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바쇼의 하이쿠 기행’ 옮긴 김정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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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4.17 09: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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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조 17음으로 이뤄진 짧은 정형시, 하이쿠(俳句).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압축미와 서정성에 있을 터이다. 그러나 하이쿠를 일본의 대표적인 시로 여기는 것은 오산이다.
“하이쿠는 도시상인과 하급무사, 부농 등이 읊었던 시예요. 그에 비해 ‘와카’(和歌)는 무사와 귀족 등 상류층이 애호하던 시 양식이죠. 그래서 하이쿠에는 비주류적이고 서민의 향취가 강한 시였는데, 근대에 서양의 시(poetry) 개념이 수입된 이후, 하이쿠가 일본의 국민시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소개됐어요.”
전남대 일문과 김정례 교수(46·)의 설명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를 전공한 김 교수가 최근 바쇼의 철학과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기행문 3편을 한데 모아 번역하고 꼼꼼하게 각주와 해설을 달아 ‘바쇼의 하이쿠 기행’(바다출판사)이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바쇼의 3대 기행문으로 일컬어지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おくのほそ道)’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野ざらし紀行)’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おいの小文)’를 소개한 책이다. 10년 전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번역해 펴냈던 김 교수는 이제야 남은 숙제를 끝내서 후련하다고 했다.
“ ‘오래된 연못’이라고 시작하는 하이쿠가 있어요. 이게 한국어 번역본만 7개예요. 영역본은 108개나 됩니다. 그렇게 짧은데도, 번역이 이만큼 다양하다는 거죠. 한국의 시 리듬에 글을 맞추고 다듬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시가 음율과 하이쿠 음율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바쇼는 해학만이 전부이던 하이쿠에 삶의 진리를 담아 품격을 높이고 한 차원 높은 예술로 이끌어 낸 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바쇼를 전공한 김 교수는 젊은 날에는 그다지 바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이쿠는 본디 언어유희에 가까운 시로, 돌아가면서 한 수씩 교대로 읊고 창작하는 장르여서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없는 일본 시들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젊은 날엔 바쇼의 시가 연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그 사람의 고뇌, 꿈, 절망을 슬슬 알아가는 나이가 되니까, 시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하급무사계급 출신인 바쇼는 30대에 제법 인기있는 하이쿠 선생이었다. 하이쿠를 가르치고 그 대가로 생활을 영위하던 바쇼는 37세가 되자 홀로 은둔한 뒤 41세가 되어 길 위로 나섰다. 그가 처음 쓴 기행문이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이고 명문장으로 유명한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이 그가 남긴 마지막 기행문이다.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 요’는 자신의 젊은 날을 뒤돌아보며 왜 평생 하이쿠를 읊으며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토로한 유일한 글이다.
바쇼에게 여행은 고행이면서 예술의 연장이었다. ‘오쿠로 가는 길’은 장장 150여일간 2400㎞를 걸으면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길을 거쳐간 수많은 시인들의 흔적을 더듬는 여정을 노래한 시. 서너 달이 걸리는 고된 여행을 수차례 떠나면서 바쇼의 하이쿠는 점차 서경적인 정취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었고 이는 이후 하이쿠 창작자들의 전범이 되었다. “하이쿠는 사소한 것을 섬세하게 읊는 시라고 할 수 있죠. 깨달음을 얻은 시인은 5·7·5라는 짧은 시 안에도 우주를 담을 수가 있어요. 바쇼의 시 ‘거친 바다여/사도 섬으로 누운 듯이/흐르는 은하수’도 17자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지요.”
인터뷰를 끝내며 김 교수는, 일본 전역에 바쇼를 기념하는 시비가 4000여개나 세워져 있고 바쇼기념관과 그를 기리는 축제까지 곳곳에서 열릴 정도로 흔적 하나하나가 지역의 문화콘텐츠가 되고 있는 상황이 부러웠다고 했다.
“문화콘텐츠는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해 확대 재생산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되새길 부분이 많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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