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김형경 “슬픔, 충분히 겪고나면 강해지죠”[장편소설 ‘꽃피는 고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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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경향신문[http://www.khan.co.kr]
  • 08.06.23 09: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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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혀서 몸에 생채기가 나면 곧 딱지가 생긴다. 하나 새 살이 돋아나고 딱지가 스스로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참지 못하고 손을 대면 상처가 덧난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열일곱살 여고생, 니은에게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이 생채기 같았다. 서로를 ‘처용’과 ‘황옥’이라 농담처럼 불러대던 부부는 니은만 세상에 남겨둔 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홀로 남겨진 니은은 부모의 상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좌충우돌한다. 니은은 스스로에게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끊임없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소설가 김형경씨가 새로 펴낸 장편 ‘꽃피는 고래’(창비) 이야기다. ‘세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등 전작을 통해 여성주의 시각에서 20·30대 여성의 이야기를 펼쳐내던 그가 이번에는 애도(哀悼)와 어른되기에 대해 말한다. “그간 여성들, 동년배들의 심리적 문제에 천착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그건 다르게 보면 문학적으로는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자평한 작가는, 이제 심리적 관점을 떠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주제는 상실의 치유이다. 부모를 잃고 “고아보다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 니은은 무기력과 외로움, 타인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심리학에서 애도는 충분히 슬퍼하고 잃어버린 것, 박탈당한 것과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말해요. 한데 우리에게는 애도의 문화가 없어요. 분노를 다룰 줄도 잘 몰라요. 일제 식민지 시절이나 6·25 전쟁 등 그 시절이 얼마나 슬펐던가를 내면에서 충분히 경험해야 극복을 할 수 있거든요. 비극을 충분히 슬퍼하면 맑아진 마음과 힘을 얻어요. 분노와 슬픔을 충분히 경험하고 표현하고 나면 강해지지요. 그게 바로 성장하는 것이고요.”

그러므로 니은은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정신은 늘 결핍을 느끼는 이 시대 성인 일반을 표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니은은 아빠의 고향, 처용포에서 자신보다 생을 먼저 살아간 강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를 만나며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아간다. 언젠가 고래잡이 금지령이 풀릴 것이라 믿으며 사철나무 숲을 가꾸는 틈틈이 자신의 포경선을 닦고 조이며 관리해온 강 포수와 일흔이 넘는 나이에 한글을 배워 자신의 인생을 글로 써가며 니은에게 어렴풋한 깨달음을 주는 할머니.
사실 이들은 작가의 외조부모를 모델로 한 인물들. 인물의 정형성을 깨고 싶어, 작가는 고래잡이 포수에서 연상되는 거친 이미지 대신 말수 적고 관조적인 인물로 할아버지를, 고령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을 간직한 인물로 할머니를 표현했다.

쓰는 내내 10대의 화자에게 어울리는 단어와 말투를 구사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작가는 “내가 주민등록증을 처음 받았을 때, 불투명하고 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 느낌을 잊지 않으며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자칫 소설이 성장소설로 읽히지 않을까 염려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10대부터 80대까지 전 연령대의 인물들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들과 도와가며 사는가를 통찰력있게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한편 환상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고래로 상징되는 신화적 원형성에 관한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니은은 수없이 자신의 몸속에서 물고기떼가 노니는 환상을 보고 한때 고래잡이로 융성했던 처용포에서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고 위안을 얻는다. 또 멘토가 되어준 강 포수와 할머니는 고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도 했고, 또 10여년 전에 포경이 금지되고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황폐화되어 가는 항구를 보며 우리 현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 같아서 환경의 관점에서 구상했어요.”

그간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소설과 산문집 등을 발표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을 바탕으로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며 다음 소설에 대한 구상을 짧게 내비쳤다. “전문가의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총체성을 잃어가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역학과 풍수, 한의학 등에 흥미를 느껴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데 꽤 재밌어요. 우주와 인간을 하나로 이해하는 조선시대의 선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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