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부모만 모르는 우리 아이 두 얼굴[‘겁없는 10대’ ‘용감한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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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27 09:35:07
  • 조회: 221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10대가 주목받고 있다. 20대는 보수적이고, 10대는 진보라는 얘기도 나온다. ‘386세대의 자녀들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등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쨌든 그들이 앞 세대와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유괴범죄 피해자, 음란사이트 운영자, 성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 사교육 열풍의 희생자, 촛불문화제 주동자,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제품의 결정권자, 불량식품과 불량문화와 안전사고의 희생자….
오늘날 우리 10대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동화책과 위인전을 읽으며 가슴엔 미래를 향한 꿈이 가득할 것 같지만 정작 10대들은 인터넷 성상담 게시판에 ‘여친과 섹스를 하고 싶은데 어쩌졈?’ 등의 질문을 하고 나라가 걱정된다며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시위가 아닌 문화제를 만든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초등학생의 30%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99%는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미니홈피 등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또래들과 소통한다. 동아시아에선 가장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지만 체력은 제일 약한 우리 10대. 마냥 천진난만하기를 기대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신인류’나 ‘괴물’로 비치는 10대들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뛰는 부모, 나는 10대들의 성의식
얼마 전 휴대폰을 분실해 잠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휴대폰을 빌려 쓰게 된 주부 김영미씨(39)는 그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 메시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늘 키스, 정말 멋졌어. 오늘 밤도 내꿈 꿔야 해. 사랑해’ ‘왜 나이든 여잘 만나. 헤어져’ 등 노골적인 사랑고백이나 삼각관계를 암시하는 문자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다그쳤더니 그제야 털어놓더군요. 여자친구들한테 온 거라고.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도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 6학년 여학생이 아들에게 사랑을 고백했는데 자기반 여자애가 질투한다나요.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다른 애들도 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해 더 충격을 받았죠. 얼마 전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떠올라 요즘 잠이 안와요.”
매스컴을 장식하는 10대들의 성의식에 비하면 김씨의 아들은 애교 수준이다. 성인들보다 더 잔혹한 폭력을 일삼거나, 음란물에 중독되었거나, 흡연까지 하는 것은 일부 ‘악동들의 못된 짓’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어리니까” “설마” 하며 이들을 무시하거나 덮어두려고만 해서 아이들을 ‘문제어른’으로 키운다.

4년 전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른들의 생각과 아이들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평소 음란사이트를 보아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6학년 여학생 ㅇ양이 남학생 6명과 함께 학교 교실에 설치된 컴퓨터로 음란 사이트를 보고는 게임으로 뽑힌 한 남학생과 교내 차고와 학교 앞 폐가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행위를 시도했다. ㅇ양이 1주일간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가족들에 의해 사건 전모가 밝혀졌다. ㅇ양은 할아버지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 가족들은 ㅇ양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공부를 하는 줄 알았단다. ㅇ양은 “음란 메일이 와서 접속한 후 매일 3시간씩 음란물을 접촉했고 계속 보니 한 번 해보고 싶어 그랬다”고 했다.

음란화상 채팅 등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이곳이 새로운 우범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가 전국 초등학교 5학년~고교 3학년 학생들과 재판이 계류중이거나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는 비행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화상채팅 경험자의 절반이 넘는 10대들이 성관계를 요구하는 제의를 하거나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씨는 “요즘 10대들은 정신적으로는 미숙하지만 성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조숙한 게 문제”라며 “평소 아이들의 행동을 잘 관찰해야 하고 아이들이 음란물을 보거나 성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과잉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숨기게 되므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선교사들은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가장 모르는 것 같다”며 답답해 한다. 대전 지역의 한 교사는 “아이가 말썽을 일으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착하고 순진한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다’고 펄펄 뛰며 오히려 화를 내는 어머니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요즘 애들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 학교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고, 4학년만 돼도 특목고 대비학원에 다니는 등 스트레스가 많은데도 어린이다운 놀이를 즐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란물을 본 학생을 나무라면 ‘우리 엄마는 너무 순진해 쇼크받으니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한다”고 전했다.

용감한 10대들, 비겁하고 비굴한 성인들을 나무라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건강과 안전입니다. 미국 국민들도 먹지 않는 위험한 쇠고기를 우리 국민에게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거짓말도,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군색한 변명도 더 이상 하지 마십시오. 국민의 건강과 주권을 포기하고 얻을 국익은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담보로 한 죽음의 도박, 이제 멈추십시오.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가 살아갈 이 사회가 교과서에 나오듯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나라의 정부가 국민을 속이면서 강대국에 굽실거리는 정부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지난 17일, 10대들은 서울 청계천에 모여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의 이름으로 이런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한 초등학생은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해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저는 초딩입니다. 곧 중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10년 후 제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저는 만화가가 되어 사람들의 꿈을 그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여기 와서 이러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청와대에서 떠들지 말고, 여기 내려와서 저희에게 당당히 말하세요. 이 모든 사람한테 무릎 꿇고 사죄하란 말입니다.”

그 자리의 어른들은 당돌하리만큼 조리있는 10대들의 주장에 야단을 칠 용기도 없었다. 이제 10대들은 정치인이나 기성 언론인들보다 더 강한 힘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오마이뉴스 등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10대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10대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검증을 ‘광장’으로 나와 하면 언론들이 그걸 기사화하는 것으로 뉴스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역의제 설정 또는 의제파급이라 명명하며 수용자들의 혁명이라고 분석한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느라 피곤에 찌든 아이에게 성적만 따지는 부모들,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켜기만 해도 쏟아지는 더럽고 추한 음란물들, 가정과 학교에서 행해지는 각종 폭력들, 그리고 코묻은 돈도 안 가리고 아이들을 소비자로 삼아 상품팔기에만 급급한 기업들, 영혼없는 정치인들이 떠드는 현실감각 없는 정책들…. 곳곳에서 퍼부어지는 이런 ‘자극의 융단0폭격’에 우리 10대들의 가슴이 멍들고 그 날개가 꺾일까 걱정된다. 아이의 표정과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성적만 강조하고, 무조건 어리다고 무시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그래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똑똑한 10대들이 많아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과거엔 부모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자세를 낮춰야 했다면 이젠 발돋움을 해야 아이들의 수준을 따라갈 만큼 아이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며 “‘어린 주제에’ ‘아이가 무슨…’ 등으로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고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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