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재혼의 조건[위풍당당해진 재혼시장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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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6.17 08:51:23
  • 조회: 1427
토요일 이른 아침, 한 미용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여성 다섯명이 미소를 지으며 함께 들어섰다. “신부님은 화장부터 받으시죠”라고 안내하는 미용실 원장의 손을 잡고 메이크업실로 따라가는 주인공은 48세의 김모씨. 재혼식을 치르는 그를 위해 전 남편의 딸들과 새 남편의 딸들이 들러리를 서기로 했다. 10년 전 이혼한 어머니에게 상처한 친구 아버지를 소개, 중매쟁이 역할을 한 큰딸은 “외롭게 고생하며 우리를 키우신 부모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내길 바랐다”면서 “엄마·아빠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두 가족이 M&A(합병)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며 재혼은 결혼-이혼 다음의 자연스러운 코스로 받아들여진다. 통계청의 ‘2007년 혼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남자 재혼은 5만7300건, 여자 재혼은 6만2000건. 2000년 이후 해마다 12만여명이 재혼하며 전체 결혼하는 4쌍 중 1쌍이 재혼커플이다. 1970년대에 비하면 10배나 급증한 숫자다. 또 평균 재혼연령도 남자는 44.4세, 여자는 39.7세로 10년 전에 비해 4년가량 높아지는 등 고령 재혼이 늘고 있는 추세다. 재혼커플이 늘어나면서 재혼 중매시장, 재혼 혼수품 등 재혼시장도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 결혼시장 규모가 약 30조원임을 감안하면 재혼시장도 8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결혼정보업체는 물론 가전제품회사들, 특급호텔들까지 재혼커플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해도 은밀히 진행되던 재혼이 이젠 위풍당당하게, 때론 초혼보다 더욱 화려하게 치러진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이 ‘팔자를 고치는’ 요즘, 재혼시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최근 강남의 요식업계에선 한 커플의 재혼이 화제다. 식당체인을 운영하는 수백억원대의 재력가인 50대 이혼남이 40대 지적인 여성과 재혼,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 후 딸을 키우며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그 여성은 재혼 후 초호화빌라에 살며 2대의 외제승용차를 타는 등 그야말로 ‘아줌마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특급호텔에서 열린 그들의 재혼식장에서 중년의 신부는 드레스를 3벌이나 바꿔 입어가며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새신랑은 “함께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즐거운 노후를 보낼 지혜로운 아내를 원했다”고 중년여성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신부의 친구는 “재수해서 명문대학에 가는 것처럼 재혼해서 저렇게 잘 살 수 있다면 억지로 참고 사느니 이혼하고 싶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또 주위에선 그들이 만났다는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투어 등록해 대학원 진학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커플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사랑밖에 난 몰라’ ‘장래성이 있으니까’ 등 순정과 환상을 갖는 초혼보다 재혼자의 조건이 더 까다롭다. 한국여성개발원이 남녀 재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재혼동기로 남성은 ‘외로움 극복’ ‘상대를 사랑해서’ ‘성생활 욕구 때문’ 등의 순이었고, 여성은 ‘상대를 사랑해서’ ‘경제적 필요 때문’ 등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선우-듀오 등의 결혼정보업체 재혼담당자들에 따르면 30대 남성들이 꼽는 재혼조건 1순위는 ‘외모’다. 커플매니저들의 표현에 따르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남자들’이 무조건 예쁜 여자만 찾는단다. 의사·약사 등 전문직에 아이가 없는 여성이어도 재혼시장에서는 못생겼거나 키가 155㎝ 이하면 가입조차 어렵다. 뚱뚱한 여성도 마찬가지. 선우의 자료에 따르면 초혼 여성과 재혼 여성의 경우 나이 차이는 10년 이상인데 몸무게는 비슷했다. 즉 처녀 시절과 비슷한 날씬한 몸매를 가져야 재혼시장에서도 인기라는 것. 가장 인기있는 여성은 ‘내숭스럽다’ ‘여우 같다’는 평을 듣는 애교많은 여성. ‘성격좋다’ ‘털털하다’란 평을 듣는 여성은 친구면 몰라도 재혼시장에서조차 아내감으로는 낙제감이다.
반면 30대 여성이 꼽는 제1조건은 남자들의 경제력이다. 이혼-사별 등으로 혼자 된 30대 여성은 대부분 직장도 그만둔 데다 앞으로도 재취업하거나 돈벌 기회가 없어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능력있는 남성을 찾는다. 재혼을 결정할 때 연봉, 학력, 직업 등의 순서로 “앞으로도 얼마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30대 이혼남들은 이혼하면서 위자료나 양육비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뚝 떼어주기 때문에 별다른 재산이 없다. 30대 여성들은 초혼보다 나이 차이가 많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년남성과 재혼하거나 이와 대조적으로 연하의 총각과 결혼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다. 남자들 역시 외모가 중요하다. 다만 장동건, 정우성처럼 너무 잘생긴 사람보다는 탤런트 노주현, 개그맨 김용만처럼 푸근한 인상이 인기다.

결혼정보업체 선우가 지난 7년 사이에 재혼했거나 재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커플 1014쌍에 대한 정보를 충남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유성렬 교수팀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출산경험이 있으나 아이를 본인이 키우지 않는 여성의 재혼·교제 중인 상대 남성의 평균연봉은 7063만원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1명 있는 경우 5600만원으로 줄었다. 딸 1명인 경우는 6269만원.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희길 소장은 “남성들이 훗날 핏줄이 다른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어 아들 딸린 여성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연소득 2000만원 이하의 여성들이 만나는 남성의 평균연봉은 5593만원, 재산은 4억1000만원인데 비해 연봉 2000만~3000만원을 버는 여성들이 만나는 남성의 평균연봉은 5380만원, 재산은 2억4000만원으로 적었다. 여성들이 능력이 있을수록 상대 남성의 연봉은 줄었지만 여성들의 몸무게가 5㎏ 낮을수록 남성들의 연봉은 5000만원 이상 높았다. 커플매니저 장수임씨는 “초혼의 이혼사유를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재혼에서도 미모와 돈만 따지는 세태가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재혼시장에서도 국제화 바람이 뜨겁다. 최근에는 재혼상대로 여성, 특히 영어 사용국의 재혼여성을 찾는 남성들이 늘어나 농촌 노총각보다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혼 후 자녀를 혼자 기르는 남성 가운데 이왕이면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고 순진한 동남아 여성을 새엄마로 구해주려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등 영어 사용국의 고학력 여성이 인기. 또 이혼으로 재산을 나눠 경제력이 없어진 50대 이상의 남성들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늙고 무능하다고 자신을 무시하는 한국여성들보다 “고분고분하고 젊은 외국여성들과 재혼해 왕처럼 대접받으며 노후를 보내겠다”며 직접 베트남, 우크라이나 등으로 맞선을 보러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아직 이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재혼을 고려하며 미리 재혼정보업체를 찾아 배우자를 물색해보는 놀라운 준비성(?)을 보이는 부지런한 이들로 재혼시장은 성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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