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홈런왕에서 대학 교수로’ 인생 모법답안 쓰고 있는 김봉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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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27 09:13:05
  • 조회: 534
-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자장면을 먹고 싶어서”였다면서요.
“셋째인 봉구형이 같은 전주 중앙초등학교 야구선수였어요. 야구연습하는 형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왔는데 어느날, 아무리 기다려도 형이 안 나와서 교무실에 가봤더니 야구부 형들이 자장면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본 순간, 제 인생이 결정된 겁니다. ‘야구부에 들어가면 매일 자장면을 먹는구나’란 단순한 생각에 다음날 야구부 연습장에 가서 저도 괜히 공을 던지며 놀았죠. 선생님이 저를 테스트해보더니 바로 며칠 후 시합에 내보내셨어요. 전 그날 이후 한번도 후보였던 적이 없습니다. 자장면은 매일 먹는 게 아니라 시합 끝나는 날만 먹을 수 있었지만 자장면의 맛이 야구 인생을 걷게 한 셈이죠.”
-원년 홈런왕, 3관왕인 MVP란 기록 외에 투혼과 승부근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자동차 사고로 314 바늘이나 꿰매는 대형 사고를 당하고도 27일 만에 출장해 해태 우승신화의 주춧돌을 놓았던 게 기억납니다.
“제가 만 서른살 넘은 나이에 프로야구를 시작할 땐 그저 2년 정도 뛰다 그만둬야지란 생각뿐이었어요. 하지만 진정한 프로는 절대 환경이나 남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시합 중 발목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벤치에 앉아 있던 82년, 백인천 선수의 집요한 추격에 마음이 급해져 타격 차례를 기다리던 후배 김우근을 불러 ‘네 대신 내가 나간다’며 깁스 풀고 붕대를 질끈 묶은 다음에 타석에 나섰죠. 걸어나가기도 힘든 상태였는데 홈런을 날려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그라운드 돌아나와 22개의 홈런 기록으로 원년 홈런왕이 되었습니다. 결과야 좋았지만 어찌보면 선배의 횡포죠. 다음 해엔 친구 부부와 여행갔다가 자동차가 전복되어 300바늘 이상 꿰매는 수술을 하는 대형 사고가 났죠. 나흘 만에 깨어나서 병실에 있는 아내를 보고 한 첫말이 ‘지금 뭐해? 시합가게 유니폼 챙겨’였어요. 다행히 회복이 빨라 고기 먹고 병원에서 스윙 연습도 했죠. 퇴원하자마자 경기를 보러 갔는데 아나운서가 저 왔다고 방송을 해서 3만 관중이 환호하기에 일어나서 답례했다가 ‘네가 DJ(김대중 전 대통령)냐?’는 빈축도 받았습니다. 그해 MVP로 선정되어 포니2자동차를 받았죠.”
- 다 치고 싶지만 못 치는 게 홈런입니다. 홈런왕의 비결이 뭡니까.
“야구는 두뇌 플레이와 마음 가짐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호성이가 ‘선배처럼 야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기에 ‘나처럼 하지 말고 네 스타일대로 하라’고 했어요. 자기를 알고 자기 스타일을 살려야 어떤 상황에서도 안 흔들리죠. 83년에 MVP가 된 후 잘난 척하며 인터뷰마다 ‘내년엔 다시 홈런왕이 될 거다’라고 호언장담했는데 웬걸, 계속 죽을 쒔어요. 홈런 욕심을 내니까 안됩디다. 그때 깨달은 게 ‘공심타법’, 즉 마음을 비우는 타법입니다. 홈런에 연연해하지 말고 안타라도 자주 치자라고 생각하니 홈런을 치게 되더군요. 제가 학생 시절부터 야구 일기를 썼습니다. 일본에 시합하러 갔을 때 방송에서 왕정치 선수가 매일 언제 일어나서 언제 자고 스윙 연습을 몇 번했고 느낌이 어땠다 등의 일지를 쓴다는 걸 보고 따라했죠. 홈런이 언제 터질지는 몰라도, 절대 준비하지 않은 선수들은 칠 수 없습니다. 야구나 인생 모두 성공은 준비한 이들에게 오거든요.”
- 학창 시절 농구, 육상, 마라톤, 배구 등 여러 운동을 섭렵하고, 요즘은 프로 골퍼이자 골프 해설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모든 운동 중에서도 야구가 최고라고 말하는데, 야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야구가 우리 인생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타자 한사람이 방망이 하나로 만들어내는 일인극이라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팀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경기이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홈런이 터졌을 때, 그 홈런이 만들어내는 정적 속의 희열과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죠. 야구가 9회말이 될 때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듯 인생도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스타 선수들이라도 언젠가 은퇴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 다음에 멋진 삶이 기다리고 인생의 진정한 홈런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이제 매일 승부에 피 마르는 야구보다는 대학교수 생활이 더 좋지 않나요?
“야구를 안하니까 김응용 감독에게 야단맞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웃음) 하지만 운동선수가 제대로 가르치겠느냐는 비웃음을 안 사려고 남보다 몇 배 노력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프로야구팀 감독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젠 유니폼보다 양복과 넥타이가 더 어울리고, 승률보다 입학 정원이 관심사인 대학교수 김봉연. 그래도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여전히 원년 홈런왕 김봉연의 그 홈런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던 하얀공을 따라 “큽니다. 큽니다. 넘어 가느냐, 넘어가느냐….” 캐스터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다 넘어갔을 때 모두 함께 숨이 멎던 순간들. 야구장을 함성과 눈물과 축제로 만들었던 그. 야구평론가 김은식씨는 김봉연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홈런왕 김봉연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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