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죽음·이별… ‘흘러가는 서정’ 무상한 노래…[‘그늘의 발달’ 펴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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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7.30 09: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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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시집, 6개의 문학상으로 시단을 ‘평정’한 시인 문태준. 그가 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로 돌아왔다. 1994년 등단해 2000년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년)을 펴낸 뒤 ‘맨발’(2004년) ‘가재미’(2006년)에 이어 네번째 시집이다.

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는 시대에 ‘맨발’과 ‘가재미’는 평단이나 독자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두 시집은 각각 2만부가 넘게 팔렸다. 시인을 만나 인기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예의 눈을 껌벅거리며 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선 크게 어렵지 않은 시이고, 삶에 수시로 들이닥치는 이별에 대한 시들에 공감을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병상에 누운 한 여인에 관해 나지막이 읊조린 시들이 담긴 ‘가재미’에 이어 이번 시집에도 문병, 죽음, 무덤, 까마귀 등의 시어가 수월찮게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서정의 근원을 ‘무상(無常)’으로 설명했다.
“정 들었던 사람과의 죽음 혹은 이별의 문제들, 또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생로병사로 인한) 삶이 계속 흘러가고 변하기 때문에 느끼는 본질적인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세상의 사물은 변화하면서 자리를 옮겨갑니다. 시간도 나라는 것도 고정돼 있지 않지요.”

그의 시가 자연에 관한 서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번 시집은 특히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흘러가는 서정” “움직이는 서정”에 바탕한 시들이다.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며 마른 풀 위로 새로운 풀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의 느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나라는 깨달음에서 착상한 ‘화분’이 대표적이다.

“…/ 어디로부터 왔느냐/ 묻지는 않았으니/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묻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앞서고 앞서서 가거나/ 늦추고 늦추어서 갈 뿐//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서로에게 구름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애인/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화분’)

시인은 “흘러가는 것은 것은 또한 ‘이 세계를 감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시집 1부 초반부에 실린 ‘한 송이 꽃 곁에 온’이나 ‘귀 1· 2’와 같은 시들이 바로 이 같은 감각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눈이 멀어 사방이 멀어지면/ 귀가 대신 가/ 세상의 물건을 받아 오리/ …/ 한 송이 꽃을 귀로 보네/ ….’(‘한 송이 꽃 곁에 온’ 중)
이처럼 감각에 관한 시들이 실은 연로해진 아버지로 인해 촉발된 것들이라고 시인은 고백했다. 그러고 보니 감각에 관한 시들뿐 아니라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아버지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손수레를 밀며 포도밭을 가꾸던 아버지의 모습은 ‘손수레인 나를’과 ‘나와 아버지의 폐원(廢園)’ 등에 녹아있고, 표제작 ‘그늘의 발달’은 아버지가 감나무를 베는 모습에서 착상했다.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그늘의 발달 /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눈물은 웃음을 젖게 하고/ 그늘은 또 펼쳐 보이고/ 나는 엎드린 그늘이 되어/ 밤을 다 감고/ 나의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그늘의 발달’)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 서정적 감수성에 기초한 시들을 읽으며 무엇보다 시인이 방송국 라디오 프로듀서라는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공간을 이동해서 사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서정적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죠. 주로 새벽에 시를 쓰고 동네 뒷산을 1시간 가까이 산책하곤 합니다. 요즘은 빛이 막 들어오는 시간, 세상이 일어나는 시간을 지켜보는 게 좋더라고요.”

아이들 손을 잡고 가끔 산책을 한다는 그는 “시 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절대 동심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동심은 시 쓰는 이들에겐 큰 미덕”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선명한 감각, 선(禪)적 직관·사유가 드러나는 시들에 관한 실험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는 그는 기회가 되면 좋은 동시집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슬쩍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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