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거트루드’로 연출 데뷔한 극작가 배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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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6.05 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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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기로 한 날 비가 내렸다. 서울 삼청동의 진선북카페에서 보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이 이른 탓에 카페는 “손님 맞을 준비가 안됐다”며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 만한 찻집을 찾아 삼청동을 거닐었다. 그는 연극 ‘거트루드’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하는 배삼식 극작가(38·사진)였다.
“3년 전 삼청동으로 이사와 전세로 살고 있는데 벌써 2000만원이나 올라 큰 일이다”(그) “전세가 아니라 사두지 그랬냐”(기자) “그럴 만한 돈도 없고 우리가 한 템포 느린 사람 아니냐”(그) “저도 마찬가지다. 삼청동 많이 바뀌었다”(기자) “구멍가게 있던 예전 같지 않다”(그) “던킨도너츠도 풍경과 안 어울리는 것 같다”(기자) 등등. 그 사이 네 군데 카페에서 퇴짜를 맞았다. 결국 아침 8시부터 문을 열고 있던 그 도너츠 가게에 들어서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달 5일로 다가온 ‘거트루드’ 공연을 앞두고 마음이 바쁠 만도 한데 그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지난해 김동현 연출을 비롯해 몇몇 배우들과 함께 창단한 극단 ‘코끼리만보’의 두 번째 작이다. ‘코끼리처럼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뜻이란다. 코끼리만보는 단원들이 토론하며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다. 과정이 느릴 수밖에 없다. “다들 숫기가 없어서 조용조용하고 격론을 벌일 때도 큰 소리나지 않는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거트루드는 햄릿의 어머니로 원작에서는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배삼식이 새로 쓴 ‘거트루드’에서 그녀는 독배를 거부한다.

햄릿을 비롯한 사람들은 복수의 완결을 위해 독배 마시기를 재촉하지만 거트루드는 이를 뿌리친다. 연극은 이들 사이 벌어지는 논쟁을 재미있게 옮기고 있다. 배경을 극장식 주점으로 삼은 것도 흥미롭다.
“전부터 이성(理性)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유·정의·신앙·가족, 요즘에는 실용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이름 아래 정당화하고 어느새 학습화된 폭력들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런 과정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죠. 거트루드도 그런 경우 아닐까요.”
작품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듣다가 이야기는 광우병으로 이어졌다. 광우병 역시 좀더 빨리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인간이 행한 ‘폭력’의 결과물 아닌가. 인간인 이상 어떤 형태로든 ‘폭력의 늪’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에 대한 고민까지 멈춰서는 안 되는 게 그의 생각이다.

뒤늦게 연출 데뷔 소감을 물었다. 원래는 작품만 쓰기로 했는데 갑자기 김동현 연출이 개인사정이 생겨 대신 연출을 맡게 됐다고 한다. 대답이 싱겁다.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비슷하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후였다. 후배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입학을 위한 공부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옆에서 공부하다 덩달아 극작가 전문사과정까지 밟게 됐다.
군대는 아무래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과 같은 나이인 25세에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부근에서 군생활을 했다. 작전병인 덕분에 신문을 받으러 외출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태안읍내의 도서관에 들러 보들레르, 들뢰즈 등의 무수한 책들을 빌려봤다.
연극은 극단 미추에서 ‘허삼관매혈기’ ‘주공행장’ ‘열하일기만보’ 등의 작품으로 활동해왔다. 어르신 관객에게 사랑받는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도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이다. 그중 ‘벽 속의 요정’은 빼놓을 수 없다. 평생을 벽장 속에 숨어지낸 아버지에게 햇빛을 보여주려고 예쁜 꽃잎과 연둣빛 나뭇잎들을 따다주는 딸의 이야기는 공연 때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고등학교 때까지 전주시내 변두리인 평화동에서 살았어요. 산과 들에서 하루종일 형상이 뭉개져보일 때까지 하늘, 나무, 꽃들을 멍하니 바라보길 좋아했어요. 햇빛을 품고 사는 꽃과 나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거죠.”
그는 연말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작 ‘은세계’의 극작도 맡아 준비 중이다. 앞으로 극작이든 연출이든 ‘질문을 던지는 연극’ ‘위로하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연극을 진정으로 바라는 관객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다른 천만명의 관객과도 바꾸지 않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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