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장애인식바로잡기연구소’ 발기 다시 외치는 ‘쿵따리 샤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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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25 09:12:09
  • 조회: 408
“제가 춤을 출 수 없다고요? 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춤을 추냐고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춤인데, 춤을 못 춘다는 게 말이나 돼요? 지금 나는 두 발, 두 다리로는 춤을 출 수 없지만, 매일 매일 춤을 추고 있어요. 지금 내 춤은 ‘표정’이에요. 제가 무대에서 활짝 웃고 있으면 아주 신나는 춤을 추는 거고, 제가 무대에서 굉장히 인상을 쓰고 있으면, 멋진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나에게 춤은 ‘내 마음가짐’입니다.”
2000년 11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씨(39). 벌써 휠체어를 탄 지 8년째다. 수많은 장애인단체에서 들어오는 ‘홍보대사’로 일해 달라,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 달라는 요청에 “이름만 걸어놓는 일은 할 수 없다”며 거절해온 그가 최근 장애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11일 설립된 사단법인 ‘장애인식바로잡기연구소’(대표 방귀희)의 발기인으로 직접 참여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시작한 일은 대충대충 하지 않고, 마음이 움직여야만 일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KBS 본관에서 만난 그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지만, 장애 때문에 삶이 끝난 것도 아니고, 장애가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갈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혼자였다. 하반신 마비, 지체장애 1급이지만 그의 곁에는 도우미가 없었다. 가수로 방송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매니저도 없다. 장애인이지만 도움받는 사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주스 잔이 바닥을 보였다. 아마 그는 약속시간 훨씬 전부터 나와 있었던 모양이다. “장애인이 되고부터는 남보다 먼저 출발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 일찍 나선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최근 ‘장애인식바로잡기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어떤 단체인가요.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는 사업이나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편견 해소를 위한 교육 사업, 문화·예술공연 등을 펼칠 예정입니다.”
-단체를 설립하신 것을 보면,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낀 것 같습니다.
“응답자의 80%가 장애인을 불쌍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기능, 능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불쌍한 존재는 아니거든요.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법규나 제도에서는 선진국에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식은 후진국 수준이죠. 제가 아는 20대 여성 장애인은 집에 자장면 배달이 오면 엄마가 보자기로 자기를 덮었대요. 처음에는 엄마가 자기를 보호하느라고 그런 줄 알았대요. 나중에 자신이 부끄러워서 숨겨야 할 존재라는 걸 알았답니다. 제가 요즘 수영장을 다닙니다. 장애인 친구들에게 수영장에 다닌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자기는 동네 목욕탕에도 한 번 간 적이 없대요. 목욕탕에 가면 ‘옮는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장애인들에게 강원래씨는 어떤 존재입니까.
“저는 비장애, 장애 경험이 다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들은 사회 경험이 없다보니,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 봤겠어요. 술을 많이 마셔봤겠어요. 놀아 봤겠어요, 사창가를 가봤겠어요? 저는 그런 분들이 모르는 사회의 경험을 이야기해 줄 수 있고, 또 비장애인들에게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죠.”

-스타 출신 장애인으로 소명감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단체를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인가요.
“KBS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였어요. 무대로 나가다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어요. 생방송이니까 사람들이 당황하고, 다 지켜 봤죠. 걸을 수 있는 사람 같으면 일으켜세우면 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여러 사람이 들어서 나를 옮겼어요. 1주일 뒤 그 턱이 없어졌어요. 만약 그 때 가수 강원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넘어졌다면 그렇게 빨리 바뀌었겠어요? 그때 ‘내가 대단한 놈이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방송에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이 다님으로써 차별과 편견이 없어지고 사회가 바뀌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면서 많이 보여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스타 강원래’가 아닌 ‘보통사람 강원래’로서 장애 극복은 하셨습니까.
“무슨 극복? 뭘 극복한다는 거예요? 휠체어를 버리고 벌떡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극복이 됩니까? 이렇게 사는 거지요. 탈 없이 잘 살다가도 화장실에서 똥을 싸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이 한심한 놈아! 이 모양을 해 가지고 어떻게 살래’ 머리를 쥐어뜯는데…. 다만 일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을 안하는 거죠.”

-사고 직후 장애인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2000년 11월9일 오후 오토바이를 타고 반포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쏘나타 승용차가 달려와서 덮쳤죠. 내가 신호를 어긴 것도 아니고,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가만히 서 있는데 자동차가 와서 덮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때 심정은요) 기자님이라면 의사 선생님이 ‘당신 앞으로 못 걸어!’라고 말하면 어떨 것 같아요? 엉엉 울 것 같아요? 아니면 다리도 없이 어떻게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천만에요. 저는 ‘설마…’ ‘설마 내가 걸을 수 없을까’ 했어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사고를 인정하고 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의 심정은 2005년에 발표한 클론의 5집 앨범 ‘Victory’에 ‘…여기가 어딜까 한참을 헤매다 눈을 떴을 때/ 불행은 내 온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나를 춤추게 하는 내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로 시작하는 ‘병상일지’라는 곡에 들어 있어요.”

-그래도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죽을 용기가 없었어요. 살기는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장애인 친구들을 찾았어요. 그들에게 니들 똥은 어떻게 싸냐? 오줌은 어떻게 싸냐? 섹스는 어떻게 하냐? 밥은 어디서 먹냐? 이런 것들을 물으면서 친해지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구준엽씨와의 우정이 떠오릅니다.
“준엽이는 항상 저의 라이벌이었어요. 준엽이보다 춤을 잘 추고 싶었고, 준엽이보다 더 멋있게 보이고 싶었고, 준엽이보다 더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언제나 준엽이를 이기고 싶었어요. 재기 앨범을 의논하기 위해 준엽이와 만났어요. 소파에 앉아 있던 준엽이가 일어서는데 자기도 모르게 휠체어를 미는 동작을 하면서 일어서더라고요. “짜식 봐라!’ 그때 준엽이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휠체어를 타고 있었어요. 고마움을 느꼈죠. 준엽이와는 경기고등학교 동창이고, 춤을 좋아해 만난 친구예요. 25년 이상을 함께해 왔죠.”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중문화와 춤’을 강의합니다. (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저는 춤은 ‘자신감’이라고 얘기해요. 무대에 올라갈 때까지. 무대 밑에서 천 번, 만 번, 수억 번을 연습하고, 무대에서 딱 한 번밖에 안 하는 것. 그 한 번을 위해 수많은 연습을 하는 것. 강원래에게 춤은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입니까. 장애인 운동 계속할 건가요.
“방송을 열심히 해야겠죠. 더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면서 장애인도 저렇게 멋지게 사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어야겠죠. 나도 강원래씨처럼 됐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문자와 메일이 매일 들어옵니다. 처음 제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분이 있다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겠죠? 당신도 강원래처럼 된 거다. 강원래 잘 살고 있다. 당신도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런 분들이 저를 보고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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