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파도의 꿈인가, 하늘을 찌르는 ‘갯깍’[제주 예래동·대평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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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4.11 09: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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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화수분이다. 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났다. 김영갑 갤러리에 걸린 제주의 모습은 얼마나 다양하고 특이한가? 팸플릿에서는 결코 보지 못하는 제주도가 어찌 그리 많이 숨어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번에 제주도에서 만난 새로운 제주는 예래동과 대평리 마을이다.
혹시 서귀포에서 유람선을 타 본 사람은 중문 해안이 절벽으로 이뤄져 있는 모습을 보셨을 것이다. 절벽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있지만 해안은 날카롭다. 두툼한 시루떡을 칼로 잘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절벽 지대의 명물은 6각형 기둥 모양을 한 검은 현무암 바위군, 바로 주상절리다.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수축작용을 일으켜 6각형으로 변했다. 중문의 주상절리는 절벽 위에서 내려보게 돼 있으나 결코 만져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주상절리를 만져보고 주상절리 동굴에도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예래동이다.
예래동은 참 복잡한 동네였다. 골목길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거린다. 동네도 제법 넓어서 길도 헷갈린다. 제주도에서 운행되는 대부분의 렌터카는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는데 갯깍은 안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예래동 하수처리장을 입력했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 주상절리 높이 40m에 길이 1㎞
그나저나 하수처리장이 있는 곳이 무슨 여행지가 되겠느냐고 의심할 수 있겠다. 기자도 놀랐다. 하수처리장 옆에는 국내 반딧불이 보호지역 제1호라는 안내문까지 붙어있다. 반딧불이가 사는 동네에 하수처리장을 세웠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길 안내를 해준 50대 주민은 “이렇게 좋은 곳에 이런 것을 세웠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일대를 갯깍이라고 부른다. 갯은 바다를 뜻하고, 깍은 끄트머리란 방언이다. 바다 끝머리란 뜻이다.
주상절리로 내려가는 산책로. 질 좋은 정원석을 쌓아 길을 만들었다. 알고 보니 해변에 있는 돌들이 정원석으로 써도 될 만큼 좋다.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이나 완도의 구계등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돌이다. 파도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해졌다. 길이는 30~50㎝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주상절리다. 중문 주상절리가 육각형이라면 갯깍은 각이진 기둥이 겹쳐진 모습이다. 돌이 너무 그럴싸해서 돌 같지 않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에서 동굴의 질감을 표현할 때 쓰는 FRP 같다. ‘진짜가 가짜 같다’는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하여튼 희한하다.
주상절리의 높이는 40, 길이는 1㎞쯤 된다. 돌틈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유채도 피었다. 갯깍 절벽엔 굴이 두 개 있다. 첫번째 굴은 제법 크다. 민물 때는 파도가 바로 굴 입구까지 찰랑찰랑거린다. 마치 거대한 신전으로 고개를 쑥 내미는 느낌이다. 두번째 굴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첫번째 굴을 지나가다보면 조그마한 언덕빼기쯤에 굴이 하나 보인다. 굴은 작다. 굴 앞에는 버려진 안내판이 하나 있는데 내용을 알 수는 없다. 나중에 찾아보니 선사시대 유적이라고 한다.

# 절벽에는 선사시대 유적 동굴도
굴 속, 바닥은 땅이다. 그리 높지는 않고 아늑하다. 바닥흙이 곱고 부드럽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동굴을 집 삼아 살았다면 이만큼 좋은 곳을 찾기 힘들어 보일 정도다. 연분이 난 처녀 총각이 부모님 눈길을 피해 숨었을 것 같은 아늑한 동굴이다. 이 동굴에서 제주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상했다. 한 주민은 이웃 대평리와 예래동은 사이가 몹시 안좋다고 했다. 예래동 사람들은 대평리로는 학교도 안보냈다고 한다. 이유는? 주민들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두 마을은 최근 군산 오름을 놓고 신경전까지 벌인 모양이다. 군산 오름은 두 마을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2개인 오름이다. 두 마을 사람들이 서로 “우리 오름”이라고 우겼단다. 결국 측량까지 다시 했다. 마을 사람들이 정초에 제사를 지낼 때도 서로 다른 쪽 봉우리에서 제를 올린단다. 그래서 대평리 총각과 예래동 처녀가 만났다면? 눈길을 피할 만한 굴은 여기가 딱이다.

# 대평리는 마을 자체가 천혜의 항구
자, 그럼 대평리 해안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대평리 마을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차로 10분거리다. 대평리는 뒤에 산비탈이 일어선 형국. 큰 길에서 마을을 들어올 때는 제법 큰 고개 하나를 넘는다. 예래동에서 대평리까지는 해안도로가 나있다. 포구 끝머리에 ‘제주 몰질’이라는 길이 하나 있다. 몰질은 말이 다니던 길이란 뜻. 제주도는 고려 때부터 이미 말목장이 많았다. 고려가 원나라에 함락된 후 몽골인들이 이곳에서 새별오름 같은 지역에서 말을 길렀고, 이 말을 이 마을로 옮겨와 가져갔다는 것이다. 몰질은 좁았다. 돌투성이에 수목도 울창했다. 이런 좁은 길이 어떻게 수송로가 됐을까? 고정흥 대평리 이장은 “마을 자체가 천혜의 항구다. 당시엔 천연 항구가 많지 않아 이 길로 말을 싣고와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고 이장은 “몰질 절벽에서 내려다보면 대평리가 얼마나 천혜의 항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분쯤 오르니 절벽해안이 나타났다. 밭고랑을 가로질러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을 찾아갔다. 소나무 솔숲이 우거진 절벽. 산 아래엔 포구가 펼쳐졌다. 포구는 한눈에 봐도 아름답다. 해안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 바람을 막아줄 듯싶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지역에 전망대를 세우려 했던 모양이다. 제주 신라가 대평리 마을과 함께 몰질 트레킹을 개발했고, 현재 투숙객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라고 한다.
“천지연이나 정방폭포도 봤고, 용눈이오름도 다녀왔는 데 어디 짬날 때 한 번 가볼 만한 데 없나?” 갯깍과 대평리 해안은 이런 고민을 하는 여행자에게 한나절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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