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안철수 “유독 한국만 벤처기업 새 싹 없다, 5년뒤 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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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27 0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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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46)은 그 출발부터 ‘평범하다’는 수식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컴퓨터 보안회사를 차리기 위해 미래가 보장된 의사 자리를 박차고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중소벤처기업이 ‘대박’을 낼 가능성은 또 얼마나 희박한가. 하지만 그는 미련없이 떠났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1995년 설립된 연구소는 4년 만인 1999년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엔 500억원 고지를 넘었다. 그 자신은 기업 경영에서 공익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유독 강조해 ‘존경받는 기업인’ 명단에 예외없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의대 대학원생이던 88년 개발했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가 다음달 1일이면 탄생 20주년을 맞는다. 20년간 한우물을 파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기업인이라면 이제 등 따습고 배 부를 일만 남았다는 게 세간의 상식이다. 그런데 안 의장은 또 한번 ‘사서 고생하기’를 자처했다. 40대 초반의 나이로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훌쩍 유학을 떠나더니, 이달 초 MBA 학위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 1일엔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의학 박사와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공대 교수로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CEO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데, 어느날 새로운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안철수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신분은 ‘안 교수’로 달라졌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입바른 말을 잘하던 ‘바른생활 사나이’의 모습은 여전했다.

-회사를 경영하다 학생으로 돌아간 소감이 어땠습니까.
“지금까지 19년을 제외한 나머지 인생을 전부 학생으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의과대학 6년에 의대 석·박사 5년, 공학석사 2년, 이번에 경영학 석사 2년까지 합치니 27년입니다. 가장 긴 직업이었으니까 돌아갔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친숙하고 익숙했어요.”

-40대에 학위 과정을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사실 제 나이에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방문 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고. 그런데 편하게 하면 나중에 남는 게 없어요. 천재들은 고생 안 하고 많은 것을 얻을지 몰라도 저는 그렇지가 못해요. 시험 치르고 프로젝트하면서 고생해야 결국엔 그게 제 실력이 되더군요. 제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유가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력이 부족한 중소 벤처기업 경영자나 중간관리자들에게 좋은 조언자가 되기 위해서였거든요. 배워서 남 주기 위한 공부이다보니, 제 자신이 준비가 더 많이 되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다른 벤처기업에 조언자가 되신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2년간 학생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경험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자신만 봐도 그렇거든요. 경영을 오래 했는데도 안 채워지는 부분들. 그런 점들을 벤처기업에 가르쳐주는 겁니다. 대전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므로 대덕연구단지 쪽의 기업들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안연구소 이사회가 열릴 때 올라오면 서울 지역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여러 케이스들을 보고 저도 적응을 해야 할 겁니다. 미국으로 떠난 지 3년이 지났는데, 한국 사회도 많이 바뀌었을 거고 벤처 창업 환경도 많이 바뀌었을 거예요. 서울과 지방이 또 다를 테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파악을 해야 되겠죠.”

-안연구소에 최고학습책임자(CLO·Chief learning officer)로 남겠다고 밝히신 것과 같은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안연구소의 이사회 의장직도 유지하는데, 비상근인 거죠.”

-카이스트 강의가 9월에 시작됩니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건 크게 두 분야입니다. 하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입니다. 제가 이번 MBA 전공을 이것으로 했어요. 기업가 정신이 학문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전달가능한 지식이 아니라는 거죠. 타고 나는 겁니다. 그래서 교과서 위주가 아니라 창업자들의 자서전이나 인터뷰, 사례 연구를 읽게 하고, 생각을 서로 말하게 하면 거기서 많이 얻을 것 같더군요. 학생들 스스로 깨달아가는 거죠. 나머지는 제가 10년 전에 학위를 취득했던 기술경영학인데 이건 기술 혹은 경영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분야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대학원에 과정이 생기면 그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어떻게 새로운 일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추진력을 주는 힘은 세 가지입니다. 일단 일 자체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일이 재미있어야 하고, 세번째로는 그 일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요. 의사를 그만뒀을 때도 그 일이 싫었던 게 아니에요. 의사는 지금 봐도 참 좋은 직업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직접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학생 때 구로동에서 봉사 진료도 했고. 하지만 저한테는 컴퓨터 바이러스 쪽이 훨씬 의미가 있더라고요. 의사는 저 말고도 많은데 이 일은 저밖에는 할 사람이 없었어요. 재미도 더 있었고. CEO를 그만두고 대학 교수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제일 편한 선택은 안연구소 CEO를 하는 거죠. CEO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CEO 9년차 때부터 자꾸 의미가 더 큰 일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저를 성가시게 하는 겁니다. 물론 이 길이 경영보다 어려워요. 다른 사람을 도와서 성공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자신있다는 말은 못하겠는데, 잘할 가능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화제가 됐지만, 안 교수의 발언은 대부분 기사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당연히 부담스럽지요.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제가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 뒤로 한 사람 두 사람 구경하러 와요. 나중엔 공부를 하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뒤를 돌아봤더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기업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바른말을 잘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한국 사회는 너무 말이 많잖아요. 저도 말 보태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발언들로) 아주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발언할 때 절대로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합니다. 20년 이상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게, 사람은 죽어도 글은 남더라고요. 거창하게 말하면 글은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더군요. 순간을 모면하려고 이해타산이 섞인 글을 쓰면 죽고 나서 부끄러운 사람이 돼요. 아마 이런 진정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과도한 관심이나 과대평가일 수도 있지만요.”

-발언 탓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벤처버블이 정점이던 1999년 11월에 벤처 기업 95%가 망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벤처기업이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했는데 미국은 반대였던 거죠. 1%만 성공했어요. 그때 제 순진한 생각으로는, 제가 경고를 하면 사람들이 조심해서 투자를 하고 성공 확률이 높아질 거라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태어나서 그렇게 욕 많이 먹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뒤에서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화를 걸어서 ‘어제까지 투자하려고 했던 사람인데 인터뷰 보고 안 했다’고 물어내라고 하고…. 별 사람 다 있었어요. 그러다 2003년인가 참여정부에서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거기서 회의를 하는데, 말미에 부총리께서 벤처기업 95% 망하는 건 상식이 아니냐고 하시는 겁니다. 그 자리에 저를 욕했던 사람도 있었어요. 그 사람도 부총리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치더군요. 제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 혼자서 ‘의미가 있는 일이구나, 사람들 생각이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다시 용기를 얻고 그 다음부터 계속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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