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소녀할머니와 이성실씨 계약결혼했네[2인극 ‘블라인드 터치’ 윤소정·이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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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29 0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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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마구잡이로 건반을 친다’는 뜻의 ‘블라인드 터치’. 소리는 당연히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연주에 블라인드 터치가 곁들여지면 또다른 화음이 만들어진다.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가 제작한 2인극 ‘블라인드 터치’는 한 여자와 남자가 빚어내는 불협화음과 화음에 관한 이야기다. 옥중 결혼 16년 만에 갑작스러운 가석방으로 남자가 출옥하면서 처음으로 한 방에 앉게 된 어색한 부부가 나온다.

두 배우 윤소정(64)과 이남희(46)도 처음엔 어색했다. 각자 40여년, 20여년을 연극 무대에 서면서 한 번도 함께 작업해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의 벽부터 허물어야 했다.
“이 연극을 하는 동안 ‘계약결혼’ 한 걸로 치자고 말했어요. 대학로에서 연습이 끝나고 난 후 팔짱끼고 신촌을 돌아다니며 식사하고 술 마시고 데이트했죠. 후배랑 작업하면 선배를 너무 어려워해서 마음을 열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윤소정)

연습 시작부터 아예 ‘가짜부부’로 살기로 한 두 사람은 정작 이 작품의 연출가 김광보와 일본에 갈 때는 각각 부부 동반을 했다. 윤소정·오현경 부부와 이남희 부부가 나란히 비행기에 올랐다. ‘블라인드 터치’는 일본에서 현재 이름을 높이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 사카테 요지의 원작이다. 일본의 현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적인 사건과 인물을 담은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실제로 주인공 남자는 아직 무기수로 감옥에 있다고 합니다. 옥중결혼한 여자는 남자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고요. 미결제 사건으로 진행형이죠. 우리 연극에서는 되도록 사회적 문제는 빼고 두 사람의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어요. 심각한 것만은 아니고 장면장면 웃음이 터지는 재미도 있어요.”(이남희)

이남희는 주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의 연기를 해왔다. 동틀어 28년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와 잔뜩 주눅들어 있는 극중 남자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윤소정은 사회적 신념과 사랑으로 옥중결혼을 감행한 극중 여자의 복잡한 내면을 밀도있게 그려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혼란스러워 하는 남자, 이를 현실세계에 안착시키며 부부로서 온전히 감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여자의 심리적 갈등이 관객을 집중시킨다.
“요즘 사람들 ‘기다림’이라는 거 경험해 볼 일도 많지 않지만 제대로 기다리지도 못하잖아요. 중년만이 아니라 젊은 관객들도 다른 시각에서 이모저모 보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윤소정)

1년에 두 편씩은 꾸준히 연극무대에 서는 윤소정은 오는 7월 연극열전 시리즈 ‘잘자요, 엄마’ 무대에도 선다. 4년전 딸 오지혜와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이번엔 함께 안해요. 아, 그거 고통이에요. 딸은 제 아버지 닮아 교과서 같은 애죠. 그래도 신경이 쓰이니까 할짓이 아니더라고요.”
이남희는 최근 개봉영화 ‘라듸오데이즈’에도 출연하는 등 바쁘다. 새 작품을 만날 때마다 꼭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란다. 실제로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 항상 텐트·야전침대·자전거·비상식량 등을 싣고 다닌다.

지난 20일 낮 공연이 끝난 후 다다미 방처럼 꾸며진 무대에 앉은 두 사람. 윤소정은 이남희를 두고 ‘이성실’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섬세하고 성실한 태도에 놀랐다.
이남희는 극중에서 10년 연상의 아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꽤 선배인 윤소정을 두고 쑥스러워하며 ‘소녀 할머니?’로 불렀다. 미처 몰랐던 소녀처럼 자유롭고 순수한 사고방식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신촌을 누비며 열심히 데이트를 한 덕분인지, ‘블라인드 터치’를 통해 만들어낸 멋진 호흡에서인지 두 사람의 화음이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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