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뮤지컬 ‘소나기’ 연출 유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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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4.22 09: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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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한여름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무대 바닥에 파놓은 도랑이 넘칠 기세다. 한 회당 쏟아지는 비의 분량이 3t가량이다. 덕분에 공연의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가 맞았을 빗줄기의 시원함이 객석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고집 피우기를 잘했다는 표정의 남자. 뮤지컬 ‘소나기’의 12일 개막을 앞두고 서울시뮤지컬단 유희성 단장(49)은 공연장인 세종M씨어터에서 살다시피하고 있다. 이 작품의 연출가로 고집 피운 게 또 있다. 본무대 리허설만 8일을 주장했다. 대관상의 문제 등으로 국내 공연계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서울시뮤지컬단이 공연하고 직접 연출한 뮤지컬 ‘애니’의 성공 덕분에 말발이 세진 게 확실하다.
“안 그래도 ‘애니’ 덕분에 고집 좀 피웠습니다. 이왕이면 제대로 만들자는 욕심이 컸죠. 온 국민이 아끼는 단편 ‘소나기’가 원작인데 욕심을 안 부릴 수가 없잖아요. 청소년들에게 좋은 창작뮤지컬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뮤지컬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설이 원작이다. 올해 부산국제연극제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진작에 선정됐고 오는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키지무나 페스타’에 아시아 작품 중 유일하게 초청돼 영국·스페인·독일에서 온 45편과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또 인기그룹 ‘빅뱅’의 승리(이승현)가 소년 역으로 캐스팅돼 화제를 낳고 있다. 2004년 초연에 비해 작품 규모와 위상이 커졌다.
유 단장은 언제나 웃음 띤 부드러운 얼굴이지만 감춰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하는 일은 뭘까. 싱겁게도 공연 보기다. 일단 공연 소식을 접하면 그중 99%를 볼 정도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공연통’이다. 직접 본 공연들 중 “60%는 허접하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뜨거운 피 덕분인 것 같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함께 가수가 되려고 음반을 녹음하셨대요. 부모님의 몽둥이 세례로 꿈을 접긴 했지만 노래 실력은 여전하십니다. 저 역시 대학 때 자원공학을 전공했지만 교내 그룹사운드 ‘캐라반’에서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과학자’ ‘대통령’이 꿈이라고 할 때 저는 ‘연예인’이라고 외쳤죠. 광주 서석고등학교 시절에는 제1회 전국학생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죠.”
누구보다도 일찍 뮤지컬에 눈떴다. 1986년 대학졸업 후 광주시립극단에서 활동할 때였다. 공연차 방문한 독일에서 음악극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뒤부터 스스로 음악극의 재료가 될 만한 판소리, 사물놀이, 대금, 한국무용 등 모든 것을 익혀나갔다. 서울예술단에서 20년간 배우와 뮤지컬·무용 연출 등으로 무대 인생을 다져왔다. 97년에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대원군 역으로 제4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환한 표정 덕분에 좌절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한때는 마음 속에서 칼을 갈기도 했단다. 뮤지컬 ‘아리랑 아리랑’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더블캐스팅 된 때였다. 스타 연기자인 유 장관의 공연일은 티켓이 불티나게 팔렸고 유 단장의 공연일 객석은 쓸쓸할 지경이었다. 뮤지컬 ‘한강은 보인다’에서는 유 장관의 ‘커버(주연의 대역)’로 죽도록 연습했지만 끝내 무대에 서지는 못했다.

“배우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이 바닥을 떠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저와 타인을 두루두루 비교하며 내실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여물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었죠. 후배들에게도 준비하는 배우가 되라고 얘기하죠. 겹치기 출연하는 후배들에게 호통을 치는데 고맙게도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겹치기 출연’의 말 끝에 ‘겹치기 연출’이 들통났다. 이달 24~25일 공연되는 서울시무용단의 ‘경성,1930’에서 각색·연출을 맡은 것.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얼굴을 붉히는데 오랫동안 준비해온 팔방미인의 자질 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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