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관객 눈치보는 연극 벗어나야죠”[원전유서’로 신고식 치른 신예 극작가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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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7.28 09: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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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짐승처럼 대학로에 나타났다. 평단은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광대무변한 사유와 끊임없는 요설과 장광설, 천연덕스럽게 유보되는 사건들과 난데없이 튀어나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 마치 박상륭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품은 쓰레기 매립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 때때로 신화적인 상상력이 터무니없이 개입하고 들어오는 기묘한 형식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4시간30분짜리 연극 ‘원전유서(原典遺書)’의 막이 내렸을 때 객석에서는 긴 박수가 터져나왔다. 족히 책 한권 분량의 희곡에 숨을 불어넣느라 기진맥진했을 배우들과 노련한 연출가, 새 작가 탄생에 대한 축하의 박수였다. ‘원전유서’로 한국 연극계에 신고식을 치른 작가는 이윤택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2년차 배우 김지훈(29)이다. 울산공고 재학 당시 문예반 활동을 했고 또래들이 잡지를 탐독할 때 니체의 책들을 즐겨봤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수줍은 얼굴이었지만 망망대해로 첫 출항하는 뱃사람의 그것처럼 형형한 눈을 부라렸다.

“작정하고 쓴 작품입니다. 우린 이제 연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관객 눈치보는 연극이 아니라 ‘지금껏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극장 문을 나서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써야겠단 생각이었죠.”

그는 ‘원전유서’의 초고(A4 용지 200장)와 비슷한 9~10시간 분량의 희곡 몇 작품을 이미 써두었고 3박4일 동안 공연하는 연극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를 써온 그가 희곡을 쓰기 시작한 데는 일종의 분노가 촉발제 역할을 했다. 군대에 다녀온 후 그는 고교 당시 어느 문학상 수상 덕분으로 고려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는 학과 수업 중 연극 소감을 내라는 숙제를 받았다. 과제를 위해 본 연극들은 그야말로 “쓰레기 같았다.”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자만심도 생겼고, 써야겠다는 절심함도 생겼다. 그렇게 작정하고 쓴 희곡 ‘양날의 검’이 덜컥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때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이윤택이었다.

“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좋은 희곡을 쓰려면 먼저 배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고 하셨어요. 아예 휴학을 하고 지난해 3월부터 밀양연극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단원 50여명과 스태프 20여명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밀양에선 배우도 하고 조명, 음향, 영상, 짐나르기 등 다합니다. 경계가 따로 없어요.”

‘원전유서’는 오후 10시쯤 모든 일과가 끝나고 난 후 오전 3~5시까지 씨름하며 탈고했다. 두달 만에 묵직한 원고 뭉치를 말없이 이윤택의 책상 머리에 올려놨다. 이윤택은 “이걸 지금 정신없이 바쁜 내가 읽어보라고 놓아 둔거니”하고 되물었고 그는 어쩔줄 몰라 했다. 스승은 작품을 세상 속에 던져보라고 말했고, 세상 사람들이 네 글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연출을 해주마 약속했다. 마침 문화예술위원회가 공모하는 ‘창작희곡활성화 지원사업’에 당선되면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원전유서’는 아이가 죽어서 나무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는 죽기 전 자신의 편지를 남긴다. ‘유서’는 인간의 일생이 담긴 가장 아름다운 ‘원전’. 약육강식의 동물이 아닌 한없이 착한 존재로 상징되는 나무(식물)가 된다는 것은, 곧 삶의 방식을 생각케 하는 하나의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시를 써온 게 가장 소중한 소양인 것 같다”는 그는 “시는 왼손, 희곡은 오른손처럼 서로를 돕는다”고 말했다. 재치있고 상상력 넘치는 연극으로 삶의 근원을 묻는 담론을 쏟아내고 싶다고도 했다.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22년 만에 옥동자를 낳았다”며 요즘 즐거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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