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전쟁·유물 사냥꾼에 무방비 노출된 이라크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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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14 09: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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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에서 보면 이라크는 ‘죽음의 땅’이다. 더 이상 ‘알라딘의 요술램프’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가 담긴 ‘아라비안나이트’의 고향이 아니다. 신밧드가 모험을 시작하며 출항한 바스라 항구는 그저 피바람이 부는 전쟁터일 뿐이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순수 민간인만 387명이 희생당했다.

국제 고고학계는 이라크 상황을 또 다른 차원에서 죽음의 땅으로 본다. 인류 문명의 시원을 알려줄 고대 유물이 거의 매일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 ‘유물 사냥꾼’들의 손에 넘어간다. 수많은 정보를 품고 있을 유적이 도굴로 파헤쳐진다. 수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대 건축물들이 부서져나간다. 학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간직한 수많은 수수께끼들을 영원히 풀 수 없을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한번 훼손된 문화유산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우리의 숭례문(남대문)이 복원된다 한들 600여년이란 세월의 더께까지 복원해낼 수 없는 것처럼.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라크는 “온 국토가 박물관”이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은 인류 4대 문명의 하나로 원류가 9000여년 전까지 올라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낳았다. 이후 5000여년 전 수메르부터 아시리아, 바빌론 문화 등을 키워낸 땅이다. 대영박물관의 존 커티스 연구원은 “인류 문명의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이라크의 문화유적은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 시카고대 고고학팀은 90년대 후반 이라크 전역을 조사한 뒤 무려 50만곳에서 유적이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이 중 국제 고고학계가 인류 역사의 핵심 유적으로 꼽는 것만 1만2000여곳이다. 그러나 이라크 문화재 관리요원은 현재 1500명에 불과하다. 전세계 유물 사냥꾼들에겐 ‘꿈의 땅’인 셈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유적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유물 사냥꾼들이 전국을 누비고 있다고 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등 외신들은 전한다.

설형문자를 만든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르,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 아시리아 제국의 님루드는 물론 키시, 니네베, 모술 지역이 대표적으로 훼손된 유적들이다. 엘리자베스 스턴 미 스토니브룩대 교수는 “아예 유적지 밑으로 터널을 파 도굴할 정도”라며 “차이는 있지만 유적의 대부분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CSM은 불도저,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아주 조직적으로 도굴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도굴꾼, 약탈자들은 다양하다. 고대 유물 하나를 훔쳐 일확천금을 노리는 좀도둑도 있고, 생계형 도굴범도 있다. 종파간 갈등과 분열에 따른 상대 종교유적 파괴도 잇따른다. 무장세력도 자금 마련을 위해 유물에 손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바논의 고고학자 조앤 파치아크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적 파괴의 위험성은 커진다. 어쩌면 우리 손자들은 수메르 문명에 대해 배울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유적을 파괴하는 것은 약탈꾼들만이 아니다. 미군은 우르에 군기지를 세워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폴란드군은 바빌론 유적을 훼손했다. 이라크의 고고학자 바하 마야 박사는 지난 5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연합군이 군기지 등으로 사용함으로써 훼손된 우르, 자바람, 움마, 바빌론 등의 유적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유적 파괴를 수수방관하고, 지금도 모른 체하는 국제사회를 향한 절규다.

사실 이라크의 유물 수난사는 페르시아 제국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1750) 때 창제된 ‘함무라비 법전’을 새긴 비석이 1902년 이란에서 발견돼 지금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어 몽골의 침략, 서구 식민 제국들의 약탈로 유적들은 계속 상처를 입었다. 90년 걸프전 때 미군 공습으로 우르 인근의 지구라트 유적 등이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미군 주도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 문화재 수난사에서 최악의 경우다. 개전 20여일 만에 미군이 바그다드를 장악한 4월10일. 이라크 고고학자들은 이날을 “이라크 문화의 사망일”로 표현한다. 바그다드를 장악한 미군은 전세계 학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립박물관 등을 혼란 속에 방치했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미군이 보호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이틀이 지난 후였다. 그 이틀 동안 국립박물관이 털리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쟁 발발 전 전세계 학자 100여명이 사이언스지를 통해 미국에 “폭격뿐 아니라 무법천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탈로 귀중한 유물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한 경고가 현실화한 것이다. 맥과이어 깁슨 시카고대 교수(메소포타미아 고고학)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격변으로 유물·유적이 훼손된다면 이는 이라크만이 아닌 전세계의 비극이라고 전쟁 전 경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틀 동안 사라진 유물만 1만5000여점에 이른다. “국립박물관의 120여개 전시실과 연구실의 방문이 모두 부서졌다. 수장고까지 털렸다.” 도니 조지 바그다드박물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대영박물관의 존 커티스 연구원은 “사담 후세인 제거의 대가가 비쌀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지적했다. 자와드 바샤라 당시 문화부 대변인은 “미군은 이라크의 문화와 예술품, 문화재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원유와 무기를 우선으로 여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약탈당한 유물들은 지금까지 이라크 정부와 전세계 학자들의 호소로 1만여점이 이라크로 돌아왔다. 지난달 24일 이탈리아가 13점을 반환했고, 시리아는 701점을 이라크로 돌려줬다. 이라크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독일 등을 상대로 반환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5000여점의 유물이 고향을 잃고 떠도는 셈이다. 미군 당국은 지난 5월 도굴과 유물 밀반출 등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요르단에 ‘문화재 보호 전문 병력 양성’을 위한 캠프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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