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마술계 “신비감 걷어낸 마술…누가 보러 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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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 08.08.04 09:11:43
  • 조회: 235
모르고 넘어가는 게 미덕인 일들이 있다. 마술이 그렇다.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비결을 다 알면 무슨 재미로 마술 공연을 보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 여기서 비롯되는 신비감이 마술의 생명이다. 최근 KBS ‘스펀지 2.0’이 마술 트릭을 공개한 것에 대해 마술인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방송 프로그램이 이 신비감을 걷어냈다는 데 있다.

국내 마술산업의 역사는 길지 않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연예인 같은 스타 마술사가 등장해 대중의 이목을 끈 지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마술인들은 마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좋아지고 있는 시점에 방송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마술업계의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아프게 절감하고 있다.

문하생 많아도 성공은 극소수
어느 마술사에게 ‘한국에 마술 관련 단체가 몇 군데나 있느냐’고 물었다. “한 2~3개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창피한 게, 무슨 단체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마술사가 유별나게 무심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술사가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역사가 짧은 탓에 마술업계에 아직 이렇다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것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직업 마술사가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술사 등록제도가 없고 통계자료도 없다. 1982년 ‘사단법인 한국마술협회’가 발족했지만 모든 마술사가 여기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마술협회가 발급하는 자격증도 집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아도 마술사가 될 수 있고, 실제로 자격증 없이 활동하는 마술사들이 많다.

마술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마술 도구를 제작하는 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엄연히 있지만 매출에 관한 종합보고서는 따로 없다. 뜻있는 사람들이 마술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목적으로 지난해 4월 ‘한국마술산업진흥학회’를 결성했으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자격증이 필수요건도 아니고, ‘공채 시험’ 따위도 없다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마술사가 되는 것일까. 현재 마술을 배울 수 있는 제도권 교육기관은 동아인재대학(2004년 마술학과 개설)과 동부산대학(2008년 매직엔터테인먼트학과 개설) 등 2곳이 있다. 마술 교육을 대학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의의가 있긴 하지만, 이 대학들이 수많은 마술사 지망생을 모두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술사가 되는 길은 아직까지 도제식 교육이 가장 일반적이다. 선배 마술사 밑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며 마술을 배운다. 교육 기간은 3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산하라’는 스승의 명을 받고 독립할 때 비로소 직업 마술사로 활동하게 된다.

도제식 교육을 조금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형태가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마술기획사들이다. 초창기에 설립된 몇몇 마술기획사가 이은결씨와 오은영씨 같은 스타 마술사를 배출하면서 마술기획사 여러 곳이 문을 열었다.

마술기획사가 하는 일은 연예기획사가 가수나 배우를 키우는 과정과 비슷하다. 기획사는 마술사 연습생을 훈련시켜 프로 마술사로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마술뿐 아니라 연기와 언어 구사력, 춤, 유머 감각 등 무대에서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가르친다. 재능이 돋보이는 연습생은 예비 스타로 점찍어 아낌없이 밀어준다. 가격이 너무 비싸 개인이 구입하기 불가능한 마술 장비를 지원해 주고, 해외 유명 마술사에게 특별 레슨을 받게 하는 식이다.

연예인처럼 기획되고 다듬어진 마술사들은 프로로 데뷔한 후에도 연예인처럼 일한다. 기획사는 외부에서 들어온 공연 의뢰를 소속 마술사에게 연결해 준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마술사들은 대형 무대를 빌려 마술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들은 정해진 월급을 타면서 공연이나 방송 횟수에 따라 추가로 성과급을 받는다. 스타급 마술사의 경우 한 달 매출이 1000만원 정도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공연이 많은 5월, 12월엔 한 달에 4000만~5000만원을 벌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 마술사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소득 수준이 낮은 무명 마술사들은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을 밑도는 일이 흔하다. 마술기획사 ‘매직닷컴’의 이래형 대표는 “할 수 있는 공연 횟수는 정해져 있는데 마술사들이 늘어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요즘은 공연보다 초등학교·학원에 강의하러 나가는 마술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맛집의 숨은 비결까지 다 공개한 셈”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름을 알려야 한다. 마술사가 무명에서 벗어나 스타가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방송 출연이다. 마술사가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 당사자에겐 부와 인기가, 마술업계 전체엔 마술사의 이미지 제고 및 마술산업 활성화의 효과가 돌아간다. 지난해 말 ‘스펀지 2.0’이 마술 비법을 공개하기 시작했을 때, 마술인들이 상당 기간 이를 묵인했던 이유다.

당초 ‘스펀지’가 마술 코너를 기획했던 의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펀지’ 측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마술 기법을 밝혀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마술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중략) 그 과정에서 스타 마술사를 배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마술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리라는 것”이 방송의 취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 초기만 해도 마술인들은 이 같은 기획 의도에 일정 부분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이 가벼운 생활 마술을 소개했던 당시엔 현재 출연 중인 마술사 최현우씨 외에 다른 마술사들도 프로그램 내용을 감수하는 형식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스펀지’가 보여주는 마술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일부 젊은 마술인들이 KBS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마술협회는 방송에 마술 비법을 공개한 최씨를 제명하기에 이르렀다.

마술인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송과 최씨가 ‘영업 기밀’을 지나치게 노출, 마술이 작동하게 하는 핵심 기제인 신비감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마술이 더이상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누가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겠냐는 것이다. 단순히 마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신비감까지 제거해버리는 프로그램은 되레 마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스펀지’ 이전에도 대중에게 마술 기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동영상은 있었다. 이은결씨도 책을 펴냈다. 마술사가 마술 기법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며 공연을 진행하는 ‘렉처쇼(Lecture show)’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책과 공연은 생활 마술이나 ‘스테이지’ 마술을 적당한 범위 내에서 소개하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스펀지’는 최종 단계의 마술인 ‘일루전’의 비결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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