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神·철인·나 셋이서 거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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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07 11: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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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철학의 언덕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아테네를 서양문명의 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거기서 나왔고, 민주주의가 영근 것도 아테네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배출한 철학의 땅이기도 하다. 서양이라는 뿌리를 쫓아가다보면 결국은 아테네와 닿게 된다. 아테네에서도 아크로폴리스는 서양 문명의 심장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른 아침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아크로폴리스 자체가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높다는 뜻의 아크로스(Akros)와 도시국가란 뜻의 폴리스(Polis)를 합친 말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원뿔형의 언덕을 칼로 뚝 잘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높이는 190가 조금 넘는다. 여행객들은 성벽 옆을 따라 놓인 탐방로를 오르다 거대한 기둥숲을 지나 아크로폴리스로 안내된다. 비록 무너지고 부서진 기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은 장관이다. 대리석에 홈을 파서 세워놓은 신전의 기둥은 250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눈부시게 하얗다.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에 압도당한다. 사실 절벽 아래서 올려다본 파르테논은 그리 크지 않아보인다. 막상 신전 앞의 돌기둥 옆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 신들의 땅 아크로폴리스
관광객들은 쉽게 진입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성역이었다. 아테네인들이 그리스의 신을 모신 곳이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탐방로는 예전엔 시민들이라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다. 이중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풍요의 여신이었다. 아네나는 처녀신이었으므로 아테네 사람들은 신전을 처녀의 집, 즉 파르테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의 벽에 신과 인간의 역사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신들이 벌인 전쟁, 전설의 여전사 아마조네스와 켄타로우스의 전쟁, 아테네 사람들과 아마조네스의 전쟁, 트로이 전쟁 등을 새겼다. 부조물을 찾았지만 볼 수 없었다. 대리석 기둥 위에는 말 조각상 등만 남아있다. 중요한 유물은 영국인들이 대영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겼다. 영국인들은 기둥까지 뽑아 가버렸다. 남아있는 조각품도 대단하다. 2500년 전에 어느 장수가 이끌었던, 아니면 신들이 타고다녔을 것 같은 잘 생긴 백마상은 지금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하다. 돌을 찰흙처럼 다룬 아테네인들의 솜씨가 놀랍다. 경외심이 일어날 정도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고대문명의 세월의 무게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전의 조각상들은 다른 고대문명의 유산이 보여주는 시간관념과는 상당히 다른 시간관념을 보여준다.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보지 않고,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본다. 과거는 흘러가버린 현재다.”

# 아테네인들의 자부심 니케신전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아테네는 사실 평화의 땅은 아니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등 에게해를 둘러싼 고대국가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니케신전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BC490년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응징하려 했지만 첫번째 전투는 아테네의 승리로 끝났다.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도 이때 나온 것이다. 10년 후엔 페르시아왕 크세스크세르가 다시 쳐들어왔다. 이때 그리스 도시국가의 동맹국을 이끈 것은 스파르타. 지난해 나온 영화 ‘300’은 바로 이 전쟁에서 죽은 스파르타 전사들을 영웅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다행히 아테네인들은 피란을 가 화를 모면했다. 나중에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대파, 대승을 거뒀다. 이 승리의 기념관이 바로 니케신전이다. 니케신전은 파르테논에 비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이때 그리스 최강국으로 떠오른 아테네는 파르테논을 세운다. 그 전에도 아테나 신전이 있었지만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상태.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파르테논, 에레크테이온, 니케 신전을 지었다.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전승기념물인 셈이다.
여인들의 모습이 기둥처럼 새겨져있는 에레크테이온은 페르시아가 아테나 신전을 파괴했을 때 신들을 모신 임시신전이었다.

# 철학자의 흔적
여행자들은 파르테논을 돌아본 뒤 디오니소스 극장, 헤로데이온극장,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감옥으로 안내된다. 아테네를 이야기할 때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 사람들은 왜 소크라테스를 죽였을까? 가이드의 이야기가 재밌다. 소크라테스의 추종자 중 하나인 카이레폰은 아폴론신전에서 신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그는 “없다”는 신탁을 받았다.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거리에 나가 많은 사람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묻고 답했던 모양이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무지가 폭로됐고, 그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결국 그는 제소됐다. 추방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던 소크라테스는 결국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때 그가 남긴 명언은 “음미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람의 손으로 세운 이 아름다운 신전은 사람들의 손에 다시 파괴되기 시작했다. 1697년 베네치아군은 아크로폴리스에 머물고 있던 터키군을 공격하기 위해 대포를 쐈고, 당시 2000년 가까이 버텨온 신전은 무너지고 파괴됐다. 근대에 와선 영국인들이 유물들을 떼어내고 훔쳐갔다.
아크로폴리스에는 돌들만 남아있다. 돌 위에 돌이 서있다. 그 돌에 신화의 아테나가 있고, 역사시대 페리스클레스가 있으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돌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 거기가 아크로폴리스다.
여행길잡이
그리스 직항편은 없다. 유럽(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파리, 로마, 이스탄불)을 거치거나 두바이 등을 거쳐서 간다.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며 익스프레스 버스가 다닌다.
시내에선 지하철과 트롤리버스가 편하다. 지하철은 역무원에게 아크로폴리스라고 말하면 표를 준다. 전철역에서 내려 15~20분이면 아크로폴리스 매표소까지 걸어갈 수 있다. 택시도 다른 유럽도시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시내에선 5유로 이내로 다닐 수 있다. 다만 짐을 실을 때는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아크로폴리스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중심거리다. 쇼핑하기에도 좋다. 아크로폴리스에서도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다. 신타그마란 헌법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국회의사당이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병사의 신발은 마치 미키마우스의 장화처럼 우습다. 사진 포인트다. 트롤리버스도 중심가를 다니는데 신문판매대에서 표를 살 수 있다.
아테네 중심가에 있는 여행안내소에 가면 여행안내책자와 버스, 기차, 페리 시각표, 호텔리스트, 그리스 및 아테네 시내지도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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