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땅땅’거리는 불패 40년, 땅투기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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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6.03 08: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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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형성된다. 부동산 불패의 믿음은 어제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정책인 ‘부동산 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서울과 부산의 부동산 양도 때 무조건 차액의 50%를 부과) 이후 40년 동안 투기와의 전쟁이 계속됐지만 오히려 투기는 시장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투기없는 부동산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왜 그럴까.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주택과 부동산을 주로 이용하다 수출 호재 등으로 투기가 과열되면 비상대책을 들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물론 거래투명성까지 떨어졌고 그 결과 사회 고위층과 재벌이 독점했던 부동산 투기는 점점 중산층까지 확대돼 왔다. 이와 더불어 투기의 방법도 다양해졌다. 개발정보를 미리 빼내 땅을 사던 수법은 고전이 됐다. 투기꾼들은 각종 정부 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해가며 스스로 개발호재 지역을 만들기도 하고 알박기, 지분 쪼개기 등 제도적 허점을 비집고 다양한 투기수법을 생산해내고 있다.

투기의 시작, 복부인
현대적 의미의 국내 부동산 투기 역사는 산업화의 신호탄이기도 했던 경부고속도로 착공이 그 시발점이다. 현재까지 투기의 현장이 판교, 용인, 동탄 등 경부고속도로 라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경부고속도로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67년 11월 제3한강교(한남대교) 남단이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으로 결정된 후 현재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부근인 말죽거리에서 땅값 폭등은 시작됐다. 온통 논밭이던 말죽거리는 영동(영등포 동쪽이라 해서 생긴 지역명)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말죽거리에 땅을 사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강북의 돈 있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강북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말죽거리까지는 걸어가야 했던 시절이지만 말죽거리 복덕방에는 매일 수십명이 북적거렸다. 말죽거리에서 시작된 땅값 폭등은 강남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미등기 전매를 일삼는 투기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복부인의 활약은 70년대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이들은 70년대 중반 서울 용산구 이촌동, 강남 영동·잠실 등의 아파트와 땅 투기에 열을 올리며 투기세력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고 지금은 국어사전에까지 오른 일반명사가 됐다. 이들은 75년 영동·잠실 등에서 아파트가 대량으로 분양되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선착순 분양에다 1가구 1주택 등 청약 관련 제한이 없었다.

권력형 투기의 전성시대, 빨간 바지
80년대 정부는 아파트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투기를 부추겼다. 81년 정부는 해방 후 처음으로 서울의 녹지를 풀어 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벌였다. 강남구 개포동 일대.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사회가 뒤숭숭해지자 강남 개발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게다가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82년)과 금융실명제 추진 움직임이 부동산 시장을 달궜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제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시중자금이 넘쳐나던 80년대 말 복부인들이 다시 부동산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복부인을 상징하는 ‘빨간 바지’라는 말이 생겨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땅투기로 이름을 날렸던 고위층 부인들이 즐겨 입고 다니던 바지 색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처럼 전국의 택지 예정 및 도로 건설지를 대상으로 군장성 부인 등 투기세력들은 동·서·남해안 일대와 심지어 섬지역의 논·밭·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들인 뒤 단기간에 미등기 전매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93년 문민정부에서 시작된 공직자 재산공개 이후 많은 행정부·사법부의 장·차관급 인사들과 국회의원, 군 장성들이 투기성 불법·탈법 부동산 거래와 보유가 밝혀져 옷을 벗었다. 이후에도 2000년 제정된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총리 등 고위공직자들이 국회에서 청문회를 거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항목도 부동산 투기 관련 의혹이었다. 고위공직자 검증때 부동산 투기가 매번 메뉴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화·기업화한 투기, 기획부동산·떴다방
고위층에 머물던 부동산 투기는 90년대 들어서며 기업화·전문화됐다. 외환위기로 초토화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이 폐지된 98년 이후에는 분양권 전매와 청약통장 거래를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일명 ‘떴다방’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99년 초 3700여가구 분양에 8만명의 인파가 몰린 구리 토평지구의 한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파라솔에 ‘청약통장 상담환영’ 등의 플래카드를 내건 떴다방 수십개가 호객행위로 실랑이를 벌이는 등 극심한 과열양상을 보였다.
2002년 초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지어질 한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는 선착순 분양계약일을 1주일 앞두고 대형 떴다방 3개가 주변을 선점한 채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풀어 24시간 줄을 세웠다. 하루 뒤부터 떴다방이 자체 발행한 대기표가 장당 20만~30만원에 거래되기 시작하더니 1주일 뒤인 분양계약일에는 대기표 장당 가격이 최고 450만원까지 치솟는 기가 막히는 현상까지 생겼다.
대규모 택지개발이 잇따르자 최근 집지을 땅이 고갈되면서 ‘알박기’도 기승을 부렸다. 알박기란 주택업체가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매입하려는 땅 가운데 일부를 선점해 비싼 값을 받고 되파는 방식을 말한다. 사업 진행을 위해 땅을 매입해야 하는 약점을 이용, 수십배의 매매차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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