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육필 저서 120권·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의 특별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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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26 10:16:25
  • 조회: 698
한국문학의 파수꾼, 문학의 구도자….
이런 말들을 떠올리면서 지난 18일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72)의 댁을 찾아갔다. 베란다 너머로 한강과 멀리 관악산이 한 눈에 보이는 용산의 한 고층아파트. 차분한 독서와 사색의 시간들이 물처럼 고여있는 김윤식 교수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책이 많다. 마주 보는 양쪽 벽이 책장이다. 창가 쪽으로 책상이 놓여있는데 그 옆에는 자주 보는 책을 꽂아놓은 낮은 책꽂이가 하나 더 있고, 책상 앞뒤로도 책이 여러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겉장에 보풀이 일어난 누런 책부터 빳빳한 신간까지. 책상 위에는 수백장의 하얀 원고지가 놓여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에 대한 원고를 쓰던 중이라고 했다.“컴퓨터로 글 쓰는 걸 배우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나마 세로로 쓰던 걸 가로로 바꾼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의 저서가 120여권에 이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많은 원고를 모조리 육필로 작성한 것이다. 그는 최남선, 이광수에서 이상, 임화, 김동인, 염상섭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학사 연구에서부터 다달이 발행되는 문학잡지의 소설 월평까지 폭넓은 글을 써왔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문단 바깥의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처음 소설을 쓰는 풋내기 작가의 글까지 정성스럽게 읽고 분석하는, 소위 ‘현장비평’이라는 것은 흔히 젊은 평론가들의 몫으로 생각돼 왔다. 평론가로 등단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현장비평을 통해 감을 익히고,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조금씩 현장비평과 멀어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해설한다는, 이상한 상하구조의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일이 작품을 챙겨읽는 것 자체가 귀찮거니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실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평소 그에게 묻고 싶었던 두 가지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문학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내 독창적인 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갖다가 열심히 읽고 해설을 열심히 썼는데 그것이 책으로 나와있을 뿐입니다. 왜 네 글을 못썼느냐고 묻는다면 거기 대해서는 역량이 없고 생각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거예요. 문학연구와 현장비평은 이래요. 거시적 글쓰기와 미시적 글쓰기인데 이 두 가지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느 한쪽에 빠지면 오염되고 부패하고 폐쇄되고 말았을 겁니다. 지속성의 근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김윤식 교수의 문학인생 중심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문학평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있다. 그가 자신의 문학 입문과정을 들려주었다.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에 왔는데 당시 대학이란 게 과학으로서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라고 하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눠지는데 국어학은 순경음, 반치음을 가르치고 고전문학은 아래 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가르치더군요. 대학 다니는 게 흥미가 없어 군대에 다녀오니 복학생이 됐고 친구가 없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학문 중 어떤 학문이 가장 그럴 법하냐는 걸 고민했지요. 헤겔과 마르크스의 책을 뒤적이다가 루카치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복되도다, 그 시대는. 창공의 별이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읊었다. 1970~80년대 그의 수업을 들었던 숱한 제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했던 열정적인 명강의의 일부가 재현되는 듯했다.
“루카치는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소설이 그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지요. 작가들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동원해 소설을 쓰고, 거기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상실한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방황을 계속하는 겁니다. 나는 그들의 방황에 동참함으로써 인류사회의 나아갈 길을 공부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고 문학을 연구했어요.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진 일입니까.”
그는 70년 하버드 옌칭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도쿄대 정문앞 서점에서 루카치의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ㅅ자도 꺼내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후 “대단히 많은 시간을 루카치를 읽고 해석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사회주의 사상가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일로 인해 사상을 의심받고 과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루카치 전집은 그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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