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시집 한권 들고 떠나는 변산반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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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8.12 08:50:38
  • 조회: 11317
ㆍ듣기만 해도 괜히 찡해지는‘늙은 바다’
지난 주는 비가 질기게 내렸다. 먹구름은 젖은 한지에 먹물 번지듯 밀려왔고, 변산반도는 여행기간 내내 어둑어둑했다. 사실 날이 좀 궂어도 변산은 별 상관없다. 파란 바다만 찾는 사람들의 눈엔 변산은 칙칙하다. 갯벌은 거무잡잡하고, 물도 맑지 않다. 그래도 전라도 사람들은 “거긴 맥없이(이유 없이) 찡한 데가 있다”고 한다. 축 처지고 늘어진 가슴팍에서 손자에게 ‘눈깔사탕’ 하나를 내놓는 늙은 어머니처럼 촌스럽지만 아늑하단 것이다. 이런 까닭인지 변산의 바다 한 귀퉁이를 파고들어 소줏잔에서 시를 길러낸 시인들도 꽤 많다. 변산반도 한 두 번 갔다 왔다고 다 안다고 하지 말자. 혹시 가거든 눈으로만 보지도 말자. 변산을 속으로 깊이 느낀 문인들의 시 한수, 책 한권 들고가도 좋겠다.

△안도현의 모항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안도현의 모항가는 길)

시인 정호승은 ‘누구나 자기만의 바다가 있다’고 했다. 안도현에게 그 바다는 모항일 것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모항가는 길은 부안에서 들어가는 길이다. 한데, 줄포에서 모항가는 길이 더 낫다. 모항은 아늑하다. 그러나 절경이란 말을 붙이기엔 약간 모자란다. 명승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름대로 운치있다. 안도현은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라고 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 모항은 별로일지도 모른다. 외려 생활에 목매고 사는 장삼이사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이지누의 줄포와 곰소
이번 여행길에 이지누의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이란 책을 들고 갔다. 이 책은 변산반도 여행기인데 이 중 줄포와 곰소이야기가 구슬프다. 줄포는 일제 때 번성한 포구로 1936년 갯벌이 차오르자 항구로서 기능을 잃었다. 줄포가 죽자 곰소포구가 커진 것이다. 조기파시가 들어설 때 색시들이 몰려들어 들썩들썩했다는 포구는 흔적도 찾기 힘들다. 자물통을 걸어놓은 함석지붕을 이은 방앗간이라든가, 낡은 양철집 몇 개만 남아있다.

‘이젠 바닷물조차 들어오기를 꺼려 메말라버린, 듬성듬성 풀포기들만 무성하게 자라 스산하기까지 한 바다 아닌 바다를 걸었습니다. 갯골이었던 곳으로는 밤새 내다버린 줄포의 하수가 눈물처럼 빠져나가는 폐항은 남자들의 폐경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中)

줄포는 변산의 과거다. 한때 잘 살았던 부잣집 딸이었으나 어찌어찌 하다 쫄딱 망해서 시장통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상술이 서툰 안쓰러운 여자 같다. 그럼 곰소는? 갯등은 주막집 주모의 엉덩이처럼 닳아 윤이 난다. 곰소는 70~80년대까지만해도 칠산바다에서도 유명한 조기 포구였다. 어부들은 똘망배를 저어가며 ‘칠산바다에 돈 실러가세’ 노래를 부르며 풍어를 기원했다. 만선이라도 되면 ‘우리 마누라 엉덩이도 춤춘다’고 노래했다. 지금 그 바다는 예전처럼 조기가 많지 않다. 대신 포구 옆에는 천일염을 하는 낡은 소금밭이 남아 있고, 그 소금으로 담갔다는 젓갈집들만 모여있다.

△서정주의 내소사 단청
흔히 변산을 바다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외변산은 바다, 내변산은 산이다. 그 산줄기 한 귀퉁이에 뿌리를 박고 있는 절이 내소사다. 내소사 단청 이야기를 하기 전에 김경진의 시 한토막.
‘산 속의 밤은 차고, 그리운 것들은 별처럼 멀리 흩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잣나무 위에 사발만하게 걸린 별처럼 여기선 모두 가깝습니다.’(내소사에서)

숲길을 빠져나와 사천왕문을 지나면 송수권이 내소사의 종소리에도 젓갈 냄새가 자욱하다고 했던 범종각이다. 그 너머 대웅보전엔 단청이 없다. 오방색을 칠하지 않고 나뭇결 무늬를 그대로 드러낸 소지단청이란다.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모자라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로 시작되는 서정주의 ‘내소사 대웅전 단청’은 전설 같은 이야기다. 한 단청사가 단청을 칠한 뒤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아무도 쳐다보지 말라 했는데 방정맞은 사람이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는 것이다. 붓을 물고 단청을 하던 새는 바닥에 떨어져 사지가 늘어진 호랑이로 변했고, 중들이 호랑이를 깨우려 했지만 영 그만이었단다.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해서 내소사가 됐단다. 어쨌든 내소사는 저 곰소 앞바다를 닮아서 겉멋을 부리지 않아 좋다. 무채색 단청에다 꽃창살도 색을 칠하지 않았다.

변산반도에 반한 문인은 많다. 문인수는 ‘바다책, 채석강’, 최광임은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박미라는 ‘혀’, 김정희는 ‘격포에서’를 썼다. 송수권은 ‘(변산에선) 둥근 밤엔 하찮은 미물도 미쳐서 시를 쓴다’(밖변산에 살며)고 했으니 시인들은 오죽했으랴. 거기선 장삼이사도 졸시 하나 지어 바다에 날려보내도 좋을 것 같다. 사춘기 소년 소녀의 엉성하고 부끄러운 시라도 저 투박한 바다가 다 받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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