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긍정적 무대인생 어머니의 유전자”[‘썸걸즈’ 주인공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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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4.29 09: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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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였던가. 연분홍 벚꽃잎이 흩날리던 봄날, 석관초등 2학년 석준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지각하는 바람에 학교의 소풍 행렬을 놓치자 그 길로 엄마와 단둘이 창경원으로 갔다. 창경원을 샅샅이 누비며 동물도 구경하고 푸짐한 도시락도 까먹었다. 배우가 된 후 찍은 사진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막내 아들의 신나하는 모습에 힘든 줄도 모르신 것 같았다. 그때 엄마는 결핵으로 폐 한쪽을 잘라낸 대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철없다”고 불같이 화를 냈지만 엄마는 피곤한 기색없이 아들을 감쌌다. 2001년 한 겨울. 출연한 뮤지컬이 흥행에 참패하고 2년 가까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집에도 안 좋은 일이 겹쳐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몰래 용돈을 건네주며 “우리 아들 기죽지마”하며 응원해주셨다.
어쩌다보니 그의 어머니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집안 윗대로 13대, 좌우로 아무리 살펴봐도 연예인의 유전자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 끝에 그는 “어머니가 노래를 잘 부르고 동네사람 흉내를 잘 내신다”고 말했다. 또 “인생을 이토록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사신 분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느꼈지만 그의 노래와 연기실력, 따뜻한 심성은 어머니 덕분인 것 같다.
배우 이석준(36).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오는 8월10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썸걸즈’의 바람둥이 주인공(최덕문과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하고 있다. ‘썸걸즈’는 지난해 국내 초연에 이어 두번째 무대다. 결혼을 앞둔 남자가 깔끔한 정리를 위해 옛 애인 4명을 각각 호텔방으로 불러 과거사를 정리하는 상황을 그렸다. 남녀심리를 파고드는 묘사와 귀에 착착 달라붙는 대사, 연기자들의 열연으로 인기다. 감정몰입이 된 여성 관객들은 공연중 그를 보고 “죽일놈”이라며 흥분한다. “무대로 뛰어올라가 한대 쥐어박고 싶다”는 관람평도 쏟아진다.
그의 활약으로 객석 열기는 장난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로 인기를 얻었지만 이 작품에선 노래 한 곡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꽉 찬 느낌이다. 13년간 다져진 내공 덕분일 것이다. 무명, 주연, 추락, 공백, 조연, 다시 주연….
“돌이켜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름대로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된 시간들이었죠. 이젠 주·조연을 맡을까, 얼마나 유명한 작품일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단지 얼마나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하죠.”
심심한 대답이지만 마음에 와닿는다. 진실함 때문이다. 진실은 그의 키워드다. 그가 출연한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를 지켜본 ‘아이다’의 해외 연출진은 라다메스 장군 역으로 일찌감치 그를 점찍었다. 한창 주가를 높일 때 주인공 배역 제안이 왔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년 후 조연으로 출연하며 자존심 상했지만 이 작품에서 아내 추상미를 만났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 제작한 ‘뮤지컬 이야기쇼’는 천신만고 끝에 100회 공연 약속을 지켰다. 모두 값진 과정이었다.
추상미와는 지난해 11월 결혼했다. 결혼 소감을 묻자 마치 공연하는 것 같단다. 천상 배우부부다.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기에 불편한 구속은 없다. “애교 많고 보기보다 여린 아내.” 얘기가 나오자 끝이 없다. 아내가 결혼과 함께 요리에 눈을 떠서 시어머니까지 인정하는 솜씨라는 둥, 실제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연기로 하라면 실제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둥…. 어쩔 수 없는 ‘새신랑’이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공동의 통장 하나를 마련했다. 좀도리 쌀처럼 수입이 있을 때마다 덜어내 저축하는 통장이다. 두 사람의 꿈을 묻자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이미 하고 있다”고 말한 데서 힌트가 얻어진다. 이석준은 자신의 홈피 회원들과 5년 전부터 보육원에 있는 4남매를 돕고 있다. 요즘은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 때문에 덩달아 고민이 많다.
8월에 시작하는 TV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는 또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다. 11월 뮤지컬 무대와 2010년쯤 드라마와 음악이 제대로 조화를 이룬 창작뮤지컬도 직접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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