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청담동을 ‘사치 앤드 더 시티’로 만든 건 한국적 자본주의” [패션칼럼니스트 심우찬 ‘청담동 여자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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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26 09: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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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서민들의 전셋값 정도인 고가의 핸드백을 든 여성들, 커피 한잔 마시러 가도 ‘발레파킹’ 서비스를 해주는 카페, 한집 걸러 있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유명스타들이 드나드는 미용실, 그리고 세계에서 단위 매장당 가장 높은 매출을 올렸다는 외국 화장품의 매장 등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은 지구상에 청담동이 유일하다.

압구정동을 제치고 유행의 메카로 떠오른 청담동과 그곳에 살거나 드나드는 여성들에 대해 대한민국 남성이 책을 펴냈다. ‘보그’ ‘바자’ 등 패션전문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력해 김희선·송혜교 등의 화보집을 기획·진행했으며 프랑스의 명품브랜드 ‘셀린’에서 출시된 송혜교백을 기획해 매진 기록을 세운 심우찬씨가 쓴 청담동 여성들에 대한 관찰집은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저 한 동네에 사는 여성들이 책 한 권을 쓸 만큼 이 시대를 대변할 특징이 있을까. 4년 동안 구상해 ‘청담동 여자들(시공사)’을 썼다는 심우찬씨를 만나 화려함에 감춰진 청담동 여성들의 이면을 들어봤다.

세계에서 가장 사치하며 제일 열정적인 청담동 여자들
-왜 강남이나 압구정동이 아니라 청담동 여자들의 이야기를 썼나.
“내가 청담동이라고 부르는 곳은 행정상의 주소와는 상관없는 상징화된 동네, 유행의 메카로서의 청담동이다. 굳이 지역적으로 규정하자면 갤러리아 백화점과 청담초등학교 골목에서 학동사거리, 도산공원 주변까지를 포함한 구역이다. 강북여자와 강남여자가 복장이나 생활패턴에서 차이가 나듯 압구정과 청담동 여자들도 다르다. 압구정동은 이젠 더 이상 유행의 발원지가 아니다. 최근에 한 손엔 루이뷔통 가방을, 한 손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거리를 다니는 ‘된장녀’란 신조어가 탄생하면서 청담동의 여자들이 더불어 엄청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거나 혹은 결혼으로 신분 상승한 여성들이 자신의 경제수준에 맞는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로 꾸미고 다닌다고 온갖 비난과 저주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입맛이 씁쓸했다. 역삼동의 스타타워나 태평로 삼성빌딩에서 루이뷔통이나 프라다의 가방을 들고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남자들에게 ‘된장남’이란 레이블을 붙이지는 않는다. 자세히 보면 청담동 여자들은 좀처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아 거리에서 관찰하기가 쉽지 않고, 어떤 브랜드인지 확실히 드러나는 패션은 촌스럽게 여겨 잘 입지 않는다. 된장녀 중에 청담동 여자도 있겠지만 청담동 여자들이 모두 된장녀는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또 그런 사치와 허영에만 천착해 정작 주체성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연민도 담았다.”

-청담동이 다른 동네와 가장 차별화된 것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을 제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 어느 국제도시에도 빠지지 않는 오서독스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럭셔리 업계에서나 식음료업계에선 청담동에서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에서의 성공이라고 한다. 핸드백이건 커피숍이건 청담동에서 뜨면 점차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청담동에서의 유행은 곧 진리이고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청담동 여자들은 비난마저도 감수하며 유행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곳에선 부와 명예가 품위와 인격이 되기도 하지만 첨예한 비수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내기도 한다. 연예계는 물론 귀부인들의 스캔들과 가십이 제일 먼저, 빨리 퍼지는 재미있는 곳이다.”
-청담동 여성들 사이에서도 계급이나 서열이 있나.
“그렇다. 원래 부자인 청담동 귀족녀들, 연예인과 그를 따르는 코디네이터 등의 프로펠러들, 오로지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하려는 페라가모 헤어밴드걸들(단아한 이미지의 페라가모 헤어밴드를 하고 차분한 옷을 입어 시어머니감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려는 여성들), 그리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부를 누리는 청담동 사모님들로 분류된다.”

-청담동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비단 청담동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명품’에 지나치게 중독됐다는 것이다. 전 국민의 40% 이상이 루이뷔통,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를 구입한 경험이 있을 만큼 명품은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가장 럭셔리 상품이 많이 팔린다는 일본에서도 명품(名品)이란 말을 쓰지 않고 그저 ‘브란도모노’ 정도로 불린다.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거쳐 명성과 제품의 질을 인정받아야 명품인데 우리는 무조건 고가품을 명품이라고 한다. 제품의 디자인이나 품질이 아니라 비싸다는 것만으로 열광하는 풍조가 안타깝다. 또 패션칼럼니스트로서 절망감을 느낄 때는 매스컴을 장식하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작 사건의 본질을 뒤로하고 사건주인공들이 뭘 입고 무슨 브랜드를 들었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동대문에 수많은 미소니 짝퉁을 유행시킨 신창원, 에스카다 선글라스를 유행시킨 린다 김, 알렉사너 매퀸의 티셔츠를 입고 에르메스 넥타이를 선물했다는 신정아가 대표적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는 발상, 그리고 그걸 명품이라고 칭하며 그걸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선택받은 1%에 속한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이 청담동을 비롯한 한국에 너무 많다. 부모나 애인을 잘 만나서 20대에 1000만원대의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면 과연 환갑 때는 무얼 들고 다닐까. 돈이면 ‘정신적인 격조’조차 살 수 있다고 굳게 믿는 한국적 자본주의 때문에 청담동이 ‘섹스 앤드 더 시티’보다 더한 ‘사치 앤드 더 시티’로 비난받는 이유가 아닐까.”
너무 진화가 느린 한국남성들이 문제다

-책에는 청담동 여자들만 아니라 연예인, 아나운서, 미스코리아에 대한 질타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들이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에 비해 한국 스타들은 자긍심이 너무 부족하다. 돈만 되면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 듯 자신이 전혀 사용하지도 않는 제품을 쓰라고 권하고, 살지 않으면서 아파트의 주민인 것처럼 사기를 친다. 또 아나운서들도 점차 연예인화돼서 오락프로에서 망가지거나 연예인보다 더 야하고 심지어 천박한 옷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전하는 뉴스에 신뢰를 보내는 시청자들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스코리아가 한국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바로 미스코리아가 이름만 한국을 대표할 뿐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기형적으로 서구화된 미인을 뽑는다는 데 있다. 식생활 변화로 체형이 많이 서구화됐다고는 하나 미스코리아가 지향하는 미의 기준은 한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 잘못된 기준으로 작은 얼굴, 긴 다리는 아름다운 것이고 짧은 다리와 큰 얼굴은 추하다는 편견을 만들어냈다. 근대 미학을 재정립한 바움가르텐은 아름다움은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움이란 지식과 경험,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 지적이거나 감각적이라는 상반되는 두 요소의 인식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지 판박이 상품이 아니다. 미스코리아가 최근엔 교양을 강조한다면 장학퀴즈 스타일로 바꾸는게 낫고 또 국제대회에서 반쯤 벗은 모습으로 1등을 한들 그게 진정한 국위선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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