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어이, 친구! 40년 만일세[‘주인공’의 두 주인공 오현경·김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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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5.06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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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조우. 늘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한 무대에 서기는 오랜만이다. 올해 72세 동갑내기. 연극인 오현경(사진 왼쪽)과 김인태(오른쪽)는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5월13일 첫 공연날(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을 기다리고 있다.
‘콤콤한’ 지하실 냄새가 나는 서울 성북 삼성동의 연습실에서는 배우 인생의 또 한 자락을 수놓을 작품이 돋아나고 있었다. 사이좋게 주·조연을 나눠 맡은 연극은 ‘주인공(작·연출 김순영)’. 우리 모두는 너나 할것없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선 것은 40여년 전 연극 ‘휘가로의 결혼’이 마지막이다. 오현경은 ‘실험극단’, 김인태는 ‘동인극장’에서 활동했다. 1960~70년대 두 극단은 라이벌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기에 함께 등장할 일이 없었다. 젊은날이었다면 양 극단의 자존심 대결로 주·조연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펼쳤겠지만 지금 나이에 그 무상함을 알기에 오히려 다른 이유로 신경전이다. 김인태는 말한다. “주인공의 친구 역을 맡았는데 대사량이 훨씬 적어 좋습니다. 요즘엔 대사 외우기가 쉽지 않아요. TV처럼 순발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집중력이 필요하죠.”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두 사람은 따로 분장할 필요가 없다. 노인의 목소리를 내려고 신경쓸 필요도 없어 연기 하기가 편하다. 호흡도 척척 맞는다. “우리는 차도 마시고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가끔 공도 쳐요. 둘다 술은 끊었어요. 눈빛만 봐도 서로 잘 알지. 성격이 비슷하니까 의기투합이 잘 된다고 할까요.” 오현경은 공(골프)은 잘 못치고 레크리에이션(마작)은 돈내기가 아니라고 강조해 말했다.
오현경은 주연 최팔영 역을 맡았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외로움에 단란주점 아가씨에게 청혼하는가 하면 이민 가려는 친구에게 10억원을 주겠다며 말리는 노인이다. ‘크게 될 인물’이라며 기대한 막내아들은 연극배우가 돼 속을 썩인다. 극중에서 두 사람은 연극배우가 된 최팔영의 자식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마침 두 사람의 자식 역시 그들의 말처럼 “연극쟁이 아들, 딸이 연극쟁이가 됐다.” 오현경의 딸 오지혜, 김인태의 아들 김수현이 연극배우. 특히 김인태는 자신이 국내 초연했던 작품으로 5월16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시작되는 ‘쿠크박사의 정원’에 아들이 출연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김인태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자식이 겪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하고 싶어하는 일이니 반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생활이 어렵다는 건데 그것마저도 극복해야 진짜 연극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경은 14년전 식도암으로 큰 수술을 한 후 “남은 생애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두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이 그중 하나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그럼 한 작품밖에 남지 않게. 그때 왠지 한 작품은 서운할 것 같아 두 작품이라고 말했어요. 살아있는 동안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남겨둬야 하니까.”

‘주인공’ 작품 얘기로 돌아갔다. 오현경은 “젊었을 때는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인 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권력·돈·성공 이런 것들로 나눈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비굴해질 때도 있지만 큰 과오가 없고 하늘과 자식에게 부끄럼 없다면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옆에 자리한 김인태는 “삶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기자가 준비해간 조명장치가 마련됐다. 나란히 의자에 앉은 두 사람. “키스만 하지 말라고 해요.” 분위기를 띄운 오현경은 “내가 젊었을 때는 노주현 같은 얼굴이 미남이라고 하더니만 내가 늙고 나니 요즘은 V라인이 인기래요. 내가 V라인 원조인데”라며 웃었다.

매일 오후 6시 연습이 끝난다. 두 사람은 근처 삼선교의 안동할매청국장집에 들러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은 704번 시내버스를 타고 각자 집으로 향할 것이다. 이미 ‘인생’이란 큰 무대에서 진짜 연극을 시작한 지 두달째. 실제 공연은 4일간으로 짧다. 연습과 실제 연극의 구분마저 초월한 듯한 그들이기에 불과 나흘간의 공연이 아쉬울 것도 없다. 그들이 맛본 청국장을 닮은 연극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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