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마음의 눈’ 떠야 보이는 성지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3.03 09:06:19
  • 조회: 10583
프랑스 남부에 루르드(Lourdes)란 작은 마을이 있다. 스페인과 국경을 이룬 피레네산맥 인근의 마을. 인구는 고작 1만5000명인데 해마다 6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600만명을 조금 넘는 편이니 엄청난 숫자다. 게다가 호텔은 233개로 파리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많다.
대체 루르드가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많은 여행자가 찾아들까? 여행이야기를 하기 전에 역사를 조금 들춰보자. 그래야 이해가 된다.

# 거리의 간판은 온통 가톨릭과 연관
루르드는 가톨릭 성지다. 딱 150년 전인 1858년 2월11일 성모마리아가 가베강가의 동굴 앞에서 땔감을 줍던 베르나데트란 소녀 앞에 나타났다. 이런 성모발현은 18번이나 계속됐으며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성모는 베르나네트에게 “나는 무염시태이다”라고도 했고, “성당을 지으라”고도 했단다.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지만 성모 마리아는 죄가 없다는 뜻으로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교리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루르드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려서 나무에서 떨어져 팔을 못쓰는 사람은 베르나데트가 발견한 샘물에 팔을 담그자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기적도 나타났다. 현지에서 만난 마틴 모린 신부는 수많은 기적 중에 67개만 공인을 받았다고 했다. 베르나데트는 생 길다에서 수녀가 됐으며 30대 중반에 사망했다.
루르드에 도착해 둘러본 첫 인상은 ‘가톨릭 테마파크’였다. 거리의 기념품 가게는 대개 묵주와 성모상을 파는 곳들이었다. 관광객 수백만명이 오는 곳이면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점도 눈에 띌텐데, 거리의 간판은 온통 가톨릭과 연관돼 있다. 심지어 테레사, 바티칸이란 이름을 붙인 호텔도 있고 에덴이란 바도 있다. ‘무염시태’란 어려운 이름의 기념품가게까지 보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녔다. 프랑스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온갖 언어들이 거리를 울렸다.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여행자들을 이끌고 일본 여행단처럼 루르드에선 십자가나 성모상을 그린 펜던트를 든 가이드들이 여행자를 끌고 다녔다. 물론 똑같은 목걸이 표식을 한 관광객들은 부지기수다.
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 7만명 참석한 미사 6개국어로 진행
사실 루르드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입이 턱 벌어질 정도로 장관은 아니었다. 성당과 작은 골목길 등은 여느 마을과 비슷하다. 마을 중간 언덕에는 박물관으로 개조된 거대한 성채가 하나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성은 많다. 성지로 불리는 베르나데트 동굴 바위 뒤에 세워진 거대한 성당은 여행자를 주눅들게 할 정도로 컸다. 하나 교회건물이 크다고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11일 대성당 앞 평원에서 열린 미사를 참관했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궁금해서다. 6개국어로 진행된 미사에는 무려 7만명이 참석했다. 참석 등록을 한 사제만 100명, 주교만 스물댓명이 넘는다고 했다. 백인 환자를 돌보는 흑인 자원봉사자, 겨울 추위에 샌들 하나만 신고 있던 수사, 걷기 불편해 보이는 노부부, 땅에 입을 맞추는 수녀…. 금칠한 왕관을 씌워놓은 대성당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순례자들의 진지한 표정이다.
저녁에는 촛불미사가 열렸다. 생추어리를 가득 메운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대성당까지 행진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찬송가로 보이는 노래 한토막이 끝날 때마다 “살베, 살베”를 합창하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멕시코에서 온 여기자 플로렌시아는 살베가 ‘구원하소서(save)’란 뜻이라고 했다.
이튿날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수많은 신도들이 생추어리로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가족의 사진을 붙인 거대한 촛불을 태우는 이들도 있었고, 야구방망이보다 더 큰 촛대를 어깨에 메고 찾는 순례자도 있었다. 십자가를 메고 온 이들도 보였다. 촛불은 기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마리아의 석상이 서있는 동굴 앞에선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백컨대 기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미사에 참석한 것도 처음이었다. 솔직히 무염시태 같은 어려운 교리는 이해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 촛불행진 순례자들 모습에 가슴뭉클
다만 루르드는 건축물보다도, 역사보다도 순례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다. 사실 순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 형태다. 먼 옛날 순례는 고행이었다. 곳곳에 도적떼가 여행자들을 노렸고, 때로는 무거운 통행세를 내야 했다. 그래도 신의 음성을 듣고, 선지자들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길을 떠났다. 중세엔 성지 로마로 떠난 순례자를 ‘로메이’라고 불렀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순례자는 ‘팔미에리’라고 했다.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인 페레그리니는 스페인의 성지 산티아고를 찾아갔다. 말 그대로 천로역정이었겠지만 순례자에겐 ‘빛으로 향하는 구도의 길’이었다.
어디 기독교뿐이었겠는가? 고대 그리스에선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와 델로스를 찾았다. 이슬람에선 아직도 메카순례를 하고 있다. 신라의 승려 혜초도 불국토인 인도를 찾아갔다.
순례는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신 앞에서 벗겨내는 행위다. 메카에 모여 일제히 땅에 조아리는 이슬람교도나, 삼보일배를 하며 차마고도를 걷는 티베트 승려의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루르드의 순례자들의 모습도 가슴뭉클하다.
루르드는 마음의 눈을 떠야 보이는 여행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거기선 반듯하게 세워놓은 성당이나, 성모상을 나열해놓은 기념품 가게보다 그저 여행자들의 맑은 눈동자를 볼 일이다. 그들의 젖은 눈이 때론 가면을 쓴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