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교육] “KAIST, 주변 동네까지 다 바꿔라”[‘서남표식 개혁’ 떨고 있는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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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29 09:08:06
  • 조회: 189
서남표와 톰슨,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서남표(71)와 메리 캐서린 톰슨(27·여). 이름과 나이만 보면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 그런데 이들을 중심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두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현재 KAIST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서남표. 주지하듯 그는 KAIST 총장이다. 원체 유명하지만 최근 1년 사이에 더욱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이다. ‘대학 개혁’ 또는 ‘대학 뒤집어놓기’ 하면 그가 떠오른다. 스스로 “총장실에 앉아서 도장이나 찍어주고, 졸업식 식사나 하는 그저 그런 총장은 싫다”며 보통 총장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똑똑한 학생들을 받아 일류 학생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2006년 7월 그가 ‘KAIST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타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러다 지치면 말겠지”했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도, 중도에 그만두지도 않았다.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진 그렇다.
그는 교수·학생·교직원 등을 상대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거의 ‘괴롭히는’ 수준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실제 그는 정년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교수님들’에게는 “이젠 나가주셔야겠다”고 요구했고,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사실상 ‘공짜 수업’을 당연시하던 학생들에게 “학점이 낮으면 돈을 받겠다”고 통보했다. 일 안하는 교직원들을 내보내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가을 학교측이 테뉴어(정년보장)를 신청한 중·장년 교수 38명 가운데 15명을 대거 탈락시켜 ‘교수=정년보장’이라는 대학 사회의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메리 캐서린 톰슨. 그는 KAIST 교수다. 지난해 9월 건설 및 환경공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고작 6개월째다. 그의 이력을 보면 서총장과 인연이 깊어 보인다. 그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재학시절 당시 이 대학 기계과 교수로 재직하던 서총장의 강의를 들었다. 사제지간인 셈이다. 한때 ‘MIT 밥’을 함께 먹기도 했다.
그는 서총장 때문에 KAIST에 왔다. 서총장은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를 직접 미국에 파견,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그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MIT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은 톰슨 교수는 재학 중 국가 장학금, MIT 여성 공학자 장학금 등 갖가지 장학금을 휩쓸었고 국제적인 수준의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두 사람의 핵심적인 공통점은 ‘개혁 마인드’다. 서총장이 ‘KAIST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톰슨 교수는 ‘서남표식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톰슨 교수는 KAIST에 부임하자마자 교내의 유명인사가 됐다. ‘KAIST 최초의 여성 외국인 교수’라는 간판 때문만이 아니다. 젊은 그의 개혁의지 덕분이다. 그가 내놓은 한편의 보고서는 KAIST의 개혁 열풍에 불을 댕겼다.
“일본에 가보면 식당의 메뉴를 사진으로 만들어 놔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주문이 되는데 KAIST 인근의 식당에서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주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KAIST는 교원 채용 광고를 다른 대학들보다 소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인재를 모셔올 수 없습니다.”
톰슨 교수가 부임 후 서총장으로부터 KAIST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이다.
톰슨 교수가 내놓은 A4용지 9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서론·본론·결론 등 이른바 ‘폼잡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의 문제점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었다. 외국인들이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서부터 교수임용 절차까지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따지고 보면 ‘글로벌화’를 내세우고 있는 KAIST가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27일 KAIST에서는 이 보고서를 놓고 회의가 열렸다. 장순흥 교학부총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KAIST 행정지원 부서의 팀장 전원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 톰슨 교수는 KAIST 인근 식당의 문제점을 직접 지적하고 나섰다. 식당 메뉴판은 얼핏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강조했다. 외국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외국에서 우수한 교수와 학생이 몰려든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였다.
회의에 참가한 팀장들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전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두뇌들이 몰려들어 가르치고 배운다고 자부해온 KAIST의 환경이 이 정도였다니….”

결론은 ‘모두 바꾸는 것’이었다. 우선 KAIST 주변 동네를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했다. 이름은 ‘인터내셔널 존’. 내·외국인들이 어울려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모든 메뉴판에 영어를 병기하고 사진을 넣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식당뿐 아니다. 약국, 병원, 편의점, 제과점 등 각종 생활편의 시설과 업소들이 영어를 병기하고 외국인 학생과 교수들이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이 소식은 KAIST가 소재하고 있는 유성구청에까지 전해졌다. 진동규 유성구청장은 회의내용을 전해듣고 “KAIST 주변 지역을 서울 이태원보다 외국인들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유성구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구는 KAIST와 함께 ‘인터내셔널 존 조성 계획’을 만든 업주 등 주민들과의 협의에 들어갔다. 유성구청 관광공보실 최선일 담당은 “한 대학의 개혁프로그램이 지자체의 행정에까지 바로 영향을 끼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의 개혁은 이렇게 학교 안팎으로 강력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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