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별 헤는 밤’[장흥 송암천문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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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14 09:20:33
  • 조회: 11317
땅만 보며 살지 말고 별보러 가자. 겨울밤은 맑아서 별들도 밝다. 아마추어에겐 망원경도 천체도도 필요없다. 북극성과 오리온 별자리 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마차부자리며 쌍둥이자리, 큰개자리 등 별자리를 찾아내기 힘들다. 초보자에겐 그 별이 그 별 같다. 아이들도 ‘별이 공부’라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별보기가 얘들에겐 흥미진진한 동화이고, 어른들에겐 옛시절이 감실감실 떠오르는 추억이면 충분하다. 공부는 접고, 밤하늘이나 뚫어지게 보며 아이들과 이야기나 하자.
경기 양주시 장흥 송암천문대에 갔다. 장흥이라면 대도시 못지 않게 흥청거리는 유원지인데, 네온 빛에 무슨 별을 볼 수 있겠나 걱정이 앞섰지만 천문대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철강회사에서 지은 천문대의 관측소는 시설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솔직히 망원경의 성능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기야 최신 장비를 갖췄다 해도 초보들이 맘놓고 보긴 힘든 게 아닌가? 관측소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 전국 최고수준 산 속의 관측소
케이블카는 남산케이블카보다 길다. 케이블카엔 친절하게도 가이드까지 있었다. 가이드는 두 대의 케이블카의 이름이 알비레오 알파와 베타라고 했다. 페르세우스 자리의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별의 이름을 따왔단다. 케이블카가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자 인수봉과 사패산, 도봉산의 검은 능선이 뚜렷하게 보였다.
관측소는 해발 447 형제봉. 주관측소의 지름 600㎜ 망원경은 달에 맞춰져 있다. 망원경에 눈동자를 들이대자 처음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환했다. 아이들 역시 달이 이렇게 빛날 줄 몰랐다고 한다. 실제로 보름달은 너무 환해서 분화구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오히려 음력 7~8일의 상현달이 좋단다.
“아빠, 달의 바다가 보여. 분화구도 또렷하게 보이는 게 신기해.”
초등학교 5학년 큰 아이(13)가 ‘달의 바다’를 들먹였다. ‘달의 바다’가 대체 뭘까? 나중에 직원들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화산활동의 흔적이라고 한다. 달을 보면서 ‘방아 찧는 토끼’를 떠올릴 줄 알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선행학습이 너무 잘 돼 있어 탈이다.
보조관측실에는 5대의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하나는 달, 플레이아데스성단, 페르세우스자리, 화성 등에 망원경이 맞춰져 있고 직원들이 옆에서 설명을 해준다. 큰 아이는 ‘70일간의 별자리 여행’ 이란 책에서 읽었던 까마귀 자리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함께 간 동료의 딸 박채송양(10)과 둘째 아이(8)는 “화성이 가장 신기했다. 태양 같이 빨갛다”고 했다. 아이들은 백열전구를 닮았다고 했고, 어른들은 생선초밥에 얹는 붉은 연어알을 닮았다고 했다. 좀더 아름다운 것들을 떠올리면 좋을 텐데 기성세대가 되면 상상력도 떨어지는 모양이다.

# 어른도 동심속으로 ‘풍덩’
그나저나 별에도 색깔이 있었나?
사실 별들은 자기만의 빛깔을 지구로 보내고 있다. ‘검은 하늘에 하얀 별’, 즉 흑백으로만 별을 봐 온 사람들은 하늘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려보자. 사이프러스 나무는 활활 타는 불꽃처럼 보이고, 밤하늘의 별들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그 그림들 말이다. 고흐는 프로방스에서 이 별그림을 그리며 누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밤은 낮보다 색깔이 훨씬 더 풍부해…. 잘 보면 어떤 별들은 레몬빛 노란색이고, 어떤 별들은 분홍색, 또는 녹색, 파란색, 물망초색으로 빛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내가 굳이 나서지 않는다 해도 그냥 짙은 남색 표면 위에 하얀 점들만 찍어 놓는 것으로 불충하다는 것은 분명하잖아.”(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우주의 색깔은 사람들에겐 각기 다른 색깔로 보인다는 것도 신기하다. 쌍둥이별 알비레오도 어떤 이는 핑크색으로 어떤 이는 붉은 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지구에 없는 빛이기 때문일 것이다.

#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별보기
별 보기도 즐겁지만 아이들에겐 반구형의 플라네타리움(천체투영관)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의자가 침대처럼 뒤로 젖혀진 투영관의 40분짜리 프로그램은 다행히 딱딱하지 않았다. 우주 밖에 무슨 생명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험을 하고 우주의 구조를 살펴보는 내용. 만화영화 같다.
아이들은 별을 보면서 SF적인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오히려 기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알퐁스 도데의 ‘별’이 맴돌았다.
‘만일 한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알퐁스 도데의 별)
비록 소설 속의 목동처럼 아름다운 스테파네스와의 추억은 없다 해도 별보기는 밤하늘에 눈길이라도 주며 살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천체 관측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별을 보며 이런 상상, 저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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