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브랜드 네이밍 대가’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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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13 09:07:03
  • 조회: 1281
“이름은 내가 지었지만 술은 못해요”
ㆍ‘브랜드 네이밍 대가’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자리에 앉자마자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54)는 가수 나훈아 이야기부터 꺼냈다.
“기자회견이 아니라 완벽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죠? 나훈아가 어떤 방식으로 얘기할까 궁금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정장 차림에 호통치는 듯한 말투, 책상에 올라가 바지를 내려 보이려는 제스처 등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본질’이 살아있는 가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꿈을 갖고 노래했기에 그런 카리스마가 나오겠죠? 인터넷 댓글을 읽어보니 젊은층의 지지가 대단하더군요.”
그동안 그가 붙인 이름을 보면 그가 왜 대가 소리를 듣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참이슬’ ‘산’ ‘처음처럼’ ‘참나무통 맑은소주’ ‘화요’ 등 술 이름을 지어 줄줄이 히트시켰다. 또 현대아파트 ‘힐스테이트’는 정작 아파트가 지어지기도 전에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차지하며 최고 청약 경쟁율이란 마법의 힘을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화장품 ‘식물나라’와 ‘뷰티크레딧’, 음료수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종가집 김치’ ‘순창 고추장’, 담배 ‘레종’ ‘트롬’ 세탁기, 텔레비젼 ‘X캔버스’, 한미 ‘콩두’ 등이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이름들이다. 최근엔 군인공제회의 새브랜드 ‘M+ 군인공제회’를 만들었고 통영시 로고도 새로 제작했다.
이런 이름들을 붙이려면 적어도 몇주는 고민했을 것 같다. 소주도 수없이 마셔댔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술을 전혀 못한다. 게다가 브랜딩 난도가 가장 높다는 소주의 경우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회의하던 중 즉석에서, ‘참이슬’은 엿새 만에, ‘처음처럼’은 2주 만에 만들었단다.
이토록 입에 착착 달라붙는 브랜드만를 만든 재기발람함에 경외심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참眞이슬露로’는 ‘진로(眞露)’를 풀어쓴 것이고,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의 글씨, M+ 역시 ‘밀리터리(군인) 그 이상의’ 뜻이라는 설명을 듣고 났을 때가 그렇다. 다만 남들이 보이지 않는 제품의 본질과 핵심을 그는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그의 힘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재품을 통역해주는 일을 해낸다.
“술을 못 마셔서 더 객관적으로 제품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요. 제품 중심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인간의 희로애락을 연구하면 사람들이 그 제품에 대해 요구하는 감정을 알 수 있죠. 제가 올해로 이 일을 한 게 30년째인데 23년 정도 되니까 언뜻언뜻 사금파리가 보였어요. 27, 28년쯤 되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걸 읽을 수 있었고 30년이 되니 ‘아, 이거구나’라는 감이 와요. 핵심과 본질이 보이니 실수가 없죠. 미련하게 30년간 외길을 걸으면 다 보인답니다. ‘처음처럼’도 2주 만에 만들었지만 결국 52년의 내 삶과 27년간의 직업 경륜이 녹아서 나온 작품이죠.”
홍익대 미대 졸업 후 1977년 현대양행(현 한라그룹) 기획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86년 크로스포인트라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전문회사 창립 멤버로 참여, 90년 회사를 인수했다. 그 무렵, 기업이미지 통합의 열기가 식고 브랜드이미지통합(BI)의 시대가 열렸다. 제품 경쟁보다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져 삼성의 지펠냉장고, LG의 휘센에어컨처럼 제품마다 고유의 브랜드가 등장했다. 미술을 전공한 손대표는 디자이너보다 ‘작명가’로 더 명성을 떨치지 시작했다. 그의 회사 운영도 독특하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직원들이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부엌에서 수시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1년에 한 달은 해외에서 지내고 무조건 많이 보고 느끼라고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도록 했다. 덕분에 지난해엔 1인당 1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6년엔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해냄)이란 책도 펴냈다. 히트 브랜드를 만든 자신의 비법을 무모할 만큼 솔직하게 공개한 이유를 그는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철저한 노력과 분석으로 나온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요리법을 알려줘도 요리사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기 때문에 걱정없다”고 했다. 기업체와 광고업계에선 유명인사이지만 매스컴에 오르내리지 않던 손대표는 ‘처음처럼’ 이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을 위해서였다.
“양심과 지성으로 상징되는 신선생님이 자신의 글씨를 소주회사에 돈받고 팔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알칼리수로 만들어 처음 술마실 때로 회복된다는 제품의 본질에다 처음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 소주 새 브랜드로 정했지만 선생님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죠. 결국 돈을 안받으시겠다기에 장학재단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처음처럼’ 이후에 사회에 나오셔서도 항상 ‘감옥’에 갇혀 지내신 듯 음지에 지내시던 선생님이 양지로 나와 강의와 저술 등 외부활동도 하시고 대중에게 친숙해져서 기뻐요.”
손대표는 지난해 뉴욕지사를 설립해 우선 한국교포 사업가들의 브랜드와 디자인 작업을 돕고 있다. 직원들이 미국생활과 영어에 익숙해질 3, 4년 후에는 본격적으로 미국 회사들의 일을 할 예정이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니 항상 새로운 느낌이라 더욱 즐겁단다.
“제 성공비결을 묻는데 답은 간단해요. 성공의 글자 공(功)은 일이란 뜻의 工과 힘力이 합쳐진 거예요. 그저 운이 좋아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일한 결과가 성공이죠. 항상 순리대로, 정공법으로 30년을 일해오니 겨우 본질이 보여요. 지금부터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신함과 순발력이 중요해 40대에도 노인대접을 받는 디자인 업계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꾸기에 늘 신선한 감각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요즘은 통영시 로고작업을 하다 재발견한 이순신 장군과 라틴댄스의 매력에 빠졌다는 손대표에게 경륜은 보장자산이고 꿈은 가장 큰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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