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남한산성, 걷다가 숨어버리고 싶은 길[수도권 한나절 여행지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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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22 08:57:17
  • 조회: 10461
요즘 남한산성이 참 좋다. 나무들이 한뼘씩 자라는 게 보인다. 소나무건 참나무건 가지 끝에서 새순이 뻗어나오고 있다. 송홧가루를 털어내고 있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나비와 벌도 잉잉거린다. 참나무의 여린 잎들도 겹으로 퍼져 숲은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지고 있다. 그늘이 짙지 않고, 여린 볕이 고르게 비치는 양지엔 야생화도 피었다. 아직은 햇살이 등을 쪼지 않아서 휘적휘적 걷기 좋다. 산길이라 가파른 고비도 있으나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벽은 능선을 갈아타고 이어져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다. 남한산성 성벽길 한 바퀴는 늦은 걸음으로 3시간30분~4시간이다. 산이 버거운 사람들도 큰 무리는 아니다. 걷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한나절 여행지로 적당하다.

■ 북문~남문(디카 코스)
주차장이 넓은 중앙주차장과 로터리 주차장에서 북문이 가깝다. 북문에서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성벽길이 아름답다. 돌계단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고, 그 옆에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담장이 능선을 타고 출렁거린다. 돌계단 가운데서 자란 굽은 소나무도 아름답다.
여긴 디카 코스라 할 만하다. 사진찍기 딱 좋다. 실제로 사진기를 메고 온 사람들도 많다. 휘어진 산줄기를 따라 굽이치는 성벽이 피사체. 성벽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가 바깥쪽으로 튀어나가기도 한다. 안과 밖에 모두 길이 있다. 성벽 안길에선 벽너머로 산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고, 성벽 바깥길에선 육중한 성벽을 끼고 돌게 돼 있다.
북문에서 연주봉 옹성까지는 20분 거리. 옹성 옆에도 성벽에 사람 한두 명이 드나들 만한 암문이 있다. 암문(暗門)은 대문을 달지 않고 정찰병들을 내보냈던 작은 문이다. 옛날엔 돌로 막아뒀다고 한다. 암문을 통해 바깥길과 안길을 들락거릴 수 있다. 이 일대 숲은 다 노송숲이다. 소나무는 하나같이 잘 생겼다. 그늘이 좁지 않아 휴대용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어도 좋겠다.
서문을 돌아내려서면 청량산 수어장대가 나타난다. 수어장대는 2층 누대다. 꽤 아름답다. 바로 옆에는 ‘리대통령 기념식수비’가 서 있다. 남문에서는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뚫려 있다. 로터리~북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남문(1시간20분).

■ 남문~동문(역사코스)
남문을 지나면 숲도 다른 색깔이다. 솔숲이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단풍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빼곡하다. 북문의 송림이 잘 다듬어진 공원같다면 남문~동문 코스는 자연림에 비유할 만하다.
남문부터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짧은 산책을 나왔던 사람들은 남문을 통해 다시 주차장으로 빠진다. 그래서 한적하다. 남문 언저리에 서면 서울시내 고층빌딩들이 보인다.
이 구간은 소설 ‘남한산성’을 떠올릴 만하다. 송파나루에서 강을 건너 임금이 숨은 남한산성. 김훈은 남한산성을 옹골차고 듬직한 산성으로 묘사했다.
‘아껴서 빈틈없이 다져놓은 성이었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간 구간에서 성벽의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이진 구간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렸고, 성을 쌓은 자의 뜻에 따라 더불어 노는 형국이었다. 기울거나 주저앉거나 돌의 이빨이 빠진 자리가 없었다.’
그 시절 군병은 허약했지만 성곽은 야무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남문 일대는 소설과는 반대로 성벽이 많이 상했다. 담장은 구간구간 무너져 내렸고, 벽돌 틈새에 잡초가 뿌리를 박았다. 뿌리가 벽돌을 밀어내 담장은 기울어졌다. 성벽을 보수중인 구간도 보였다. 남장대는 터만 남았다. 몸을 낮추고 적을 공격하기 쉽게 낮게 쌓은 담장 ‘여장’도 보였다. 소설 속에서는 ‘여장의 기와 덮개도 온전했고, 총안(銃眼) 구멍마다 살아 있었다’고 했지만 결코 온전하지 않았다. 이렇게 스러지고 무너져 내린 유적들은 애잔해서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나저나 걷기는 북문 쪽보다 불편했다. 길은 더 좁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했다.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섰을 때 무릎관절약인 ‘케토톱’ 광고판이 나왔다. 헛웃음이 터졌다. 산행이 벅차면 여기서 도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다. 주차장이 나온다. 남문~남장대터~동문(50분)

■ 동문~북문(야생화 코스)
동문 앞이 342번 지방도. 남한산성의 주 도로다. 이 길은 로터리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계곡과 계곡 사이의 동문은 움푹 가라앉은 지형에 세워졌다.
동문에서 시작한 산길은 오르막이다. 때론 가팔라서 제법 힘들다. 한 숨 넘겼다 싶을 때 장경사가 나오고 다시 한숨을 들이쉬고 쉬엄쉬엄 능선을 치밟고 나아가면 동장대 터다.
동장대 터까지 산길이 꽉 조인 길이었다면 능선의 꼭짓점에 서면 산길이 다시 헤벌어진다. 장경사까지만 해도 활엽수림이었지만 산길은 다시 솔숲으로 바뀐다.
이 구간은 성곽이 어떻게 산을 파고 들었는지 가장 잘 보이는 구간이다. 다른 구간은 성곽이 산아래로 숨었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서 한눈에 보이는 곳이 없다. 여기선 성곽이 옆구리를 타고 돌아서 성곽이 뻗어나가는 모습이 잘 보인다. 게다가 숲그늘에는 야생화가 의외로 많다. 잡초가 없는 그늘 넓은 나무밑엔 개별꽃, 괴불주머니, 애기똥풀도 보인다. 간단한 꽃도감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동문~동장대 터~북문(1시간20분)
남한산성은 여러모로 가볼 만하다. 걷기 코스로도 적당하고, 역사기행 코스로도 좋다. 전망도 좋고, 사이사이 벤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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