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인생의 짐도 배낭 하나면 되지 않을까요”[‘세계 도보여행 6년’ 책 5권에 담아낸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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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7.16 1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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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간에 유행했던 단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김남희씨(38)는 한국 사회와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예전이라면 보지 않았을 장르의 영화도 일부러 찾아봤다. 머지않아 터 잡고 살아야 할 땅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이다.
그가 ‘도보여행가’라는 이름으로 ‘외국물’을 마신 것이 올해로 6년째다. 전세계를 두 발로 꼭꼭 다져가며 적어내려간 여행과 성찰의 기록은 모두 5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시리즈 4권은 한 대형 서점의 추천도서 목록에 오른 지 오래고, 지난 6월엔 경향신문 연재 글을 묶은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 출간됐다.
이만큼 돌아다녔으면 배짱이 누구 못지않게 두둑해졌을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줏대있게 살려면 스스로를 더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오는 9월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한국에 돌아온 지 100일이 됐는데, 오랜만에 오면 서울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까.
“서울은 정 붙이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원래 도시를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밖에서 제멋대로 혼자 살다 들어오니까 속도도 너무 빠르고 다들 어쩌면 그렇게 곱고 예쁘고 화려하신지. 적응이 안 돼요.”

-그래도 요즘의 서울은 사건이 많아서 지루하지는 않을 텐데.
“저 촛불집회 진짜 열심히 나갔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집회와 시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사람들이 기발하고 발랄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던데요. 거기에 대고 배후니 괴담이니 하는 게 참…. 그게 정부 여당뿐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모습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렇게 빨라지고 진보하고 열려가는데 우리 (기성세대)는 닫힌 세계 속에서 닫힌 언어, 닫힌 사고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촛불문화제는 굉장한 배움이자 즐거움의 장이었어요.”

-바깥 세상을 그렇게 많이 돌아보시고도 배울 것이 남아있으신가요.
“다 못 배워서 계속 돌아다니는 거지요. 현명한 사람은 밖에 안 나가고도 방 안에서 세상을 다 본다는데.”

-모두 5권의 여행기를 냈습니다. 주머니 사정은 처음보다 나아졌겠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때 방 빼고 적금 깨서 여행장비를 샀어요. 다행히 방 뺐던 돈은 안 건드렸는데 그건 뭐 얼마 되지도 않는 거였고. 제가 여행한 지 올해로 6년째이고 책 쓰기 시작한 지는 4년이 됐는데 저축은 하나도 못했어요. 책으로 돈 별로 못 벌었거든요. 제 책은 여행책이라서 그런지 다들 빌려서 보세요. 이번에 서울에 들어온 것도, 아프리카 여행을 한 달 하고 나니까 돈이 떨어지더라고요. ‘가서 돈 벌어와야겠다’ 싶어서 온 거예요.”

-2006년 출간한 책을 통해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스페인의 성지 순례길)를 널리 알린 주인공인데. 이렇게까지 히트칠 줄 알았습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저한테 정말 좋았던 경험이니까. 책을 쓰면서도 행복했어요. 이 얘기를 빨리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 정도로 열풍이 될 줄은 몰랐고 이렇게 책이 많이 나오리라고도 생각지 못 했어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은 오히려 알리지 않고 아껴두는 여행가들도 있던데.
“여기에서도 걱정스러운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의 기부를 받아서 운영해요. 그런데 산티아고에 갔다온 분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여긴 공짜, 여기도 공짜’ 이런 식으로 글을 남기시더라고요. 그건 공짜가 아닌데. 우리가 돈을 안 내기 시작하면 알베르게들도 결국 요금을 책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가난한 여행자들은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를 해주셨으면 하고. 또 하나는 이라체 수도원이라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해 길가에 수도꼭지를 만들어놓은 곳이 있어요. 오른쪽에선 물이 나오고, 왼쪽을 틀면 포도주가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페트병에 포도주를 담아간다는 거예요. 국제적인 상식을 잘 지켜서 뒤에 오는 사람들이 편견 없이, 불이익 없이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밖에 나가면 원하지 않아도 한국 대표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하는 거지요.”

-여행지를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까.
“제 관심사는 주로 저개발국이에요. 자연만 빼어난 곳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아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거기 깃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소박하면 그게 가장 행복한 여행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슬람 국가를 좋아하고 중동 주변 나라들이나 탄자니아, 인도, 네팔도 좋아해요. 사람살이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다음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오늘부터 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9월 말에 일본 오키나와를 한 달 정도 걸어서 여행할 생각입니다.”

-오키나와는 왜 가십니까.
“제가 일본을 좋아해요.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이 뒤범벅된 꼬인 사고들이 있더라고요. 일본에 깊이 들어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 사람을 많이 만나고 친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일본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오키나와라는 겁니다. 주일미군 기지 문제로 불거진 시민의식이라든가, 외부인들에게 열려있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특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 섬에서 도보여행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당초 남미를 마지막 여행지로 계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미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 가요. 장기적으로 여행하는 세계 일주의 대단원은 중남미로 막을 내릴 것 같아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게 하나 생겼어요. 혜초 스님이 갔던 길을 따라서 실크로드를 걸어서 종주하는 겁니다. 북한 지역을 통과해서 걸어가는 거지요.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이 여행을 함께 할 파트너가 생기면 그때 해보고 싶어요.”

-여행을 마흔까지만 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굳이 선을 정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건강하게 80년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전반전은 유목하고 그 다음부터는 정착해야하지 않을까 해서요. 정착해도 여행을 안 한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8~9개월 여행하고 3~4개월 서울에 머무는 생활을 거꾸로 하는 게 되겠지요. 사실 체력이 점점 떨어져서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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