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음침한 욕망의 거리, 눈부신 뉴타운 변신[세계 홍등가 재개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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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25 09: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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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붉은 불빛과 여인들의 야릇한 눈빛이 자아내는 퇴폐적인 분위기. 좁고 낡은 골목에 울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떠다니는 음험한 공기. ‘홍등가’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할 듯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독일 함부르크, 스페인 마드리드 등 세계 곳곳의 오래된 홍등가가 패션 특구나 주택가, 고층 빌딩을 갖춘 다운타운으로 속속 탈바꿈하고 있다. 개발에 밀려 붉은 등이 꺼진 자리를 눈부신 마천루나 최첨단 유행 패션의 옷가게, 고급스러운 갤러리의 부드러운 조명이 밝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비판받아온 홍등가가 사라질 운명에 놓이자 한쪽에서는 쌍수를 든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좋든 싫든 도시의 일부분이 되어온 홍등가의 소멸에 아쉬움과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홍등가의 대변신
닳고 닳은 자갈이 깔린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힌 독일 함부르크의 ‘레페르반’ 지역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홍등가다. 붉게 물든 유리문 너머 손님을 부르는 여성들 사이 수십 개의 스트립바와 술집, 성인용품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성(性)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에게는 미슐랭 가이드의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이나 최신 패션의 부티크 못지않게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주상복합 빌딩들이 건설되거나 건설 계획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이에른 콤플렉스’ 건설 계획은 단연 주목거리다.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2만8000㎡의 부지 매입에만 3억5000만유로(약 5430억원)가 투입됐다. 이를 통해 영국 건축의 대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최고급 호텔과 모든 입주자가 넓은 통유리를 통해 창 밖 풍광을 볼 수 있는 아파트 등이 채워질 계획이다.

바이에른주 인근의 ‘아틀란틱 하우스’ 역시 거대 프로젝트 중 하나다. 내년에 완성되는 이 21층 주상복합 타워에 투자된 돈만 1억유로(1550억원). 또 다른 주상복합 ‘보넨 인 데르 호펜스트라세’는 3500만유로(537억원)짜리 프로젝트다. 홍등가의 개발 붐은 성매매가 합법화되어 있는 네덜란드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데 왈렌’ 구역은 700년 전부터 형성된 오래된 홍등가다. 17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활성화된 이곳 홍등가는 2000년 성매매 합법화 이후 더욱 번성하고 있다. 약 500곳의 업소가 성매매로 벌어들이는 돈만 연간 1억유로(1550억원)에 달한다. 중세 교회 7곳과 수백채의 역사적 건물들이 위치한 이 지역의 부동산 가치는 어림잡아 수천만 유로다.

하지만 최근 이곳 역시 부동산 개발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데 왈렌 개발의 특징은 첨단 패션의 메카로의 변신을 시(市)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 매춘은 합법이지만 마약이나 인신매매, 폭력 등 각종 부작용과 범죄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의지 때문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암스테르담 시 당국은 패션 컨설팅업체 HTNK와 함께 신세대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레드라이트 패션 암스테르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홍등가 건물을 사들여 젊은 패션 디자이너에게 1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식이다. 시 당국은 지난해 가을 이 지역을 주름잡던 거물 포주 찰스 게르츠, 일명 ‘팻 찰리’의 건물 20채를 사들이는 등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이르는 건물들을 2500만유로(388억원)에 매입했다. 홍등가를 차지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건물을 작업실과 매장, 갤러리로 사용하며 활동하고 있다. 미니스커트나 비키니로 남성들을 유혹하던 매춘부들의 쇼윈도는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은 마네킹이 차지했다.

홍등가가 패션 매장으로만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겨울 로데위그 아셰르 암스테르담 부시장은 이 일대 건물 18채를 허물고 고급 주택을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암스테르담과 달리 스페인 마드리드의 홍등가는 민간 개발업자들이 개발을 위해 시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 가장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기업은 ‘악트리발 그룹’. 악트리발은 이 지역을 아파트와 고급 패션 숍으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부동산을 하나하나 손에 넣고 있다.

왜 홍등가가 고급 단지가 되나
낙후된 시내 중심가를 재개발하는 전례는 늘 있어 왔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는 마약과 매춘, 범죄가 창궐하던 암흑가가 화려하고 깨끗한 관광명소로 재탄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노팅힐 역시 마찬가지다. 노팅힐은 20년 전만 해도 흑백 대립의 긴장이 높은 가난한 동네였지만 개발 후 지금은 런던은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곳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최근의 개발 붐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지역에 수치심과 불안감을 안기는 홍등가를 일반적인 주택가나 상업 지구로 개발하는 것을 넘어 어느 곳보다 고급스럽게 변모시키는 쪽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연히 건설이나 자금 규모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홍등가에 이처럼 고급 개발 붐이 불어닥친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함부르크나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는 오랜 기간 개발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부지를 찾기 어렵다. 전 세계적인 부동산 개발 붐과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 때문에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땅값도 부담이다. 이 같은 배경은 빈민가, 유흥가 등 소외받던 지역의 가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역사 깊은 홍등가일수록 가치 있는 건물들이 위치해 있다는 것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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