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과거엔 가슴 아리는 글 썼지만, 이젠 행복 주는 글 쓰고싶다”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6.16 09:19:51
  • 조회: 348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소설가이면서 한글을 파괴한다고 비난받는 인터넷 용어를 자주 쓰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언어가 갖춰야 할 기본을 갖춘 신선한 인터넷 표현에는 감동합니다. 자연계도 항상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낡은 것이 멸종하듯 언어도 기존의 것이 위협받기도 하고 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화롭게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으로 쓴 감탄사 ‘하악하악’ 등의 표현은 즐기지만 자음만 나열하는 것이나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것, 품격 없는 말들은 쓰지 않습니다. 줄임말도 안 쓰는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더군요. 우리 젊은이들은 놀랄 만큼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우리 교육제도가 그걸 못살려줍니다. 인생에선 창의력이 가장 중요해요. 찍어낸듯한 인생, 남의 것을 흉내낸 인생으로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자기 인생을 창조하려면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능력을 키우는데 관심과 투자가 선행되어야하는데 그게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어 답답하죠. 인터넷용어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말이 많아 긍정적 효과가 큽니다.”

- 책의 독자들도 홈페이지 회원들도 대부분 젊은층인데 62세의 어르신이 그들과 소통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수시로 채팅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요즘 젊은이들은 무엇에 관심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언어를 쓰는지 공부합니다. 요즘은 초딩(초등학생)과도 대화가 통해요. 초딩은 정말 판독하기 상당히 어려운 세대예요. 똑똑한 애들은 대학생보다 더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표현합니다. 물론 막 나갈 때는 저항할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대략난감!(하하)”

- 인터넷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 뭡니까.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거죠. 나한테 안티가 있다는 것도 인터넷 악플을 통해 알았어요. 그건 내가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의외로 골수독자도 많더군요. 운동선수들이 계속 끝없이 연습을 하고 피아니스트도 매일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듯 작가도 매일 석줄이라도 써야 언어감각이 녹슬지 않습니다. 젊은이들과 계속 접하고 놀아야 그들이 읽을 글을 쓸 수 있어요. 처음엔 젊은층과 대화하는 것이 쑥스럽고 화도 나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합니다. 첫째며느리도 인터넷에서 발굴(?)했습니다. 나의 골수독자로 내 홈페이지를 24시간 지키는데 자기가 바쁘면 친구라도 대신 자리를 지키게 만들 만큼 열성이더군요. 방송작가 출신인데 글솜씨가 탄력있어요. 큰아들이 보고 호감을 느껴 만나더니 결혼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집사람과 죽이 잘 맞아 떨어져선 죽고 못살아요. 모르는 음식도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하고, 아들이 영화감독 수업 중인데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신경 안 쓰고 명랑합니다.”

- 인터넷에서도 어른 역할을 하나요.
“악의적 악플이나 치졸한 댓글에는 야단을 칩니다. 반항하는 쪽도 있고 반성하는 쪽도 있죠. 반항하는 애들은 반성할 때까지 글로 팹니다. 감정을 갖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충고, 질타를 하면 대개는 알아들어요. 제대로, 바르게 꾸짖으면 변화를 일으키죠. 그래도 반항하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나서서 나무라며 자정 역할을 해요. 젊은층은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 미래도 희망적으로 봅니다.”

- ‘감성마을 촌장’을 자임한다는데 이곳엔 언제 왔습니까.
“춘천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집 주변에 공사가 많아지면서 천식이 심해졌어요. 매일 기침을 하고 숨쉬기도 어려우니 글이 안 써지더군요. 그런데 화천군수가 무조건 그냥 와서 작품생활에만 전념하라며 계획서를 갖고 왔어요. 국내 생존작가 최초로 화천군에서 작가를 위한 마을단지를 조성해 준거죠. 화천군이 군부대밖에 없어 열악한 환경이니 강원도에서 오랜 산 나를 초대해 문화단지로 살려보라는 겁니다.”

- 2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걸로 아는데 화천군에는 어떤 도움을 드립니까.
“자칭 감성마을 촌장으로 ‘화천지역 법질서 확립과 경제살리기 홍보대사’를 맡아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을 느낍니다. 지역문제를 다루는 군민 공청회에도 참가하고, 부대 내 관심 사병을 찾아가 감성교육도 합니다. 어린 사병들에게 군대가 너희를 보석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군생활을 가치 있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워낙 힘겹게 군대생활을 해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또 각 단체나 기업체에서 강의 요청을 받아도 난 갈 수 없으니 이곳에 와서 받으라고 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모월당’에서 문학연수를 하는데 한달간 머물며 창작수업을 합니다. 난 무료로 지도하지만 숙식은 화천군 다목리에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강의를 듣건, 방문을 하건 날 찾아오는 이들이 이 동네 가게에서 음료수 한 병씩 사지 않겠습니까. 1년에 4000여명이 나를 보러 온 덕분에 신문에 감성마을의 경제효과란 기사도 났더군요. 다행히 성공사례로 평가되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겠다며 자문을 하러 옵니다. 황석영, 임동창씨 등을 모셔갈 계획이라던가요.”

- 직접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지런히, 성실하게 사시네요.
“내가 참 오해를 많이 받아요. 머리랑 수염 기르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생김새만으로 보편적 모범에선 벗어날 것이란 편견을 갖는 이들이 많죠. 가정을 안 돌볼거다, 세상을 무질서하게 살 거다, 내멋대로 사람을 함부로 대할 것으로 여겨지나봐요. 하지만 난 기본을 매우 중시하며 질서를 지나치게 신경써서 지킵니다. 과거 술많이 먹었을 때는 술김에 인사불성이 되어 약간의 경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늘 규범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물론 가난했을 때는 목욕탕에 갈 돈도 없어 잘 씻지 않았어요. 내 발뒤꿈치가 너무 새카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어 맨발인데도 김성동씨가 그게 구두굽인 줄 알고 자꾸 구두벗으라고 했던 일화가 아직까지 전해질 정도죠. 요즘은 자주 씻습니다. 가족관계도 매우 화목한 편입니다. 내가 무명 시절, 춥고 배고플 때 가족들을 너무 고생시켜 이제는 가족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려 합니다. 문학사에 남는 작가들을 보면 자식들이 아버지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죠. 예술한다며 가정을 내팽개쳤다고 원망합니다. 보통사람이건 예술가건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입니다. 가정 및 사회생활의 기본을 지키고 예술의 업적을 찾아야 그게 훌륭한 겁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