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객석을 무대에 올린 ‘못말리는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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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07 11: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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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 멕베스’ 연출 한태숙

600석의 멀쩡한 객석이 버림받게 생겼다. 대신 무대 위에는 ㄷ자형으로 300석의 의자가 놓인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앉아 있어야 할 객석을 향해 앉게 된다. 극장 관계자들은 버려진 객석의 티켓 수입을 생각하면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못말리는’ 연출자는 만족한 표정이다. ‘제의’와도 같은 연극에 관객이 좀더 참여할 수 있도록 무대를 코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기괴한 움직임과 음악, 강렬한 오브제, 죄의식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집요한 고뇌…. 예술의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역대 공연작 중 최고작을 설문조사했다. 관객과 평론가 1181명이 1순위로 뽑은 최고작은 연극 ‘레이디 맥베스’였다. 연극 관람 후 “구토를 했다”는 관객이 있을 만큼 극단을 달리는 작품이지만 관객들은 ‘보는 괴로움’을 자청한 셈이다. 덕분에 3월21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1위로 선정됐다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제 작품에는 유머가 없고 어떤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다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기쁨도 시련이란 말이 있죠.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극단 ‘물리’ 대표이기도 한 연출가 한태숙(56)은 ‘레이디 맥베스’ ‘서안화차’ 등 관객과 평단이 수작으로 꼽는 대표작들을 갖고 있다. ‘레이디 맥베스’는 권좌에 오르기 위해 왕을 살해한 맥베스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한태숙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야망과 그로인한 공포, 절망을 담아내는 데 왕의 살해를 주도한 맥베스의 아내가 주인공으로 더 적확하다고 판단했고 생각은 적중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원작을 훼손시켰다는 비판도 했지만 오히려 셰익스피어 관련 학회나 학자들은 제가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성찬을 하기도 했어요. 어떤 작품은 더하고 싶어도 생명력이 없어 사그라드는데 이 작품은 스스로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것 같아요.”
맥베스 부인 역에는 서주희, 맥베스와 왕실의사 2인 역에는 정동환이 나온다. 오브제 작가 이영란은 무대에 등장해 직접 진흙과 밀가루를 이용해 죽은 왕의 이미지를 생동적으로 보여준다. 기괴한 음악으로 현실과 꿈의 세계를 가르고 선악의 대치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은 연주가 박재천의 몫이다.
“전부터 객석을 무대 위에 올리거나 미술과 음악으로 많은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레이디 맥베스’는 그런 욕구를 현실화해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죠. 그러한 실험들을 하는 데 용기를 내게 해준 터닝포인트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이 작품을 갖고 올해 도쿄와 베이징에서 열리는 연극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26세에 연출가로 데뷔한 후 연극계를 떠났다가 중고 신인으로 돌아와 선보인 작품들을 합치면 24개 정도다. 또래 연출가들의 작품에 비해 절반을 조금 넘는 수다. 집안의 가재도구를 가져다가 무대에 올려놓을 만큼 어려운 상황도 많았지만 “아직 쓰라린 맛을 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요즘도 그의 가족들은 작품을 올린다는 말에 긴장부터 한단다. 자신의 옷가지나 신발, 개인 애장품 등이 슬쩍 무대 위로 사라지는 경험을 숱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관객이 없어 외롭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극단을 이끌어오면서 가장 보람된 것은 후배 연출자들이 독립해 활동하는 것입니다. 김수희 조연출도 내년에 연출가로 데뷔할 거예요. 서재형이 이미 자리를 잡아 활동하고 있고요. 저런 조연출을 어디서 구하나 걱정이 크지만 가장 기쁜 일이죠.”
지난해 9월 연극 ‘짐’을 올리고 난 후 왼쪽 팔·다리에 근육파열이 일어나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연극 작업을 못하는 인생이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지금도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면 비명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통스럽긴 하지만 작업의 희열은 또 다른 작업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진다고 고백한다.
오는 10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살로메’를 연출하고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서안화차’도 재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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