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크루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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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6.05 09:00:26
  • 조회: 10675
노르웨이에서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왜 노르웨이 사람들 중에는 겉멋을 부리는 사람이 없지? 명품 가방, 명품 옷 입은 사람을 못 만났다. 만원버스에서도 네댓 명은 루이뷔통을 들고 있는 한국과 달리 1주일 동안 노르웨이에서 만난 루이뷔통 가방을 든 사람은 딱 3명. 한국인 가이드 1명, 한국인 관광객 1명. 다른 1명은 유럽인인데 가방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서 첫 눈에도 ‘짝퉁’이었다. 노르웨이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국.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노르웨이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만8440달러(2006년말 기준)로 세계 2위. 요즘 원유가가 급등해 현지 가이드는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세계 1위일 것(8만달러 이상)이라고 했다. 한국은 51위인 1만7690달러다.

“겉차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요. 하지만 자연은 너무너무 사랑하거든요. 수돗물도, 부엌도 없는 산간 별장 히테가 아파트보다 더 비싼 곳도 많아요.”
가이드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피오르드 크루즈를 통해서다. 피오르드는 웅대하고 거칠다. 부드럽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때론 위압적이고 경이롭다. 이런 자연을 옆구리에 끼고 살게 되면 눈높이를 제 몸뚱어리보다는 검은 빛깔의 바다나 절벽에 맞출 수도 있겠다 싶다. 자연이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노르웨이의 4대 피오르드 중 이번엔 올레순에서 가까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다녀왔다.
크루즈는 처음엔 약간 심심했다. 대개 크루즈 유람선은 갑판에 수영장도 있게 마련이고, 떠들썩한 카지노도 있지만 기자가 탄 크루즈는 자그마한 바와 식당이 전부다. 함께 동행했던 가이드 헬렌은 “자연이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조용히 자연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노르웨이 스타일의 피오르드는 오락에 정신팔지 않고, 자연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바다도 산도 까맸다. 비구름 때문에 해안은 온통 잿빛이었다. 눈덮인 연봉만 멀리 보이는 뱃길은 장관이긴 했지만 가이드의 말처럼 ‘감동’ 수준은 아니었다. 출발 1시간 만에 “피오르드 별거 없다”고 생각하고 바에서 맥주만 홀짝거렸다.
생각이 바뀐 것은 출발 2시간이 지나서다. 안내방송에선 피오르드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거칠고 찬 바람들이 갑판에 몰아치는 뱃길 거대한 절벽들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멀리서 본 산줄기와 가까이서 본 산은 달랐다. 풀과 나무가 빼곡하게 자란 절벽 밑둥이는 푸릇푸릇 여름빛이 완연했고, 산봉우리는 한겨울처럼 눈이 덮였다. 눈이 녹아내린 실폭포가 벼랑을 타고 흘러내렸다. 폭포수를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가 나중엔 셈을 포기했다. 폭포가 열댓개가 넘었다. 산꼭대기에 내린 눈들이 녹아내리면서 골이 파인 틈새로 흘러내리니 여기저기가 폭포다.
벼랑이 한 발자국 물러선 구릉에는 초원이 펼쳐졌다. 언덕 위엔 자그마한 나무집 몇 채와 목장이 보였다. 들은 푸르고, 그 너머는 빙벽으로 하얗다. 영락없이 스위스의 그린델발트를 닮았다. 바다만 없었다면 스위스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해가 나오자 피오르드는 또다른 모습이다. 비가 올 때는 산들은 위압적이고 두려웠다.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위대하고 두려운 자연이다. 햇살이 비치자 산들이 밝아졌다. 이제야 산도 들도 따뜻해보인다. 물빛도 검은 빛에서 짙은 초록으로 변했다.
“빙하가 녹은 물은 다른 물과 결정체가 다르다고 해요. 그래서 물빛이 짙죠. 게다가 깊거든요.”
깊으면 50~100m 정도 될까? 그 정도가 아니다. 절벽과 산봉우리 높이만큼 바다 속도 깊다고 했다. 바다 속에 또다른 절벽사이로 물길이 나있는 셈이다. 수심이 600m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사실 피오르드는 빙하가 녹아 생겼다. 100만년 동안 눈과 얼음으로 뒤덮였던 빙하가 1만년전 녹았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3000m나 쌓인 얼음덩어리가 녹아 내리면서 산을 깎고, 흙을 쓸어내렸다. 빙하수로 차올라 바다 수위도 올라왔다.

피오르드는 젊다. 그래서 거친 모양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년. 피오르드는 1만년전만 해도 얼음 속이었으니 바람과 파도에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피오르드는 날씨에 따라 느낌이 변한다. 햇살이 부서지는 은빛 물길을 헤치는 유람선의 모습은 로맨틱하다가도 비구름이 끼면 폭풍전야처럼 조마조마하다. 그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졌다. 물길이 끝나는 곳엔 플뤼다렌이란 마을이 있다. 올레순에서 여기까지는 약 100㎞로 4시간30분 거리였다. 절벽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자궁처럼 아늑해보였다. 마을 주민은 234명. 학교도 있는데 6명의 교사와 34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수요일에는 의사가, 일요일에는 목사가 배를 타고 들어온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마을까지 외부 사람들이 들어온 것은 1869년. 기독교 선교사였다. 당시 인구도 지금과 비슷했다고 한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아름다움은 세상에 급속하게 알려지면서 1900년에는 약 100척의 범선이 이곳을 찾았다. 박물관에 있는 사진을 보면 포구에 빼곡하게 차들이 주차해 있을 정도로 북적거린다. 지난해에 이곳을 찾은 크루즈는 87척. 수천명을 실은 세계 최고의 크루즈 선들에 피오르드는 인기 코스 중 하나다.
알다시피 사진이나 포스터보다 실제 풍광이 나은 곳은 드물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는 반대다. 수백m 높이에 달하는 절벽 틈새로 난 물길을 짧게는 수십㎞, 길게는 100㎞가 넘게 이어진다. 하늘과 바다, 깎아지른 절벽, 눈쌓인 산봉우리, 실개울처럼 흐르는 폭포, 옹기종기 앉아있는 작은 포구를 사진이나 그림에 한 번에 담을 수 없다. 피오르드가 지금까지 찾고 싶은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이처럼 자연이 웅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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