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신경림 “시는 길에서 얻는 것 … 여행은 곧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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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03 09: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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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신작시집 ‘낙타’낸 신경림

시인은 낡은 신발을 신고 바지런히 이곳저곳을 다닌 모양이다. 가까이는 평양에서부터 멀리는 터키와 콜롬비아까지.
시인 신경림(72). 그가 ‘뿔’(2002)을 발표한 이후 6년 만에 10번째 시집 ‘낙타’(창비)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여행의 기억이 담긴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에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소위 ‘문제 인사’로 찍혀 여권을 받지 못했다는 시인은, 그 한을 지금에야 푸는 듯 매년 두세 차례 해외를 돈다고 했다. 지난 수년간 그가 돌아본 곳은 미국과 프랑스 등 소위 선진국도 있지만 그보다는 네팔과 몽골, 터키와 콜롬비아 등 아직 산업화의 손길이 덜 닿은 곳이 많다.

한 달 전에도 이집트와 요르단을 여행하고 돌아왔다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시가 여행시지요. 시란 길에서 쓰는 것이고, 길에서 찾아내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여행 자체가 시를 쓰는 과정이지요.” 그는 특히 아직 문명의 때가 덜 묻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 듯했다. “시의 본질에 가까운 나라라고 할까요. 시라는 건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요. 모두 빨리 변하고 질주하는데, 시는 그런 것을 견디기 힘들지요. 세계화가 덜된 나라들에서 내 시와 정서가 통하는 걸 느꼈습니다.”

어느덧 고희를 넘긴 시인은 이제 죽음마저 편안한 여행길처럼 여기는 듯했다. 표제작 ‘낙타’는 죽음을 초탈한 심정으로 노래한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낙타’)
그가 인생의 뒤안길에서 길어올린 시어들은 떠남과 그리움, 무욕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나의 신발은,/ 어느 때부턴가는/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떠난 것을 그리워하고 잊은 것을 그리워하면서./’(‘나의 신발이’)라고 노래하는가 하면,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눈’)라고 선언한다.

하나 세상은 시인에게 관조보다는 참여를 더 원한 모양이다. ‘농무’ 등 1970~80년대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읊은, 이른바 ‘참여시’들을 발표했던 시인은 현대문명과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신에 대한 체념도 쏟아낸다. 가장 가난한 자들, 죄 없는 자들이 늘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보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저 높은 데서 그분은 항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것, 그 말도 나는 믿는다. 한데 그분 너무 높이 계셔서, 멀리 계셔서, 아래서 일어나는 일을 세세히 보고 계시지 못하는 건 아닐까?/인간이라는 것, 마치 우리가 개미나 하루살이를 보듯해서 그 속에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사랑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는 것 다 모르고 계시는 건 아닐까 혹시?’(‘그분은 저 높은데서’)

인간의 힘으로도, 신마저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현대문명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럼에도 그는 문학에서 일말의 희망을 엿보는 듯했다. 그는 마약과 폭력의 소굴로 불리는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17년째 열리고 있는 ‘세계 시 축제’를 예로 들었다. “매년 1000명이 암살 당하는 악의 소굴에서, 축제가 열리는 동안만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메데진을 평화의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이 바로 시거든요. 이게 바로 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시란 사람답게 사는 데 기여해야지, 그게 없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시란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쾌속질주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느린 걸음과 방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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