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북한 의료지원 활동 펴는 재일동포[리미오·고강호 의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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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29 09: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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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버린다.’ 듣기는 그럴싸해도 실천하긴 어려운 말이다. 아무리 대의나 명분이 중요하다고 해도, 타자를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자기애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엔 더욱 그렇다. 재일동포 리미오(49)·고강호(51) 부부는 그런 면에서 특별하다. 호흡기 의사인 부인 리씨와 치과의사인 남편 고씨는 사재를 털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얻어가면서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펴고 있다. 2002년 6월부터 9차례에 걸쳐 북한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했고, 지금도 6개월마다 약품을 보낸다. 지금까지 보낸 결핵약만도 900명분이다.

부인 리씨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지역NGO 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텔레비전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픈 사람도 많겠다 싶어 남편과 함께 북한 의료활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49세까지 살면서 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북한에 약이 없어서 꽃도 피기 전에 죽는 젊은 환자가 있다면 도와주는 게 인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또박또박 그리고 진지하게 우리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부부는 후원회 없이 대북 의료지원을 하느라 3000만엔가량의 빚을 졌다고 한다. 지금 사는 집은 월세고, 집 한칸도 없다. 그는 “남편과 나도 가난하게 자랐고 동포들이 다 그랬다. 가난한 게 싫기는 하지만 먹을 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리씨는 ‘조선 국적’, 고씨는 ‘한국 국적’이다.

-한국은 몇번째 방문입니까.
“4번째입니다. 11년 전 8월에 광주를 방문했는데, 그때는 함께 유적지를 찾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보낼 의약품을 사기 위해 한국에 와서 1박만 하고 간 게 두차례 있습니다. 이번처럼 긴 일정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입니다.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한국 친구와 화엄사에서 하루 머물고, 지리산도 오를 생각입니다. 23~26일까지는 한·일관계에 대한 시민 세미나가 있는데, 거기에도 참석합니다. 내가 지난해 12월부터 일을 쉬고 있는데, 한국에 머물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해서도 천천히 생각할 계획입니다.”
-조선국적입니다. 조총련계입니까.
“그게 오해인데, 일본에서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면 다 조총련은 아닙니다.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 중에 조총련도 아니고, 민단도 아닌 사람이 많아요.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우리 모두 조선 국적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조국이 분단되면서 남조선도 북조선도 아니고 조선족이라는 것을 고집해서 조선 국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일본에 있습니다. 본래 하나의 나라인데 왜 두개로 갈라졌느냐는 거지요. 조총련이 학교를 많이 세워서 내가 조선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조총련을 지지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 방문이 힘들지 않습니까.) 수속이 복잡해요. 교토에 사는데, 방문 두달 전에 오사카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가서 방문 목적을 말하고 임시여권 발행을 요청해야 돼요.”

-대북 의료활동에 나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못 살아서 죽어가는 애들과 헐벗은 아이들의 모습,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한다면 아픈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텐데, 그런 것은 잘 보도되지 않았어요. 의사로서 병든 사람들이 잘 치료되는지가 궁금했어요. 특히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한다면 결핵 환자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핵이란 병이 영양이 부족하고 위생 수준이 낮을 때 전염되기 쉬우니까. 결핵은 옛날에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지금은 딱 6개월만 약을 먹으면 죽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약을 먹지 않으면 반드시 죽어요. 북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미국의 부시가 북한하고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언제라도 북한에 대한 공격을 하겠다고 했잖아요. 진짜 그 나라가 악의 축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북한에서 몇 차례나 의료활동을 했습니까…
“9번이오. 2002년 6월에 첫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일 월드컵이 열렸는데, 북한은 거기에 참가를 안하고 자기들이 아리랑공연을 했고 관광객을 많이 모집했어요. 평소 북한에는 보통 사람들이 못가는데, 그때는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갈 수 있도록 그물을 넓혀놨어요. 전부터 조총련에 방북신청을 했지만 안되던 터에, 아리랑 덕분에 가게 됐지요. 그리고 2000년9·11월, 2003년 1·3·6·9·12월, 2004년 3월에 갔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서 3박4일로 갈 때도 있었고, 연말·연초를 이용해서 5박6일 있을 때도 있었어요. (2002년 6월이 첫 방북입니까.) 대학 졸업한 1986년에 집단여행으로 갔어요. 그때는 학생 기분이니까 아무 생각 안했고.”

-아리랑 관광으로 갔는데, 어떻게 의료활동을 하게 됐습니까.
“처음엔 북한 당국하고 문제가 있었어요. 150㎏의 약품을 들고 갔는데, 약만 두고 아리랑 구경가라는 거예요. 우리는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쪽에선 바쁘니까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평양여관에 13일간 있었는데, 그 뒤에 대동강이 있었어요. 우리가 ‘이 나라에 환자가 없다면 약은 필요없으니, 대동강에 버리고 돌아가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나서 평양시내 제3예방원(결핵전문병원)에 갈 수 있었어요. 거기에 약과 장비를 주고 왔어요. (북한) 선생님들도 아주 기뻐했어요. 우리가 나쁜 일을 하러온 게 아니란 걸 알게 되고, 그 다음에 3개월마다 온다고 하니까 허락을 했어요. 처음엔 만경봉호를 타고 배로 갔지만, 두번째부터 9번째 방북까지는 중국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게 됐어요.”
-주로 어떤 장소를 방문했습니까.
“평양 안에는 약이 많다는 걸 알고, 평양 아닌 곳에 가고
싶고, 될 수 있으면 결핵관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희망을 했어요. 강원도 원산, 평양남도 사리원, 금천 종합진료소, 갈림길 진료소라는 곳도 갔어요. 강원도 육아원, 사리원 육아원도 방문했습니다. (어떤 약품을 가지고 갔나요.) 주로 결핵약하고 영양제, 그리고 주사기, 뢴트겐 필름과 의학책도 가져갔습니다. 치과 치료용으로 마취약과 지혈제를 가져갔고, 틀니 만드는 기구 같은 것도 가져갔어요.”

-북한 의료 현실은 어땠습니까.
“지방에는 전기도 없고, 의료품도 모자라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에서 본 결핵 환자들은 폐 한쪽에만 자그마한 증상이 있는데, 북한에서 본 환자들은 폐 양쪽에서 큰 결핵증상이 발견됐어요. 치과에도 가보니까 아무것(장비)도 없어요. 치료 수단이 없으니까, 40대에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느낀 것은 북한 의사들이 지식이 풍부하고. 없는 속에서 생각을 짜내면서 열심히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에 아주 머리가 숙여졌어요. 의사들의 수준은 높아요. 다 지식이 있고. 의학책들을 가져가면 열심히 읽으시고 일본어를 아시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고. 선생님들 하고 뢴트겐 필름도 같이 보면서 이야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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