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슬픈 왕국’에 이르는 굽이굽이 울음 계곡[아프리카 최고 산악도로 사니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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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13 0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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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사니패스(Sani Pass)’라는 길에 대한 이야기다. 남아공에서 레소토 왕국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악도로다. 정상은 2873m. 한국인에겐 생소하겠지만 풍경이 좋아 유럽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레소토 왕국은 남아공 동남부 산악지대에 섬처럼 고립된 국가다.
사니패스는 남아공의 운더버그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현지 여행사의 사륜구동 지프투어를 신청한다. 레소토 왕국까지 거리는 45㎞에 불과하지만 길은 험하기 때문에 지프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산 꼭대기에 레소토 왕국이 있다.

경찰관 출신의 백인 가이드 라씨는 ‘사니패스’란 산(San)족의 길이란 뜻이라고 했다. 산(San)족은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바로 그 종족이다. 부시맨은 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나미비아 칼리하리 사막과 보츠와나 등으로 쫓겨갔다.
부시맨들은 어딜 가고, 왜 바소토족들이 산 꼭대기에 섬 같은 나라를 세웠을까?
사니패스를 이해하려면 아프리카 역사를 조금 들춰야 한다. 18~19세기 아프리카는 대혼란에 빠졌다. 백인과 백인, 백인과 흑인, 흑인과 흑인의 전쟁이 끝이질 않았다.

1820년 영국은 남아공의 케이프 콜로니에 5000여명의 자국민을 이주시켰다. 이들은 17세기부터 정착한 네덜란드인의 후손 보어인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게 된다. 영국은 노예제를 무효라고 선언했고, 보어인은 반발했다. 남아공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인과 보어인은 더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보어인들이 어찌 세계 최강이던 영국군을 이길 수 있겠는가? 결국 쫓기다시피 케이프콜로니를 떠난 보어인들은 새로운 정착촌을 찾아야 했다. 이들을 미국의 개척자에 비유해 ‘보어트레커’라고 하는데 이중 일부는 드라켄스버그 산맥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드라켄스버그 산맥은 레소토와 국경을 이루는 180㎞의 거대한 암벽이다. 보어인들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부시맨을 밀어냈다. 영토에 대한 욕심이 없던 부시맨은 백인들에게 쫓겨 지금은 칼라하리 사막과 보츠와나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편 흑인들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검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던 줄루족 추장 샤카줄루가 아프리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창으로 다른 부족을 굴복시켰던 샤카줄루는 잔인했다. 전쟁에 진 부하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보어인에게, 샤카줄루에게 쫓기던 부족이 바로 바소토족이다. 바소토의 추장 모쉐쉐는 결단을 내려 부족을 이끌고 산악지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 섬 같은 고립된 나라를 세웠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 목숨을 건졌다며 신에게 감사했다. 바소토족의 역사에는 거대한 이주를 바로 ‘디파콴’이라 하고, 줄루족 사람들은 ‘엠페간’이라고 한다. 디파콴은 강제이주, 엠페간은 격파다.
바소토족은 모쉐쉐 국왕의 탁월한 외교술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를 고문으로 뒀던 모쉐쉐는 영국과 보어인의 전쟁 때 영국까지 건너가 영국 편을 들었다. 아마 자신의 땅을 침범한 보어인이 미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바소토랜드란 이름으로 영국보호령이 됐고, 이후 자치령을 거쳐 1966년에는 레소토란 나라로 독립했다.

사니패스는 바소토족이 다녔던 길 중 하나다. 국경으로 이르는 길은 모두 13개인데, 사니패스가 가장 높다. 장제스군에 쫓기는 홍군의 장정에 비유하기는 조금 어색하지만 바소토족도 눈물깨나 흘렸을 게 분명하다. 운더버그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는 길을 30분쯤 달리니 ‘굿 호프’란 가게 터가 나왔다.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레소토공화국의 바소토 부족들이 내려와 물물교환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해발 1968m 남아공 국경검문소를 지나면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울퉁불퉁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데 가이드는 이걸 ‘아프리칸 마사지’라고 했다. 차가 처음 올랐던 것은 1948년이니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바소토족은 나귀에 양모와 면화를 싣고 이 길을 오간다. 차량들이 잘 보이게 나뭇가지에 붉은 깃발을 들고 산을 오르는 바소토족의 모습은 지금은 우스꽝스럽다.

요즘은 바소토족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다. 지프는 물론 모터사이클과 사륜 오토바이까지 다양한 레저용 차를 볼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친 독일인 여성 시몬(34)과 캐나다인 조나단(24) 커플은 “100만원에 오토바이를 사서 사니패스에 도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보츠와나를 거쳐 카이로까지 오토바이로 횡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길에는 자살언덕, 헤어핀, 아이스코너, 그레이코너, 큰바람 코너 등 독특한 이름이 붙어있다.
길은 올라갈수록 장관이다. 산들은 겹겹이었고, 계곡은 가팔랐다. 오른쪽으로는 12사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봉우리들이 웅크린 사자처럼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4시간 만에 오른 정상 사니탑(2873m). 국경엔 철조망도 없었다. 돌멩이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게 전부. 가이드가 검문소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오는 동안 관광객들은 여권 검사도 없이 마을 구경을 시작했다. 마을엔 바소토 원주민 82명이 살고 있었다. 거적대기 같은 담요 하나를 둘러메고 있는 주민들의 차림새는 남루했다. 마을 자체가 난민촌 같다. 아이들은 외국인을 볼 때마다 검고 때묻은 손을 내밀었고, 관광객들에게 받은 사탕을 들고 달려가 어머니의 젖가슴 속에 파묻었다. 원주민들의 집은 원뿔 모양이었는데 문은 모두 북향. 남반구라 북향이 햇살이 잘 든단다. 우리의 온돌처럼 불을 피우면 온기가 돌게 바닥에 구들을 깔았다고 한다. 한 원주민 여성이 내놓은 빵엔 누룩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남아공 광산에서 일해요. 그런데 광산 경기가 안좋아 금광이 문을 닫고 있죠. 실업률이 40~50%가 넘는답니다. 댐에서 물을 남아공에 방류해주는 대가로 매달 2200만란드(약 300억원)를 받는 게 레소토의 주수입원입니다.”

바소토족은 총칼보다 무서운 가난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정은 아직도 불안한 모양이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바소토 마을과 사니탑 산장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산장 실내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펍’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외국인들이 맥주와 차를 마시며 산 아래 거대한 협곡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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