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막장의 눈물이 꽃이 되었나’[정선 야생화축제·폐광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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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18 0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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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함백산에 야생화를 보러 갔다가 정선 고한읍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에 들렀다. 8일부터 17일까지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데 주행사장이 폐광된 삼탄 정암광업소다. 야생화와 폐광촌? 뭔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재밌는 여행이었다.

폐광촌이 특별하고 새롭게 단장된 것은 아니다. 문 닫은 사무실에 벽화를 그리고, 석탄문화를 볼 수 있는 약간의 전시공간을 만들었을 뿐인데 일반 석탄박물관보다 더 생생했다. 석탄박물관이 잘 꾸며진 테마파크 같다면 삼탄 정암광업소는 탄가루가 아직도 묻어있는 현장으로 보면 된다.
탄부들의 X레이, 지출 내역이 담긴 서류, 사진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함백산 야생화는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야생화 보러 가는 길에 광업소도 빼먹지 말자는 뜻이다. 폐광 사람들이 꽃축제를 열게 된 사연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삼탄 정암광업소
‘빈티지 여행지’로 딱이겠다. 아스라한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낡은 것들이,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다. 축제 기간 외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지만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김수복 고한읍장은 “폐광 이후 고물상들이 몰려와 몽땅 가져가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 역사를 잊을 수 없어 몸으로 막아 지켜 옛모습이 남아있다”고 했다.

광업소 폐갱구 입구엔 아직도 ‘아빠 오늘도 무사히’ ‘안전+제일’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나마도 약간 비뚤어졌다. 간판쟁이가 쓴 게 아니라 아마도 붓놀림 좋은 사무실 직원을 뽑아 그렸을 것이다. 2001년 문을 닫았으니 7년이 훌쩍 흘렀다. 사람이 떠난 흔적이 사무실 입구부터 칙칙하다.

민중당의 팸플릿도 눈에 띈다. ‘민중당의 청사진-이젠 노동자가 정치권력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란 글자 아래 초청 강사 김문수 노동위원장이라고 씌어 있다. 광부들끼리 몰래 돌려보던 ‘삐라’쯤 됐을까? 노동운동가는 당시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고, 적잖은 탄압도 받았다. 그 시절 신문기사도 찾아 걸어놨다. 검은 바탕에 흰글씨의 제목은 ‘매몰 광부 전원 사망’. 그 옆에선 알몸으로 탄가루를 닦아내고 있는 목욕하는 탄부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 모습이 처량하고 슬프다. 사람 같지 않다.

만항재(1330m)에 도로를 뚫기 시작한 것은 1948년이다. 지금도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다. 가난했던 그 시절 이 산골짜기에 도로를 놓은 것은 다 석탄 때문이다. 함백탄광은 1948년 상공부 주도로 개발됐다. 고한읍에 석탄광산이 들어선 것은 60년대. 김수복 읍장은 “1962년 삼척탄좌가 함백산 만항마을에서 탄광을 열었다”고 했다. 그 전에는 화전민이나 살던 곳으로 주민은 몇 가구 안됐다. 고한이란 이름도 고토일 마을과 물한리 마을에서 한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정암광업소가 생긴 것은 삼탄이 만항마을 석탄을 다 파먹고 난 뒤다. 삼탄이 79년 정암으로 내려와 다시 갱구를 팠다. 탄부들의 생활은 비참했지만 돈은 많이 벌었다. 그 때만 해도 탄광 경기가 좋아 마을이 흥청거렸다. 최동순 번영회장은 “막걸리집에도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있어 술을 따라 줬다”며 “중앙에서 출장온 공무원들도 꼭 들렀다”고 했다.

정선의 작가들이 폐쇄된 삼탄 사무실에 그린 벽화
광부 중엔 뜨내기도 많았다. 탄광이 개발되기 전엔 고한읍에 사는 사람이 불과 수십가구에 불과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전국 곳곳에서 몰려온 광부들은 깜박거리는 백열등 아래서 탄을 캤다.

탄부들의 막장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카지노로 이어졌다.
“강원랜드 주변 식당에는 서울말, 부산말 쓰는 아줌마들이 있어요. 도박으로 돈 다 날리고 식당에서 일하며 사는거죠. 돈 날린 아저씨들은 식당일은 안해요. 어떻게든 카지노 언저리에서 빙빙 돌아요. 입장권 줄 서서 받아주고 돈 좀 받고 그러는거죠. 뭐.” 김수복 읍장은 “강원도 사람은 무뚝뚝한데 서울 사람, 부산 사람들이 일하면서 서비스가 약간 좋아진 면도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탄부들만 막장 인생이 아니라 도박으로 망한 사람들도 카지노 막장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만항재 야생화
산 아래는 대박을 노리는 카지노 인생들이 기웃기웃거리는 ‘한탕도시’지만 만항재는 야생화로 지천이었다. 실제로 함백산은 야생화 천국이다. 인근 함백산 옆자락 금대봉은 자연생태보전지구로 아예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만항재는 야생화 탐방로가 조성돼 있는데 평일에도 꽃사진을 찍기 위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온 사람들이 많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꽃은 둥근이질풀. 진홍색의 말나리도 있고, 주황색의 동자꽃도 보인다. 노루오줌, 큰까치수영, 참나물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선군이 나눠준 안내 팸플릿에는 ‘막장의 하늘, 바람, 꽃 그리고 사람의 향기’란 제목의 초대사가 실려 있다. 초대사가 꼭 시(詩) 같다.
‘전쟁터 같은 막장에서 일하던/ 수 많은 광부들의 땀을 거름 삼아/ 그들이 채 버리지 못했던 새싹을 뿜었던 것일까?/ 함백산 자락에는 하늘 향한 나리와 수줍은 초롱이 피었습니다/ 이곳을 채 버리지 못한 우리는 이 들꽃을 희망이라 부릅니다/ 시커먼 땅, 폐허 속에서 피어난 우리들의 희망/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곳 사람들의 질긴 삶을 닮은 희망꽃입니다.’ 한시적으로 허가된 정선 내국인 카지노도 2015년이면 문을 닫아야 한다. 카지노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정선 사람들에겐, 저 야생화들이 희망일 것이다.

▲여행길잡이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제천IC~영월~정선 코스를 이용하는 게 정석이지만 휴가철과 주말에는 영동고속도로 여주~만종구간이 많이 막힌다. 오히려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타는 게 낫다.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충주 방향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감곡IC로 빠진다. 이후 38번 국도만 타고 가면 정선으로 이어진다. 만항재는 태백·삼척 방면으로 달리다 정암사 쪽으로 우회전하면 된다. 삼탄 정암광업소는 정암사 못미처 우회전해 빠지는 길이 있다. 축제 기간에 맞춰 광업소 입구에 꽃축제 안내판과 시설물을 설치한다. 삼탄광업소는 축제 기간에만 문을 연다. 전시장은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http//gogohan.go.kr (033)592-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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