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국 경찰관이 된 필리핀 여성 아나벨 카스트로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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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18 08: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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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전향’이나 ‘미혼’이라는 말에는 체제의 주류적 사고에 맞추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상을 바꿔야 하고,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제적 당위가 스며들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들이 ‘비전향’이나 ‘비혼모’로 대체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 같은 폭력성 때문일 터이다. ‘귀화(歸化)’라는 말에도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살려면 우리나라 사람이 돼야 한다”는, 소수의 외국인을 향한 다수 내국인들의 생각이 일정하게 배어있다고 하겠다.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을 뜻하는 이 말은 원래 ‘임금의 덕에 감화되어 그 백성이 되는 일’, 즉 군주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필리핀 여성이 경찰관이 됐다. 지난달 25일 중앙경찰학교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경찰관에 임용된 아나벨 카스트로 경장을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만나 ‘귀화 경찰관’이 된 사연과 11년 한국생활의 애환을 들어보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경찰서 원곡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나벨은 경찰청에 용무가 있어 서울을 들렀던 길에 경향신문사를 찾았으며, 중앙경찰학교 외사사이버과정 219기 동기생인 박선영 경장(경기 파주경찰서 광탄파출소 근무)이 인터뷰를 돕기 위해 그와 동행했다. 아나벨은 인도네시아 출신 주지강 경장과 함께 임용됐는데, 지난해 임용된 중국동포 출신 신춘화 경장까지 합치면 외국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얻은 뒤 경찰관이 된 사람은 모두 3명이다.

아나벨 카스트로. 가만, 이름과 성이 하나같이 귀에 익은 것들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불멸의 연애시 ‘애너벨 리’의 그 애너벨이 바로 아나벨 아닌가. 카스트로는 더이상 말할 것도 없다. 쿠바의 최고권력자 피델 카스트로 혁명평의회 의장과 그의 후계자 라울 카스트로가 혹시 아나벨의 친척이라도 되는 것인가. 대뜸 쿠바의 카스트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나벨은 파안대소했다. 그는 “카스트로는 아주 멀리 있는 친척”이라고 짐짓 능청을 떤 뒤 “사실은 성이 같을 뿐”이라고 말했다.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서 아나벨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한다. 아이들 어머니 역할까지 맡고 있는 시어머니, 남편(정병옥·46), 성주·성민·유미 3남매, 시숙, 시동생, 동서, 조카 등이 모두 와서 그의 졸업과 경찰관 임용을 진심으로 축하했기 때문이다. 아나벨은 특히 올해 열살난 둘째 아들 성민의 얘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성민이는 아나벨이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할 때 엄마의 가방 속에다 편지 한 통을 써 넣었다. “엄마, 힘들겠지만 꼭 졸업해야 해”라는 사연을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는 아나벨은 “아이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경찰관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졸업식장에서도 성민이는 “엄마가 경찰관이 돼서 좋긴 한데 항상 못 보니까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나벨은 “우리 아이들이 한결같이 정이 많고 효자·효녀인데 특히 둘째가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중앙경찰학교의 외사사이버 과정 24주 동안 아나벨은 대한민국의 경찰관이 되기 위한 ‘문무(文武)’를 집중 연마했다. 형법, 형사소송법, 경찰관집무집행법 등은 물론 정보, 보안, 외사 등 외사과목도 배웠다. 또 순찰차 및 스쿠터 운전법, 음주측정법, 무전기 조작법과 사격, 유도 등도 익혔는데 유도는 초단을 땄다. 아나벨과 인터뷰에 동행한 박선영 경장은 “언니가 사격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고 체구는 작지만 아줌마라서 그런지 힘도 보통이 아니다”라며 “언니가 입교생 가운데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자연스레 ‘언니’ ‘누나’ 노릇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해 다들 좋아하고 따랐다”고 말했다. 아나벨은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법률과목을 따라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면서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통과했다”고 말했다.

아나벨은 1997년 ‘농촌 총각’이었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인이 됐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과 알게 된 아나벨은 2년 동안 편지도 주고받고, 가끔씩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만나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다가 결혼에 이르게 됐다. 남편의 어떤 점에 끌렸느냐는 질문에 아나벨은 “마음씨가 넓고 명석해 보였다”면서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서신 왕래를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도 참 좋게 보였다”고 말했다.

아나벨이 살고 있는 전남 함평군 월야면 외치리 백야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7남2녀의 둘째 아들인 남편은 이곳에서 채소, 오이, 호박, 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오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농촌이 대부분 그렇듯이 백야마을에도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아나벨을 딸이나 손녀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다고 한다.

아나벨 역시 ‘○○아짐(아주머니의 전라도 사투리)’ ‘○○할머니’ 등으로 부르며 깍듯하게 모시고 있다. 그러나 아나벨이 처음 한국생활을 시작했을 때 백야마을 주민들의 ‘과도한 이웃사랑’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마을 사람들이 노크도 하지 않고 신혼의 꿈에 젖어 있던 아나벨 부부의 방에 불쑥불쑥 들어오기도 했던 것이다. 아나벨은 “지금은 한국 농촌문화의 하나로 익숙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언어였다. 특히 남편의 형제가 너무나 많아 ‘아주버님’ ‘형님’ ‘막내고모’ ‘막내삼촌’ 등의 복잡한 호칭을 하나하나 제대로 익히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나벨은 “필리핀에서 생물교사로 일했던 만큼 공부는 잘하는 편이어서 남들보다 빨리 한국어를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본과 영어로 된 한국어교본을 거의 외울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서점에 가서 구입한 동화책도 그의 한국어 실력 양성에 밑거름이 됐다. 아나벨은 “동화책을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읽으면서 한국말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도 훌륭한 한국어교사 노릇을 했다. 결혼 초기에는 서로 영어로 의사교환을 했으나 남편의 도움으로 점차 한국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아나벨은 “책을 읽거나 TV를 보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남편은 자상하게 가르쳐주곤 했다”고 말했다.
맵고 짠 음식도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점차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그가 누구못지 않게 잘할 수 있는 요리는 하나둘이 아니다. 아나벨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잡채, 떡볶이, 갈비찜, 닭볶음탕에 남다른 경쟁력이 있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한국생활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아나벨의 활동영역도 집 밖으로 확대됐다. 현재 월야면에는 6명, 함평군 전체를 통틀어 30여명의 외국인 여성이 있는데 아나벨은 이들 가운데 필리핀 출신을 모아 2000년 ‘한필가족’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필리핀 여성 12명과 그 가족으로 이뤄진 ‘한필가족’은 한 달에 한 번씩 각자의 집에서 돌아가며 ‘전당대회’를 열고 있다. 아나벨은 “한필가족 모임 날짜가 다가오면 어린아이들이 소풍날 기다리듯 즐거워하곤 했다”면서 “이제 멀리 떨어져 공직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모임에 제대로 참석할 수 없게 된 것이 무엇보다 섭섭하다”고 말했다. 한필가족 회원들은 읍내에 있는 성당에서도 만나 더욱 우의를 다지고 있기도 하다.

아나벨이 경찰관이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한국어 실력이 부쩍 향상된 데다 교사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외국인 여성들을 상대로 한글을 가르치는 등 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가끔씩 함평경찰서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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