선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열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굴도 보이고, 마을 앞도 지나쳤다. S자로 휘어진 철로에서 기차가 덜컹거렸다. 올 1월 개통한 장항역은 ‘번쩍번쩍’했다. 마을에서 6㎞ 떨어진 역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옛 장항역은 어떻게 됐을까? “장항화물역으로 바뀌었어요. 실제로 열차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한솔제지회사의 열차가 가끔 왔다갔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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